타율 높이려다 ‘똑딱이’ 되더라
#점점 늘어만 가는 우투좌타
우투좌타 선수의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된 선수들 가운데 15% 안팎을 차지할 정도다. 특히 삼성과 두산은 2014년 등록 선수 기준으로 9명씩 우투좌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최형우, 김현수, 오재원 같은 간판타자들이 이 안에 포함된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전문적인 우투좌타 선수가 아예 없었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 본능을 거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최초로 우투좌타를 시도했던 ‘원조’ 선수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태평양에서 뛴 원원근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에는 롯데 김상우도 우투좌타 선수로 공식 등록됐다.
두산 김현수(왼쪽), 삼성 최형우 등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왼손타자들 중 상당수는 ‘우투좌타’다. 하지만 왼손타자로 전향하는 게 타율을 높이는 데 유리한 반면, 오른손 거포로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우투좌타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팀마다 1~2명에 불과한 정도. 오히려 스위치히터를 시도하는 타자들이 더 많았다. 2000년대 초반에도 마찬가지. 2001년 등록 기준으로 우투좌타가 12명, 스위치히터가 10명이었다. 그 후 13년이 흐른 2014년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투좌타 선수가 50명을 넘어선 반면, 스위치히터는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어느덧 우투좌타가 스위치히터보다 10배 이상 많아진 셈이다.
#왜 그들은 왼쪽 타석에 섰나
야구는 기본적으로는 왼손타자가 유리한 종목이다. 같은 타자가 공을 친 다음 1루까지 달리게 되면, 좌타자가 우타자에 비해 최소한 두 발 정도는 앞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좌타자는 타격 후 몸이 자연스럽게 1루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다. 스타트를 더 원활하게 끊을 수 있다. 발까지 빠른 선수라면 내야 땅볼 타구로도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이뿐만 아니다. 기본적으로 프로야구에는 오른손투수가 왼손투수보다 훨씬 많다. 좌타자들은 타석의 위치 상 오른손 투수들의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다. A 야구관계자는 “1997년부터 프로 출신 지도자들이 아마 야구를 지도할 수 있게 됐는데, 이때 프로에서 직접 왼손타자들의 장점을 느껴본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일제히 좌타자를 권유하기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왼쪽부터 오재원, 박용택, 서건창, 테임즈.
또 다른 해석도 있다. B 야구관계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국내에 우투좌타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였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일본에서 활약한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등의 활약을 보면서 한국의 야구 꿈나무들도 미국와 일본의 우투좌타 성공 사례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스즈키 이치로 같은 최고의 교타자와 마쓰이 히데키 같은 최고의 거포가 모두 우투좌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좌타 전향을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여러 갈래의 길이 열린 듯 보였을 터다.
#왜 스위치히터가 아닌가
사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양쪽 타석에서 모두 잘 치는 것이다. 왼손 투수가 들어서면 오른쪽 타석, 오른손 투수가 들어서면 왼쪽 타석에서 타격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스위치히터로 성공하기란 예상대로 무척 어렵다. 양쪽 타석에서 모두 밸런스를 찾아야 하니 남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고, 실패했을 때의 위험부담도 너무 크다. KBO에 우투양타 선수로 등록된 넥센 서동욱, 롯데 박준서도 사실상 왼쪽 타석에만 들어서고 있다. 아마 시절 큰 기대를 모았던 KIA 김민우도 프로에서 스위치히터 변신을 시도하다 결국 다시 우타자로 돌아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하지 않았다면, 잘 하는 한쪽 타석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우투좌타 가운데 한 명인 C 선수는 “지금은 늦었지만, 다시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스위치히터 훈련을 하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치퍼 존스처럼 스위치히터로 성공한 선수가 많지 않느냐”며 “나도 어릴 때 좌타자를 선택했지만, 좌타자가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좌투수가 나올 때 좌타자는 부담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수준급 좌투수들이 늘어나면서 좌타자들의 희소가치나 장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내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손아섭도 ‘우투좌타’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오른손 거포 부재의 원인
각 구단 스카우트들은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우투좌타 편중 현상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창 프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물론, 아마 야구에서도 우투좌타의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C 야구관계자는 “최근 고교야구에서는 주전 라인업 아홉 명 가운데 5~6명이 좌타자이고, 이 가운데 2~3명이 우투좌타인 일도 비일비재하다”며 “외야수뿐만 아니라 내야수까지 우투좌타가 많다. 예전에는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우투좌타를 권유했다면, 요즘은 학부모들이 지도자들에게 아들을 왼손타자로 키워달라고 부탁도 한다”고 귀띔했다.
프로야구 지도자들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지난해 “이젠 우투좌타가 너무 많다. 학생 야구에서 왼손타자를 선호하는 우리 현실 때문”이라며 “아마추어 때부터 너무 이기는 야구만 하다 보니, 현장에서 선수를 구성할 때 엇박자가 많이 난다. 야구인으로서 마음 아픈 상황”이라고 했다. 학생 선수들이 프로 스카우트들에게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으니, 지명을 받으려면 당장 출루와 안타 생산율을 높여 성적을 낼 수 있는 좌타자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자칫 좋은 오른손 타자로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가 겪고 있는 오른손 거포의 부재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왼손타자가 유리하기는 하지만, 무작정 바꾸면 힘을 제대로 못쓰니 다들 ‘똑딱이 타자’가 된다”며 “오른손과 왼손의 힘은 분명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류 감독은 올해 주전 중견수로 자리 잡은 우투좌타 외야수 박해민에게 다시 우타 훈련을 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박해민은 발이 빠르고 수비도 잘하지만 타격 때 유독 힘이 부족하다. 류 감독은 “박해민 또한 오른쪽 타석에서 치는 게 더 힘이 있다고 얘기했다. 스프링캠프 때 한번 시도를 해볼 것”이라고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김현수는 왜 우투좌타가 됐나 “좌타석서 공이 더 잘 보였어요” 본격적으로 좌타자의 길로 들어선 건 중학교 때다. 한쪽에서만 치고 훈련을 끝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홀로 남아 또 다른 방향에서 훈련을 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웠다. 원래 치던 우타석과 새로 시작한 좌타석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섰고, 김현수는 ‘왼쪽’을 선택했다. 우투좌타가 당시 유행이어서만은 아니다. 김현수는 “보통 오른손잡이들의 주 시력은 왼쪽 눈인데, 나는 주로 오른쪽 눈으로 봤다”며 “그래서인지 좌타석에 섰을 때 볼이 더 잘 보였다”고 설명했다.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우투좌타 선수들은 대부분 장타력보다 콘택트 능력이 돋보인다. 김현수와 삼성 최형우 정도가 파워를 겸비한 케이스로 꼽힌다. 좌타자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공을 맞히는 훈련에 집중하게 되고, 힘을 100% 쓰기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김현수 역시 “장타를 치는 데는 좌타석이 불리했지만, 본래 힘이 좋은 편이어서 다행히 큰 차이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김현수는 좋은 체격을 타고 났다. 체력 관리도 철저히 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콜라 같은 탄산음료는 절대 먹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도 햄버거를 먹으면서 콜라를 못 먹고 이온음료를 마셔야 했다”며 “일찍 잠을 청해야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오후 9시에 집안 전체의 불을 껐다”고 회상했다. 물론 김현수 같은 성공사례는 흔하지 않다. 역대 가장 성공한 우투좌타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현수처럼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좌타자 전향을 시도하다 원래 갖고 있던 장점까지 잃고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선수들도 많다. 김현수 역시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다. 김현수는 “좌타자의 이점이 분명히 있지만, 원래 오른손잡이였던 선수들이 우타석을 포기하는 것은 장타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나도 오른쪽 타석에서 파워를 더 낼 수 있지만, 선천적으로 힘이 좋은 덕분에 좌타석에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변신에 성공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타석에서든 잘 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 바른 선택과 최상의 훈련도 뒷받침돼야 한다. 김현수는 “스즈키 이치로 같은 대선수도 경기를 보면 단타 위주로 치는 것 같지만, 타격훈련을 할 때는 펜스 너머로 장타를 친다”고 예를 들면서 “마냥 좌타를 선호하기 이전에 자신의 장점을 먼저 파악해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은] |
오른손잡이 류현진 ‘좌투우타’ 비스토리 “왼손이 편했어요” 특이한 케이스 ‘우타’를 ‘좌타’로 바꾸는 것보다, ‘우투’를 ‘좌투’로 바꾸는 게 더 어렵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타격은 두 손을 쓰지만, 공을 던질 때는 한 손만 쓴다. 이 때문에 훈련을 통해 자주 사용하는 손을 바꾸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야수의 송구가 아니라 투수의 투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후천적인 좌타자는 여럿 찾아볼 수 있어도, 후천적인 좌투수는 보기 드문 이유다. 지난 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된 우타 좌투수는 넥센 외국인투수 앤디 밴 헤켄과 한화 황영국뿐. 그만큼 많은 선수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성공사례가 한 명 있다.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왼손투수인 LA 다저스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국내에서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드문 좌투우타다. 작은 사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좌투우타로 활약한 랜디 존슨.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류현진은 오른손잡이다. 밥도 오른손으로 먹고 글씨도 오른손으로 쓴다. 타격 역시 오른손으로 한다. 공만 왼손으로 던질 뿐이다. 한국에서야 타석에 설 일이 없었지만, 투수도 타격을 해야 하는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뛰게 되면서 ‘우타자’ 류현진의 타격 솜씨도 꽤 화제를 모았다. 좌투우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드문 유형이기 때문이다. 한화 스카우트로 일하면서 류현진의 학창시절을 지켜봤던 김장백 운영팀 대리는 “류현진이 맨 처음 야구공을 잡았을 때, 멋도 모르고 글러브를 오른손에 낀 채 왼손으로 공을 던져봤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편하고 공이 잘 나가서 저절로 좌완이 됐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실은 아버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 씨는 “투수로 대성하려면 왼손으로 던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부러 처음에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사줬다”며 “아들이 불편해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도 왼손으로 던지는 게 편하다고 해서 쭉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좌투우타로 성공한 한국 선수는 거의 없다. 한화 시절 사령탑이던 한대화 전 감독은 “내가 아는 좌투우타 선수는 모두 야구를 못했다. 류현진은 정말 특이한 케이스”라며 웃기도 했다. 원래는 타격도 좌타석에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타자로 방향을 바꾼 이유가 있다. 아버지 류 씨는 “처음에는 방망이도 왼손으로 쳤다. 그런데 야구장이 너무 작고 현진이는 발이 느리니, 좌타석에서 당겨서 우전안타를 치고도 자꾸 1루에서 아웃이 됐다”며 “우타석으로 옮겨서 좌익수 쪽으로 안타를 치니, 1루에서 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다시 바꿨다”고 설명했다. ‘야구 신동’ 류현진에게 애초에 ‘어느 손이냐’는 문제가 안 됐던 셈이다. 그렇다면 역대 가장 성공한 좌투우타 투수는 누구일까. 곧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랜디 존슨이다. 마운드에서 ‘괴물’ 같았던 존슨의 통산 타율은 0.125. 우타자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반면 정상급 좌투수였던 마이크 햄튼은 통산 타율이 0.246으로 우타자로서도 괜찮은 성적을 냈다. 16년간 네 차례나 타율 3할을 넘겼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와 시카고 컵스 좌완 트래비스 우드도 타격에 소질이 있는 좌투우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