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문제가 된 이아무개씨는 KTX 개통식 행사 대행업체 선정과 관련,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 ||
이번에 문제가 된 이아무개씨(50)는 이기명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문화네트워크의 이사로 재직하며 KTX 개통식 행사 대행업체 선정과 관련해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서 일하다 이기명씨를 알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뒤 이기명씨가 올해 1월 초 문화네트워크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을 때 이사로 영입돼 이곳에서 일을 해왔다. 이아무개씨는 어떤 인물인지, 이기명씨가 운영했던 문화네트워크는 어떤 사업을 하는 단체인지 따라가 봤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4월 KTX 개통식 행사와 관련해 특정 업체가 선정되도록 철도청 직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이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문화네트워크 팀장 이아무개씨(36)를 구속했다. 또한 특수수사과는 구속된 이씨와 짜고 청와대 관계자에게 특정 업체의 선정을 청탁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문화네트워크 이사인 이아무개씨(50)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구속된 이씨는 지난 1월 말 한 광고 회사 간부에게서 “30억원 규모 개통식 행사의 대행업체로 선정되면 자문료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철도청 공무원 등에게 청탁, L사가 대행업체로 선정되자 2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이 이사는 지난 2월 당시 청와대 의전담당 모 행정관을 만나 그 광고회사의 선정을 부탁하고, 철도청을 찾아가 “나를 개통식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라”며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특보’ ‘보좌관’이라고 내세우며 철도청과 업체 관계자들에게 마치 정권 실세인 양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나 총리실 사정팀 등 외부기관에서 이첩하는 고발사건이나 대통령 친인척 비리 등에 대한 하명수사를 주로 맡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처리를 한 것으로 미루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먼저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이아무개 이사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문화예술 특보로 활동한 바 있다. 그와 오랫동안 친분을 나눈 문화계 인사 A씨는 “선거운동이 이벤트의 연속이었는데 문화관련 일들을 연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캠프의 언론특보로 활동했던 유종필 민주당 홍보위원장은 “문화특보가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아마 핵심이었던 금강팀 캠프가 아닌 선대위에서 특보로 활동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는 선거가 끝난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이사는 문화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일찍이 정치판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꼬마민주당 시절 노 대통령을 알게 되면서 친분을 쌓았고 그 후로도 정치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주요경력 중 민예총 남북교류위원장이란 직함이 있는데 이것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고 한다. 민예총의 한 관계자는 “지난 98년부터 민예총 남북교류위원장을 맡아 2002년 대선 전까지 일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조직과 달리 남북교류위원회는 일종의 특별 위원회로서 교류사업이 생겼을 때만 일을 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98년 이후부터는 남북간 직접 교류 사업이 별로 많지 않아 직함만 걸어놓은 상태였다. 활동은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그는 지난 99년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이사는 당시 명계남씨 등과 함께 단식농성을 주도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돼 그 뒤로도 문성근씨 등 노무현 측근 그룹과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2002년 대선 때는 이기명씨와도 절친한 사이로 발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이번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하는 이기명씨는 그럼에도 사무실 전화를 해지시키고 홈페이지를 폐쇄하는 등 몸을 엎드리고 있다. | ||
하지만 이 이사 주변에서는 그가 이런 ‘사소한’ 일로 불구속 기소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서의 A씨는 “이 이사는 평소 무리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 조심하라고 주변에서 충고도 해주었다. 또한 이 이사도 그런 부분들이 자기 정치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밝히면서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기업들의 행사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벤트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져 질서가 흐트러지고 있다. 아마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청탁을 하는 기업의 로비에 넘어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A씨는 “정치권에 있는 사람이 그 만한 일로 쉽게 넘어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정치인처럼 몇 억원을 받았으면 몰라도….”
그래서 이 이사 주변에서는 그가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거절하기 어려워 할 수 없이 청탁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씨와 문화네트워크의 이사장 이기명씨와의 관계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이사는 경찰 진술에서 ‘법인 이사장으로 있는 이기명씨에게 부탁해 업체 선정 심사위원으로 있는 청와대 행정관을 만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기명씨와 청와대의 행정관은 이에 대한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은 “이기명씨와 행정관이 개입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 이사가 비록 노 대통령 측근들과의 교류는 있었지만 청와대 인사를 직접 연결시킬 정도의 ‘힘’이 있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이 이사는 상급자인 이기명씨 소개로 청와대 인사를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기명씨 본인이 부인하고 있어 이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경찰도 이기명씨가 이번 사건에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는데 이 부분도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기명씨는 올해 1월6일 문화네트워크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종로구 수송동의 한 빌딩에 있는 이 단체는 사회전반 문화현상 연구 및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인터넷 매체를 통한 사회문화 전반 주요의제를 공론화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법인 등록을 담당한 문화관광부 한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사단법인에 대한 감사가 느슨해져 그 단체 소속 인사가 그런 일에 개입되었는지 몰랐다”고 밝히면서 “이사와 감사진은 개인 인적 사항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기명씨는 지난해 장수천 문제 등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려 그동안 활동을 자제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기명씨는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라는 점에서 지난 총선이 끝난 뒤 문화예술특보로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여권 내에 문화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것.
그러던 중 올해 6월 이기명씨는 여의도 의원회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 3월 출간한 자신의 자서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책을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에게 보냈던 것. 봉투 표지에는 사단법인 문화네트워크 이기명 명의로 돼 있었고 홈페이지 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기재돼 있었다.
당시 문화네트워크 사무실 한 관계자는 “책을 보낸 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이기명 이사장은 사무실에 잘 나오지 않아 그 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이기명씨가 문화네트워크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책 봉투에 쓰인 주소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정치인이 책을 내는 것은 단순한 출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출판기념회는 후원회 성격도 있지만 자신의 인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이기명씨가 책을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돌린 것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알아 달라’는 적극적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기명씨가 이번 사건에 직접 개입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의 직원이 ‘특보’ 이름을 팔며 로비에 관여했다면 그 도의적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씨는 이번 사건 직후 사무실 전화도 해지시키고 홈페이지도 폐쇄시키는 등 바짝 몸을 엎드리고 있다. 조만간 사단법인을 해체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기명씨와 문화네트워크의 ‘앞날’을 다시 주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