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씨는 미국 현지인과 결혼해 덴버 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주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이씨는 왜 미국의 가정을 뒤로한 채 한국에서 이같이 참혹한 살인극을 저질렀던 걸까.
부산이 고향인 이씨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왔다. 그러나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현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는 국내에서 한 남자를 만나 자신의 꿈을 이루려 했다. 그러나 유부남이던 그 남자는 결코 가정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 됐던 이씨는 결국 남자의 아내만 없어지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빗나간 사랑이 낳은 비극의 앞과 뒤를 따라가 봤다.
이 사건을 다룬 몇몇 언론에는 이씨가 미국인과 결혼했다는 것과 이씨가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 때문에 이씨가 유흥업소 출신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로 이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만 해도 이씨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전도 유망한 재원이었다.
이씨는 유학생활 도중 현지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당시 미군 장교였던 남편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남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씨를 위해 한국 근무를 지원하기도 했을 만큼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씨의 아메리칸 드림은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씨가 거주했던 지역은 한국 교민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다. 쌍둥이 아이도 크고 가정도 안정되었지만 그럴수록 이씨는 미국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가정불화보다는 문화적 차이와 외로움 때문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유난히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씨는 지난 2∼3년간 부쩍 한국을 많이 방문했다. 그러다 보니 만만치 않게 나오는 비행기 요금을 위해 직접 돈을 벌어야 했다.
지난해 초부터 이씨는 자신의 주특기인 영어와 교육학을 살려 영어교재 판매, 영어 개인교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에 가정을 둔 주부로서 한국에서 안정된 직업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이씨는 저녁시간 틈틈이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게 된다.
이씨가 살인 피해자인 주부 이아무개씨(36)의 남편 박아무개씨(46)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노래방에서 도우미와 손님으로 알게 된 것이 이 ‘잘못된 만남’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1년이나 지속되면서 비극적 결말을 향하게 된다.
박씨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도 ‘2차’는 절대 나가지 않는 자존심 강한 여자였고 ‘관계’를 맺은 사람도 박씨뿐이었다고 한다. 고국에서 정착하길 원했던 이씨는 새출발을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그 꿈을 함께 이루려는 상대는 바로 박씨였다. 어느덧 이씨의 꿈은 집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의 가정을 포기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 다 가정을 가진 사람이니 서로 즐기다가 적당한 선에서 끝낼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이씨의 요구는 집요해져만 갔다. “당신과 나머지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 “부인과 이혼하고 나와 재결합하자”는 이씨의 얘기에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4월 생각다 못한 박씨는 이씨에게 헤어지자는 얘기를 건네고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씨와 달리 이씨는 그와의 관계를 그리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때부터 박씨에게 두 달간 무려 2백80여 차례나 전화를 걸어 ‘재결합’을 요구했다고 한다. 박씨가 이씨에게 전화를 건 것까지 합하면 무려 4백 번의 통화를 한 셈.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박씨에게 하루 평균 4∼5 통씩 전화를 걸어 애원할 만큼 이씨는 박씨에게 맹목적적이었다.
결국 이씨는 박씨의 부인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된다. 지난 5월28일 오전 박씨가 출근하고 박씨의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이씨는 박씨의 부인을 만나러 집으로 찾아갔다. 박씨의 부인도 이미 이씨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이씨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이씨는 이미 박씨의 부인을 살해할 결심을 한 뒤였다. 미리 살인 도구까지 준비해 왔던 것. 박씨의 부인과 이씨는 서로 “(박씨를) 포기하라”고 다그쳤고 감정이 격해지자 이씨는 박씨의 부인을 준비해간 전깃줄로 목을 졸라 실신시킨 뒤 흉기를 이용해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씨는 침착하게 현장을 정리한 후 자신이 가져갔던 도구들을 모두 챙겨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당일 오후 비행기로 다급하게 미국으로 출국했다. 박씨 부인의 시신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이씨를 피의자로 지목한 뒤 인터폴에 수배하는 한편 미국정부에 신병인도를 요청했다. 미국의 거주지에서 가족들을 통해 자신이 피의자로 입건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씨는 음독자살을 기도해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