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은 끝났다 “옛 동지들 모여라”
지난 13일 안철수 의원(오른쪽)과 장하성 교수가 신년 특집 좌담회 ‘고장난 한국경제 진단 및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국가’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2년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 바람을 일으키며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그는 서울대 의대 출신에 안랩의 성공까지, 탄탄대로를 달린 엘리트지만 정치권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당인 새정치연합을 창당하던 중 민주당과 통합해 김한길 의원과 공동대표가 됐지만 지난해 진두지휘한 두 차례의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
안 의원은 당 비상대책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자숙의 기간을 가진 후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1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생행보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다. 공식적으로 그가 직접 기자들을 불러 모은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을뿐더러 비공식적으로는 계파가 다른 국회의원들을 만나 면담하거나 언론사들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등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공동대표 시절에도 국회의원들과 접촉이 적고 측근들마저 “안 의원의 속마음을 모른다”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이미지를 지녔던 것에 비하면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최근 안 의원은 경제 토론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12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40년 장기불황 위기 극복’에 대한 첫 번째 토론회를 가졌고 지난 13일 가진 두 번째 토론회에서는 신당 창당을 함께했던 장하성 교수와 함께 나서면서 이목을 끌었다.
장 교수는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소장을 지냈지만 민주당과 합당 논의 과정에서 이견을 보이며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러나 안 의원은 지난 1년간 장 교수와 연락하며 경제 관련 조언을 듣고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토론회에 앞서 안 의원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자숙기간이 끝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의 행보에 대해 흩어진 옛 동지들을 규합해 세결집을 도모하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안 의원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문재인 의원과 경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 합당 과정에서 김성식 전 의원과 윤여준 교수 등 핵심 인사들이 이탈하고 그를 믿고 당에 합류한 인사들 사이에서도 안 의원의 ‘사람챙기기’에 대한 회의감이 커 과거 인사들의 세결집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안철수 의원이 당대표로서 새정치연합을 창당할 때도 조직 내에서는 그의 편향된 행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 의원 캠프 출신 인사는 “캠프서 활동했던 인사들은 간부급들도, 언론 담당도 모두 허수아비였다”며 “안 의원은 당시 강남의 모처에서 박경철 원장을 독대로 만난다는 말이 많았다. 안 의원의 핫라인은 그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합당 직전 신당 창당과정을 도왔던 정치권 관계자도 당시 캠프 분위기에 대해 “새정치추진위원회 측의 요청으로 캠프를 찾았다. 그 조직 안에는 창당을 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회의에 들어가려 하니 ‘안 의원이 참석했는데 낯선 얼굴을 안 좋아한다’며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라. 리더의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이 합당 이후에 기성정치와 맞붙었지만 지방선거 패배 등으로 힘을 잃으면서 리더로서의 구심력이 떨어진 것도 세결집이 어려운 이유로 지목된다. 안 의원은 지도부에서 사퇴하고 자숙하며 비상대책위원직도 고사했다. 여기에 새정치연합 지분으로 조직강화특위에 들어간 송호창 의원도 빠지면서 지역위원장에 도전한 안 의원 측 인사들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다수의 측근 인사들이 아예 지역위원장 공모를 포기한 가운데 정기남 전 안철수 대선캠프 비서실 부실장이 경기 성남 중원에 도전했지만 그간 터를 닦아온 정환석 지역위원장에 패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5 대 5 지분도 백지화되면서 안 의원 측근들을 배려해 1자리씩 더 만든 시·도당위원장직도 사라졌다.
세결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안 의원의 곁을 떠난 인사들은 그와 다시 함께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보류하고 있다. 안 의원의 공식 측근이었던 윤태곤 전 비서관과 금태섭 전 대변인은 현재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를 만들어 이사진으로 재직하고 있다.
윤 전 비서관은 국회 내에서 안 의원의 공보 활동을 담당하다 지난해 6월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후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윤 전 비서관은 “안 의원과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 안 의원이 장인상 당했을 때 여수에 한번 가고 이후 11월 말께 식사를 한 정도”라며 “방을 나올 때 이미 내 일을 하고 싶다고 했기에 (안 의원 쪽에) 합류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 전 대변인 또한 “안 의원 측에서 아직 합류하자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오면 그때 결정하겠다”며 “야당 상황이 어려우니 여기저기서 신당 논의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안 의원 측은 세결집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중요한 선거 등을 앞두지 않은 현시점에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의원의 최측근으로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감사를 맡고 있는 조광희 변호사는 “안 의원이 당대표를 할 때는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 안 의원은 의원실이나 소규모로 사람을 챙기는 정도”라며 “길게 보면 세결집을 해야겠지만 우리들이 당장 모여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계만 이어가면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안 의원이 과거의 세결집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을 다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안 의원은 2년간 리더로서의 역량이나 자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신뢰를 회복해야하는데 말로만 해서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선거 전에 모두 관심 있어 하는 공천권이 보장되면 모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다. 당에서 다시 권력을 잡거나 신당행 등 주목받는 행보를 한다면 재기 가능성이 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