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경찰에 붙잡힌 무서운 10대 4인조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이들은 범죄영화를 참고했다고 한다. | ||
부산 동부경찰서는 지난 5일 강도상해·상습절도·폭행 등의 혐의로 구아무개(18), 채아무개(18), 윤아무개(18), 김아무개군(17) 등 4명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구군은 이미 다른 공범들과 강도상해를 저질러 수배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지난 8월20일 새벽 2시 경남 마산시 서성동에서 해운동에 이르는 도로에서 행인 6명을 각목으로 폭행한 뒤 47만원을 갈취했던 것.
공범 2명이 검거되자 구군은 부산으로 옮겨 당시 부산에 있던 또 다른 10대 3명을 규합했다. 특수절도 3∼8범이던 이들 중 몇몇 또한 수배중이었다. 도피 자금이 절실했던 이들 4명은 함께 뭉쳐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특기’를 십분 발휘했다. 전과 8범으로 가장 ‘경력’이 많은 구군이 리더 역할을 맡았고, 윤군은 차량전문가로 운전과 차량절도를 담당했고, 몸이 날랜 김군은 날치기 전문, 중학교 유도부 출신인 채군은 일명 ‘퍽치기’를 할 때 ‘선방(먼저 공격하는 것)을 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경찰에 따르면 4인조의 첫 범행은 10월17일 낮 2시에 카오디오를 훔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운전면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뺨칠 정도로 구조를 꿰고 있었다고 한다. 차문을 따는 시간까지 포함해 이들이 범행을 마무리하는 데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10월27일 부산시 남구의 한 주차장에서 훔친 승용차를 이용해 이번엔 ‘날치기’에 나섰다. 주로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한 후 준비된 차를 이용해 도주했다.
10월29일 새벽 2시에 사상구에 주차된 차량에서 훔친 ○○경찰서 소속 ‘선진질서 회원증’으로 경찰 행세를 하기도 했다. 선진질서 회원은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지만 경찰 마크와 함께 관할 경찰서가 표시돼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경찰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것.
같은 날 밤 자정 무렵 이들 4인조는 부산역 앞 세차장에서 차를 닦고 있던 택시기사에게 “경찰이다. 신분증을 좀 보자”며 접근했다. 순식간에 네 명의 건장한 10대들이 택시기사를 에워쌌고 그 중 한 명이 택시 열쇠를 빼냈다. 이들의 수상한 행동에 위험을 직감한 택시기사는 그대로 도주했다.
이들은 이 택시를 새로운 범죄에 이용했다. 마치 영업을 하는 것처럼 취객을 태운 후 승객이 잠이 들면 지갑에서 돈을 빼낸 뒤 다시 지갑을 넣어두었다. 승객이 요금을 내려고 하면 지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선심쓰는 척 요금을 받지도 않고 내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오디오와 차량 절도만으로는 이들이 필요한 도피자금과 유흥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4인조는 날치기에 이어 일명 퍽치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11월3일 새벽 2시께 수영구 광안동의 한 주택가에서 행인 윤아무개씨(24)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그리곤 쓰러진 윤씨의 지갑에서 현금 16만원을 빼앗았다. 윤씨는 이 일로 코뼈가 골절되는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뒤이어 새벽 3시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액센트 승용차를 훔치고 오전 11시 사상구 주례동에선 차량 번호판 하나를 슬쩍했다. 이들은 훔친 승용차에 다른 차량에서 훔친 번호판을 갈아끼우며 자신들의 행적을 감추려 했다.
광란의 ‘범죄 질주’라고 해야 할까. 4인조의 범행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5일 새벽 0시30분엔 정아무개씨(여·45)의 가방을 날치기했고 두 시간 뒤에는 북구 화명동에서 행인 박아무개씨(35)를 폭행한 뒤 4만원을 뺏었다. 박씨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같은 날 새벽 4시에는 사하구 장람본동에서 행인 최아무개씨(51) 등 일행 2명에게 아무 말없이 다가가 뒤에서 PVC 파이프로 내리쳐 부상(늑골 골절 등)을 입힌 뒤 현금 3만원과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이날 새벽의 마지막 범행 후 이들 4인조는 은신처인 여관에서 잠을 자다 그간 이들을 추적해온 경찰에 검거됐다. 체포된 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는 ‘경찰에 잡힌 것은 실수였다’며 경찰을 비웃기도 했다. 마음만 먹었으면 자신들이 경찰을 제압하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피의자 중 윤군은 예전에도 경찰의 추적을 피해 4층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최근 일련의 사건 검거과정에서 경찰관이 순직하거나 상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검거하기 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4인조는 소년원에서 알게 된 사이였으며 그곳에서 범행에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 한 달여 동안 여관에서 합숙하며 부산 전역을 무대로 마치 ‘범죄 잡화점’을 방불케 할 만큼 갖가지 범행을 저질러왔다. 이들은 훔치거나 때리고 빼앗은 돈을 주로 술마시는 데 썼다고 한다.
이들의 행각은 영화 <와일드 카드>에 나오는 4인조 퍽치기 일당을 연상시키는데 이들은 실제 이 영화를 보고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공공의 적>과 같은 범죄를 다룬 영화들을 사전에 참고했다고 한다. 영화 속 특정 장면들을 현실에서 ‘리플레이’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