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로 모은 억대자금 사기 당해 다 털렸다
사건의 장본인은 부산 남구에 사는 김아무개씨(25). 주변에 따르면 김씨는 최근 몇 년간 ‘인터넷 중독자’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해왔다. 이번 사건에 연관된 모든 사기극 또한 인터넷에서 시작됐고, 또 인터넷에서 막을 내렸다. 한마디로 김씨는 사이버 세상 밖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처녀였다고 한다. 그런 김씨가 억대 사기극을 벌이고, 또 사기를 당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김씨는 고교 졸업 후 수년간 별다른 직업 없이 ‘백조’(여성 백수)로 지내왔다고 한다. 일용직 일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끔 용돈을 타다 쓰는 처지였다. 그녀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PC방에 가는 것. 평소 전자상거래에 관심이 많았고 인터넷에만 빠져 지냈기 때문에 김씨의 컴퓨터 실력만큼은 수준급이었다.
김씨는 처음엔 용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액세서리 등 작은 장신구를 판매했다. 그러나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김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돈벌이 아이템이 바로 ‘공동구매’ 사이트.
지난해 3월 김씨는 공동구매 사이트를 개설해 ‘MP3 플레이어, 노트북 등 전자제품을 시중가의 20~40% 가격에 공동구매해주겠다’고 글을 띄웠다. 물론 회원을 끌어모으기 위해 선전용으로 내놓은 거짓말이었지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느새 모인 회원만 2천3백여 명, 무려 3억여원에 이르는 돈이 김씨 수중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그것도 너무 쉽게 거액을 만진 김씨는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부 회원에게 정상적으로 물품을 보내다가 나머지 구매대금 1억4천만원을 가로챘다.
범죄가 지닌 중독성 때문이었을까. 김씨는 이내 다른 사기극을 시작했다. 이번엔 상품권 사기였다. 인터넷 카페에서 ‘구두 및 백화점 상품권을 시중가보다 30% 싸게 공동구매한다’고 속여 1천5백여 명의 회원들로부터 모두 1억2천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하지만 김씨는 회원들의 신고로 지난 2월18일 부산 서부경찰서에 구속되고 만다. 김씨가 두 건의 사기로 가로챈 금액은 모두 2억6천여만원. 하지만 뜻밖에도 김씨는 거의 빈털터리 상태였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대부분을 로또복권 구입하는 데 썼다”고 말했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김씨의 진술은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로또 구매 대행업자인 공아무개씨(41)에게 1억원을 주고 복권을 구입토록 했으나 최고 3등에 몇 장 당첨되는 데 그쳤다. 공씨로부터 돌려받은 돈은 절반인 5천만원. 김씨는 다시 지난해 12월 또 다른 대행업자인 한아무개씨(43)에게 5천만원을 맡겼지만 이 역시 1천9백만원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초에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대행업자 이아무개씨(52)에게 한 번에 1억원을 맡겼지만 겨우 1천3백만원만을 건졌을 뿐이었다.
김씨는 복권 낙첨을 자신의 운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들 구매대행업자들이 김씨가 맡긴 돈 중 일부로만 로또복권을 구입하고 각각 3백만원에서 7천7백만원을 횡령했던 것. 김씨가 인터넷 사기로 번 돈을 역시 인터넷 사기로 날린 셈이다.
그간 김씨는 매일 남들이 출근하는 오전시간에 PC방으로 ‘출근’해 저녁에 집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해왔다. 경찰이 김씨를 검거한 곳도 바로 PC방이었다. 경찰은 “김씨 말로는 친구도 없었다고 하니 인터넷이 김씨의 유일한 친구였던 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