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더 미식’ 론칭 후 적자 확대 지속…“고가정책 버리고 핵심 역량 기반 다각화 필요”
하림그룹은 자회사 하림산업을 통해 2021년 하반기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 ‘더 미식’ 를 론칭한 후 2023년 상반기엔 스트릿푸드 브랜드 ‘멜팅피스’, 하반기엔 어린이 HMR(가정간편식) ‘푸디버디’를 론칭하는 등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5년간 계속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하림그룹은 하림지주의 이사회가 금융기관을 통해 하림산업에 500억 원을 차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9월 26일 공시했다. 하림산업은 지난 8월 8일에도 같은 액수를 차입해 두 달간 총 1000억 원을 단기 차입했다. 하림산업의 금융기관 차입금액은 총 2307억 원에서 3307억 원으로 43.3%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하림산업의 차입금 의존도는 48.2%로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입금이 차지한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지난 9월 30일 ‘일요신문i’에 “차입금의 용처는 공개할 수 없다. 다만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만 밝혔다. 하림이 말한 ‘투자’는 2021년부터 하림산업을 통해 계속 해오고 있는 가공식품 신제품 개발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림은 전북 익산 공장에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가공식품 라인업을 늘려가고 있다. 2021년 론칭한 프리미엄 브랜드 ‘더 미식’을 통해 △라면 △즉석밥 △만두 △요리밥 △요리면 △국물요리 등의 가정간편식(HMR)을 선보이고 있다. 2023년 상반기 선보인 브랜드 ‘멜팅피스’는 △튀김 △함박까스 △핫도그 등 분식류를, 하반기 론칭한 유아식 브랜드 ‘푸디버디’는 △어린이 전용 라면 △핫도그 △국물요리 △반찬 등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하림산업은 적자에 빠졌다. 하림산업의 영업손실액은 ‘더미식’을 론칭한 2021년 589억 원에서 2022년 868억 원, 2023년 1096억 원으로 늘었다. 부채 증가폭은 자본 증가폭을 웃돌고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부채가 362.8% 증가하는 동안 자본은 17% 감소했다.
실적 저조로 하림산업의 식품 부문을 담당하는 대표이사는 수차례 바뀌었다. 하림산업은 부동산 개발사업 부문과 식품사업 부문별로 대표를 세워 공동대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부동산 개발사업 부문은 2019년부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형인 김기만 대표가 맡고 있다. 식품사업 부문은 2019년 12월 이강수 전 공동대표부터 윤석춘 전 대표, 허준 직무대행, 민동기 전 대표, 최근 부임한 강병규 대표까지 약 5년간 5명의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하림산업의 손실은 고스란히 하림지주에 악영향을 줬다. 하림지주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약 1년간 네 번에 걸쳐 운영자금 등을 목적으로 1300억 원을 하림산업에 출자했다. 하림지주는 하림산업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단기차입금까지 이어지면서 업계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더 미식’ 출시 초기부터 이어온 프리미엄 제품을 표방한 ‘고가 정책’부터 수정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이미 쟁쟁한 기업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신생 브랜드가 안착하기 어려운데 하림은 꾸준히 신제품을 내고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고군분투하는 걸로 보인다”며 “처음부터 너무 프리미엄 콘셉트를 들고 나왔는데, 라면이나 즉석밥 카테고리에서 ‘프리미엄’은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가격 합리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더 미식 장인라면’은 라면시장에서 점유율이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햇반’과 오뚜기의 ‘오뚜기 밥’이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하림의 즉석밥은 한 자릿수 점유율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격 대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맛과 품질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맛’이다. 회장님이 직접 나서 홍보‧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결국 맛있지 않으면 마케팅만으론 오래 끌고 가기 어렵다”며 “농심의 ‘신라면’과 ‘신라면 블랙’의 맛이 확실히 다른 것처럼 비싼 값만큼 맛이 있어야 한다. (하림의) 가공식품 R&D 역량이 궁금해지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하림이 갖고 있는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전략 설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에는 식품 시장에서 바디프로필 등의 유행을 선도하는 MZ세대를 공략해 고단백‧닭 가공류 제품이 인기인데 하림이 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분야와 정반대로 전략을 잡은 것 같다. 즉석밥, 라면 가공식품은 오히려 몸 관리에 치명적인 식품 아닌가”라며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한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앞의 식품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고 싶다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하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닭’인데 신제품과 연결고리가 부족해 보인다”며 “프리미엄, 키즈 공략 전략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 및 신제품 계획 등에 대해 하림산업 측에 질의했으나 하림산업 관계자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