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수-저격수 인연 ‘입심’ 배틀 주목
지난 22일 여야 혁신위 공동주최로 열린 ‘오픈프라이머리 토론회’에서 여야 중진 여성의원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입심’ 대결이 펼쳐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혁신위 공동주최 ‘오픈프라이머리 토론회’에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과 박영선 새정치연합 의원의 맞대결 장면은 단연 정치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두 의원은 각 당을 대표하는 여성 의원이자 이명박(MB) 정부 시절 나 의원은 ‘MB 수비수’로, 박 의원은 ‘MB 저격수’로 존재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의원은 서울시장에 도전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두 의원은 이번 토론회에서 맞붙었던 오픈프라이머리와도 인연이 깊다. 나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며 2011년 5월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비상대책위원장을 할 당시 공약으로 오픈프라이머리의 한 방식인 ‘톱2프라이머리’를 내세웠다. 특히 두 의원에게 관심이 집중됐던 이유는 시련을 겪고 재기를 노리는 여성 주자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나 의원의 경우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자숙’하다가 지난해 7월 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할 당시 세월호법 협상 문제로 타격을 입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공천개혁의 단골 정책으로 꼽히는 오픈프라이머리는 두 의원의 개혁적 성향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아젠다이기도 하다.
두 의원의 오픈프라이머리 안은 내용 면에서 이견을 보였다. 나경원 의원의 안은 18대 국회 ‘친이계표’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해당 안은 여야가 같은 날 ‘동시’ 오픈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선거일 전 60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을 예비선거일로 법제화하고 신인 진출 어려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신인 여성·장애인 후보자에 디딤돌 점수 10~20% 가산 △전략공천 없음 △지역구 국회의원 30% 여성 추천 강제 △비례대표 60% 이상 여성추천 △비례대표 석폐율제 등을 명시화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를 비롯한 친이계 주자들은 여야가 같은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하에 국민경선을 치르자고 주장하며 친박과 각을 세운 바 있다. 해당 안은 현재 김문수 혁신위원장을 포함, 친이계와 비박 의원들로 구성된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공식 안으로 채택됐고 현재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이번에 나경원 의원의 혁신안이 18대 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 보라. 나 의원이 오픈프라이머리로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친박과 각을 세우면서 그 총대를 멨다면 지금은 김무성 대표를 위해 총대를 멘 셈”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가 친박을 견제하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를 공약으로 추진하면서 친이계 세력과 공통의 이해관계가 형성된 점도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이들의 관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야 혁신위에서 오픈프라이머리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20대 총선 공천 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영선 의원은 독자적으로 예의 ‘톱2프라이머리’를 내세웠다. 톱2프라이머리는 예비선거에서 정당에 상관없이 두 명의 후보자를 내는 것으로 2004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처음 실시됐다. 박 의원은 해당 방식을 통해 소수 정당에게도 동등하게 기회를 부여하고 지역·정당·계파 간 싸움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론으로 채택된 건 아니지만 박 의원은 톱2프라이머리가 ‘최신형’이라고 어필하고 있다. 박 의원은 토론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서 30년여 동안 시행착오 겪은 뒤 나온 것이 톱2프라이머리다. IT(정보기술)도 뒤늦게 따라가려면 최첨단을 도입해야하듯 가장 진화된 방식을 도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서로의 방안에 대한 문제제기로 각을 세웠다. 나 의원은 톱2프라이머리가 “정당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박 의원은 나 의원의 오픈프라이머리가 “소수 정당에 대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야 혁신위에서 활발하게 오픈프라이머리가 논의되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오픈프라이머리는 그동안 꾸준히 나왔던 이야기다. 여야가 각각 혁신안을 들고 정개특위로 들어간다. 그런데 정개특위에서 결정해 가지고 나오는 안을 보면 처음과 달리 형편없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폄하했다.
전문가들도 선거구제 개편이 조기에 결정되지 못한다면 올해 오픈프라이머리도 현실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조기에 선거구 재획정이 이뤄지고 올 상반기까지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합의를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가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선거구 재획정이 조기에 돼야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구 획정이 되더라도 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나 경선에 대한 합의가 늦어져 연말까지 끌고 가면 분명 문제가 된다. 올해 상반기에 합의가 안 되면 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선거구 재획정이 지역구 국회의원들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에서 올해 공천 전에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정치공학적으로도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두 여성 의원들의 ‘브랜드화’에 멈출 가능성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은 이렇게 내다봤다.
“정치인들이 볼 때 오픈프라이머리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현역 의원들은 시행돼도 지명도 면에서 유리하지만 전략공천이나 당원이나 대의원들 상대로 하는 공천이 더 편리하다. 일반 여론조사까지 포함되면 당선에 불안한 요소, 귀찮은 요소가 된다. 신인들도 진입장벽이 높아 환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가 절대적인 지지를 못 받는 것이다.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주장돼 왔고 명분적 성향이 강했다. 나경원 박영선 두 의원도 정치개혁의 ‘자기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
비박-친박 ‘오픈프라이머리’ 논쟁 비박이 띄우면 친박이 엎고… “제18대 국회 때 제가 정개특위 위원이었다. 당시 여야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동시에 한다는 기초적인 내용에 대해 내부적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돌연 파기됐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둘러싼 두 계파의 갈등은 2003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열린우리당에서 오픈프라이머리로 흥행에 성공하자 한나라당에서도 오픈프라이머리 바람이 불었다. 이에 당시 박근혜 의원은 “당의 룰이 정해졌으면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며 반대한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이 정권을 되찾아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픈프라이머리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갈등은 2012년 대통령 후보 경선 전에도 드러난다. 당시 비박계 대권주자들이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이재오 의원 등은 오픈프라이머리를 강력히 주장한 반면, 황우여 당시 당대표를 비롯한 박근혜 의원은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든다며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이 같은 비박-친박 간 오픈프라이머리 논쟁은 당내 입지에 따른 공천의 유·불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당원투표에서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1.5%포인트 차로 패한 것이 ‘악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 후보인 비박계 김무성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 친이계처럼 김무성 대표도 비슷한 케이스다. 당내 입지에 의존하기보다 여론조사까지 포함하는 것이 친박보다 유리하다고 보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