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도 여당 찍는데, 우리도 고마 확…”
22일 대구의 3대 재래시장 중 한 곳인 팔달시장에는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에서 만난 택시기사에게 ‘정치’를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선거가 없는 정치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지난 연말 청와대 문건 파동과 소란스러운 여당-청와대 관계, 최근 연말정산 파동까지 이어지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은 듯했다.
<일요신문>의 첫 행선지는 대구 팔달시장. 활력이 넘치는 재래시장을 기대했지만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 분위기마저 연출됐다.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정치 관련 질문에 “모른다”, “관심없다”는 식의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날 상인들의 관심은 다름 아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였다. 시장 안 가게에 놓인 텔레비전의 70~80%는 대법원 선고를 생중계하는 종합편성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포목전에서는 상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세 명이 이를 지켜보던 중, “저런 건 잘하는 기재”라고 했다. 또 다른 중년 여성은 “내는 박근혜 불쌍타. 다들 잡아먹을라카고, 고생만 직싸리 하는데 아유…”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들이 ‘열심히 한다, 노력한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것과 맥락이 닿는 듯했다.
시장 상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오는 4월에 개통 예정인 대구지하철 3호선인 듯했다. 팔달시장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는 “처음 공사할 때는 불만이 상당했다. 차도 밀리고 상가 밀집 지역이나 도로 한가운데를 관통하니까 근처에 사는 이들이 답답함을 호소했다”면서도 “막상 개통하면 또 좋아할 것 같다. 팔달교(금호강)를 거쳐 칠곡 쪽은 강을 따라 이어져 있어 경관도 좋다. 여기는 아파트 가격도 전국에서 제일 많이 올랐다더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지역은 대구 북구을. 이곳은 20대 총선이 1년 넘게 남았지만, 벌써부터 공천을 향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3선의 서상기 의원에 맞서 지난해 대구시장 경선에 나섰다 패배한 주성영 전 의원과 이종화 전 북구청장 등이 출사표를 던졌고,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출신 홍의락 의원 역시 일찌감치 자신의 지역구로 정하고 기반을 닦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상기 의원은 여느 때보다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역사무소에서 만난 서 의원 측근은 “(서 의원이) 주말마다 지역에 내려온다. 아침 7시에 지역 인사들과 오찬을 갖고, 끝나면 당원 및 지지자들과 등산을 한다. 벌써 500회가 넘었다. 1년이 52주니 한번 계산해 보라”며 “(대구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건) 솔직히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항상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보다 먼저 변화하고 있기에 실제로 결과가 달라지리라는 것은 아직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사무실에 붙은 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 사진(왼쪽)과 새정치민주연합 홍의락 의원이 지난 연말 오픈한 북카페 모습.
열세인 홍의락 의원은 젊은 세대를 공략하고 있었다. 지난 연말 지역사무소를 ‘북카페’로 개설하고 지역 대학생들은 명예보좌관으로 뽑아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틈새를 파고드는 중이다. 홍 의원의 특보는 “북구을은 도농복합지역이자 신도시 느낌이 강한 곳이다. 일방적인 여당 성향이라고 말하긴 힘들다”라며 “다니다 보면 현 정부에 대한 비토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된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북구을과 함께 가장 지역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수성갑. 이곳은 새정치연합 소속 김부겸 전 의원이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그는 이한구 의원을 상대로 40.4%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수성갑 유권자는 김부겸 후보에게 50.1%의 지지를 보내기도 해 내년 총선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태다.
수성갑은 새누리당 대구시당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시당의 팀장급 관계자는 “현재 당원들의 불만과 우려가 상당하다”며 “특히나 지역 역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렇게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대구 경제가 나아진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20년째 GRDP(1인당 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는 당원들은 다 외웠을 정도”라며 “대구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요구에 응하다 보니 초선 정치인이 많은 것도 문제다. 지금 PK(부산·경남)만 해도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무게감 있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대구는 그렇지 않다. 중앙당에서 선거 때마다 희생만 강요하고 키워줄 생각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정현 학습효과’도 거론했는데, “대구는 원래 호남보다 야당 의원들에게 우호적이다. 보통 20~30%, 많게는 40%까지도 지지를 보내준다.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찍어주면서 바뀌고 있는데, 우리도 야당 의원 한두 명 배출시켜서 서로서로 경쟁시키면 좋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다. 김부겸 전 의원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을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신문>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듣기 위해 대구 중앙로로 향했다. S 홈쇼핑 콜센터 직원들을 관리하는 30대 직장인과 20대 아동 심리치료사와의 술자리였다. 30대 직장인은 “연말정산 제도가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1200만 원 버는 사람은 6% 내는데, 1201만 원 버는 사람은 15%를 낸다면 누가 세금 내고 싶겠나. 1200만 원 버는 사람과 4600만 원 버는 사람이 똑같다는 것도 문제”라며 “저야 연말정산 담당이라 조금 아는 정도지만, 저 말고 다른 직원들은 인적공제가 뭔지, 국세청 정보제공 동의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잘 모른다. 공인인증서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게 서민들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내 돈 더 뜯어간다고 하면 분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20대 심리치료사는 다소 취기가 오르자 기자를 상대로 “정윤회 씨는 정말 박 대통령과 그렇고 그런 관계인 것이냐”, “그걸 덮기 위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일을 키운 것이냐”는 등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에 대해 되묻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광우병 사태와 용산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 너무 충격이 커서 제 주변에는 새누리당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때는 평생 안 찍고 싶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정치에 대한 불신만 쌓이고, 어느 쪽도 답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역대 대통령 3년차 1분기 지지율 비교해보니 박, 이대로면 ‘꼴찌’ 수준 지난 2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1월 셋째 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여권에 큰 충격파를 안겼다. 이미 전주 취임 이후 최저치인 35%를 기록한 데 이어 5%포인트(p) 하락한 30%를 기록한 것이다. “선거가 없는 올해가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밝힌 박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임기 3년차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어떤 정도의 수준일까. 한국갤럽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임기 3년차 1분기(1~3월)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임기 3년차 1분기 지지율이 49%를 기록했는데,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는 2000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높은 지지율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다음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4%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년차 1분기 평균 지지율이 28%로 가장 낮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33%로 그 뒤를 이었다. 박 대통령의 경우 1월 첫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 ‘40%→35%→30%’ 순으로 하락하고 있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는 높고 김영삼 전 대통령(37%)보다 낮은 셈이다. 이번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된 연말정산 및 세제개편 여론이 아직 수습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 정부 3년차 1분기 지지율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한편 이번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구·경북 지역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50%를 기록해 전주보다 4%p 소폭 반등해 정부여당의 위기를 의식해 보수 지역이 결집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데이터가 튀어 보이긴 하는데, TK 지역이 결집했다고까지 분석할 근거는 없다. 장기적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박 대통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