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고 벌인 범행 술김에 술술
▲ 지난 11일 경찰이 충북 청원군 내수읍 뒷산에서 내연녀를 목졸라 숨지게 하고 암매장하는 등 3명을 연쇄살해한 용의자 김씨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다. | ||
김씨의 범행을 접한 이 지역 시민들은 “유영철 같은 살인마의 소행이냐”며 공포에 질린 반응이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청주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김씨는 내연녀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각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묻지마식 연쇄 살인 행각을 벌인) 유영철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술만 마시면 포악해지면서 자제력을 잃는 김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김씨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끔 유도한 원인 중 하나가 술이었다면, 그를 검거하는 계기가 된 것도 술이었다. 김씨는 범행 후 같이 술을 마시던 한 후배에게 자신의 연쇄살인을 털어놓는 바람에 이 후배의 제보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수사 결과 대다수 살인범죄자와 마찬가지로 김씨의 끔찍한 범행 뒤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충북의 한 농가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가정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간에 대화는 없었고 어린 김씨는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 특히 아홉 살 차이 나는 그의 형은 어린 김씨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잘못이라도 하게 되면 가차 없이 돌아오는 폭력과 이로 인한 수치심으로 일찌감치부터 김씨는 ‘빨리 어른이 돼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한 수사관계자는 “가족들에게 정을 느끼지 못한 김씨는 어릴 적 유일한 꿈이 ‘빨리 스무 살이 돼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 같은 가정환경 속에서 김씨는 고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제아로 커갔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집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가정을 떠나서도 김씨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스무 살 시절 처음 만난 그의 첫사랑을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겼다. 한 수사관계자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버리고 자신과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갔을 때 김씨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여성에 대한 묘한 증오심을 품기 시작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직후인 지난 85년 김씨는 강간치상 혐의로 처음 철창 신세를 지면서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 후로도 김씨는 특수강간, 폭력, 특수절도 등의 죄목으로 13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3월 특수절도 혐의로 받은 3년 형기를 마치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막상 출소는 했지만 마땅한 일거리는 없었다. 김씨는 운수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중국을 오가며 비아그라, 장뇌삼 등을 밀수하며 지냈다. 중국에서 한 조선족 여성을 사귀면서부터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씻고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이 조선족 여성과는 이미 중국에서 예식까지 올렸고, 7월에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조선족 약혼녀’ 외에도 가까이 지내던 여성이 둘이나 더 있었다. 한 수사관은 “불우한 성장으로 인한 애정결핍과 첫사랑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 김씨에게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성편력과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다. 정에 굶주렸던 김씨가 어찌 보면 여성들을 통해 과거를 보상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그의 첫 살인이 시작된다. 동거하고 있던 내연녀 성아무개씨(43)와 자신의 방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성씨가 자신의 뺨을 때리자 이에 격분,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김씨는 술기운에서 깨어난 뒤 자신의 범행을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거녀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었을까. 범행 후 김씨는 성씨의 시신을 끌어안고 4일 동안 같이 지내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후배 A씨를 불러 사체를 옮기는 것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A씨가 이를 거부하고 자수를 권유하자, 김씨는 혼자서 성씨의 사체를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했다.
한 수사관은 “김씨가 성씨를 많이 좋아했다. 김씨가 성씨의 사체를 껴안고 잠을 자는 등 숨진 후에도 사체와 함께 엉엉 울면서 4일을 보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성씨의 사체를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고 난 뒤에도 매일같이 암매장 현장을 찾아가 술을 마시며 눈물을 뿌렸다고 한다. 그 후로도 지난 몇 달간 비 오는 날이면 숨진 성씨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 성씨의 사체가 묻힌 곳을 찾아갔다는 것.
하지만 김씨의 범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성씨 살해 후 가까이 지내던 또 다른 여성 박아무개씨(49)를 마찬가지로 ‘술김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피살자가 잔인하게 살해된 점을 들어 원한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박씨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 그 중 김씨가 최근까지 박씨와 자주 통화했으나 사건 발생 후 행방이 묘연해 경찰은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두고 그의 행방을 찾는 데 수사를 집중했다. 그러던 중 김씨의 후배 A씨가 경찰에 결정적인 제보를 해왔던 것이다.
수사관계자는 “김씨가 술을 마시고 A씨에게 지난 3월 성씨는 물론이고 지난 94년 괴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지씨도 살해했다고 털어놨다”며 “A씨의 제보를 받고 김씨가 단순 살인범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이라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이 수사관계자는 “김씨는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특히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술만 마시면 김씨의 공격성이 두드러지고 거의 이성을 잃는 수준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박씨를 살해한 이틀 후 경찰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이던 와중에도 또 한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 지난 5일 오후 6시30분께 김씨는 친한 후배 최아무개씨(31)의 시골 집에 찾아갔다. 그리곤 최씨의 딸 최아무개양(13·초등학교 5년)을 꾀어내 자신의 승용차로 데리고 나가 성폭행했다. 이때도 김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성폭행 후 최양이 “아빠한테 이르겠다”고 말하자 김씨는 이 말에 격분, 최양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그의 세 번째 ‘음주 살인’이었다.
김씨는 ‘술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술에서 깬 뒤 보인 언행은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김씨는 최양을 살해하고 난 뒤 다시 술을 사들고 후배 최씨의 집에 찾아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최씨와 술을 마셨다. 또한 다음 날 “같이 최양을 찾아보자”며 최씨와 함께 인근 마을 일대를 뒤지기도 했다. 수사관계자들은 “김씨가 박씨와 최양을 이틀에 걸쳐 살해한 후 태연히 행동한 것을 보면 과연 그가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스럽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지난 10일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외사촌형을 만나다 잠복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그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부인했으나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
한 수사관은 “김씨가 계속해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으나 증거와 정황을 들이대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백 전 주변을 정리하려는 듯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약혼녀와의 통화와 가족들과의 면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씨는 약혼녀와의 통화에서 안부를 전하며 “그냥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라.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만을 전했다고 한다. 차마 약혼녀에게는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씨의 가족들은 애초 김씨와의 면회를 거절했다고 한다. 성인이 돼 집을 떠난 후 고향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던 김씨가 살인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 달갑지도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지내온 가족들이 김씨를 이미 ‘버린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 경찰의 설득으로 어렵게 가족들과 면회한 김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로써 김씨의 우발적인 연쇄살인의 행각은 종지부를 찍었다.
경찰은 지난 94년 괴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지아무개씨(당시 27세) 사건도 김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씨 살해혐의에 대해서 김씨는 아직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94년 4월께, 괴산의 한 당구장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지씨가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목졸라 살해한 후 농수로에 사체를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수사관계자는 “10년이나 지난 사건이라 증거를 찾기가 어렵지만 당시 주변 사람으로부터 유력한 증언을 확보해 놓은 상태여서 앞으로 김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씨 사건 개요
2005년 3월 중순
충북 청주시 사창동 집에서 말다툼 끝에 동거녀 성아무개씨(43) 살해, 암매장.
2005년 6월3일
충북 청주시 봉명동 호프집에서 핀잔 듣고 내연녀 박아무개씨(49) 살해.
2005년 6월5일
충북 진천군 후배 최씨네 마을 인근에서 최씨의 딸 최아무개양(13) 성폭행 후 살해, 암매장.
94년 4월 ?
충북 괴산군에서 사체로 발견된 지아무개씨(당시 27세) 살해 여부 수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