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도 못 알아본 ‘꽐라 선수’ 2군행
프로야구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은 두 달가량 운동만 하며 지낸다. 일부 선수는 이러한 환경을 참지 못해 ‘사고’를 치기도 한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놀려는 자와 말리는 자
3년 전의 일이다. 미국 애리조나 1차 캠프를 마치고 오키나와로 둥지를 옮긴 한 구단. 밤낮이 바뀐 시차와 긴 이동거리에 적응하느라 선수들의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A 감독도 도착 첫 날 간단히 몸만 풀게 한 뒤 ‘무조건 휴식’이라는 지령을 내렸다. 하루빨리 컨디션을 회복해야 남은 훈련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피곤에 젖은 선수들도 일찌감치 각자의 방에서 곯아 떨어졌다. 안심한 A 감독은 가족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도착 인사를 전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호텔 로비로 향했다. 그때 호텔 앞으로 콜택시 한 대가 들어와 멈춰서는 게 보였다. 선수 시절부터 코치 시절까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A 감독이다. 곧바로 ‘촉’이 왔다. 호텔 앞에 서 있던 다른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에게 “앞 택시에 사람이 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자를 푹 눌러쓴 B 선수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 콜택시에 올라탔다. 평소 감독이 “다 좋은데 유흥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라고 한탄하던 선수였다. 감독이 탄 택시는 조용히 B 선수의 콜택시 뒤를 쫓았다. 행선지는 감독의 예상대로 일본의 유명 도박게임인 파친코 영업장 앞이었다. 눈이 잔뜩 충혈되고도 파친코를 위해 잠을 포기한 B 선수가 입구로 향하는 순간,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내일 당장 짐 싸!” 실제로 감독은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구단 매니저를 불러 한국행 비행기표 한 장을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B 선수는 다음 날 아침 감독의 방에 찾아가 싹싹 빌었다. 귀국 조치도 철회됐다. 그러나 이후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캠프를 치러야 했다.
두산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수비 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파친코와의 전쟁
실제로 일본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파친코는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치르는 구단들에게 가장 골칫거리다. 일본 어디에든 파친코 영업장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물론 적당히 하면 나쁠 것도 없다. 선수들도 스트레스를 풀 구석이 필요하다. 대부분은 야간훈련이 없는 휴식일 전날 밤이나 휴식일 당일 낮에 영업장을 찾아 가볍게 파친코를 즐긴다. 그러나 늘 지나친 게 문제다. 특히 승부욕이 강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돈을 잃기 시작하면 결말이 안 좋아진다. 5년 전 C 선수가 그랬다. 하필이면 C 선수의 소속팀이 훈련하던 구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 파친코 영업장이 도사리고 있던 게 문제였다. 잃은 금액이 점점 커지자 C 선수는 급기야 훈련 도중 점심식사까지 거른 채 파친코를 하러 달려갔다. 나중에는 연습경기 도중 사라져 문제를 키웠다. 게다가 파친코 기계에 무력으로 화풀이를 하다 가게 종업원과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구단이 사태를 무마하느라 애를 먹었다. C 선수는 오래지 않아 은퇴했다.
파친코 때문에 선수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D 선수는 연봉이 3000만 원밖에 안 되던 시절 전지훈련에 참가했다가 파친코의 마력에 빠졌다.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지자 같은 팀의 고액 연봉자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도박을 계속 했다. 귀국할 때쯤에는 석 달 치 월급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시범경기 내내 다른 지인들에게 돈을 꿔서 동료들에게 빌린 돈을 돌려 막느라 바빴다. 이제는 연봉이 많이 올랐지만 파친코를 자제하고 있다는 D 선수는 “그나마 나처럼 늦게라도 돈을 다 갚는 선수는 양반이다. 일부 고참 선수들은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에게 돈을 빌려 파친코를 한 뒤 입을 싹 씻기도 했다. 선배라서 강하게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는 후배들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넥센 선수들(왼쪽)과 여가 시간 모형헬기 무선조종을 하고 있는 김태균.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한화 이글스
#오해 부른 보디랭귀지
E 선수는 입단 당시부터 구단의 기대를 많이 모았다. 이른바 ‘하드웨어’라 부르는 체격도 좋고 재능도 충분히 빼어났다. 그러나 술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늘 사고를 쳤다. 소속팀을 몇 차례 옮겨야 했던 가장 큰 이유도 ‘술’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애리조나 캠프에서 벌어졌다. E 선수는 훈련을 마치고 인근 한국 술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다시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술집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 갑자기 소변을 참기 힘들어졌다. 한국에서 종종 그랬듯이, 적당히 어두운 기둥 뒤에 서서 노상방뇨를 시작했다. 하필 그 장면이 현지 경찰에게 적발됐다. 영어를 전혀 못 했던 E 선수는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호통을 치자 깜짝 놀랐다. 손짓 발짓을 섞어 보디랭귀지로 소통을 하려 했다. 그러나 눈앞의 현행범이 야구선수인지 몰랐던 경찰은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남자가 팔을 휘두르자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오해했다. 총을 꺼내들고 ‘손들어!’를 외치며 E 선수를 강제로 포박했다. 결국 구단 직원이 잠을 자다 말고 혼비백산해 경찰서로 달려와야 했다. 다행히 E 선수는 무사히 훈방됐지만, 다음 날 보고를 받은 감독은 노발대발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팀 훈련 분위기도 잔뜩 가라앉았다.
#선수들도 술이 웬수
과도한 음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선수의 훈련에 지장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때로는 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한국식 술집이 많은 하와이에서는 술로 인한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은퇴한 F 선수가 심야 음주 폭력사건에 휘말린 뒤 긴급 출동한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 혐의로 법정에 선 것은 유명한 일화다. F 선수의 당시 소속팀은 이듬해부터 더 이상 하와이로 전지훈련을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캠프가 모두 끝난 귀국 전날은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가장 긴장하는 날이다. 힘든 일정을 무사히 마친 선수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다 보면 주량을 제어하기 어려워져서다. G 선수 역시 그랬다. 감독이 직접 선수단에게 “오늘은 특히 몸조심해라. 내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다. 깊은 새벽에 만취한 채로 호텔에 겨우 돌아왔다. 문제는 서슬 퍼런 감독이 호텔 로비에 앉아 정말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G 선수는 눈앞에 서 있는 감독의 얼굴조차 몰라봤다. 방도 아닌 로비에 그대로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G 선수는 귀국 직후 2군으로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이드됐다.
#한밤 중의 훔쳐보기
술과 도박만이 스프링캠프의 적은 아니다. 때로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채 부끄러운 일에 연루되는 선수들도 나왔다. H 구단의 I 선수는 미국 캠프에서 같은 숙소로 신혼여행을 온 젊은 부부의 방을 몰래 훔쳐보다가 들켰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혼비백산한 신혼부부가 줄행랑을 치는 I 선수의 뒤통수를 얼핏 봤고, 호텔 측에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깎은 남자였다. 조사해 달라”고 신고했다. 호텔 측은 당장 투숙객들의 헤어스타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놀란 H 구단은 곧바로 캠프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머리카락을 짧게 깎으라고 지시했다. 나이 마흔이 다 돼가는 고참들부터 갓 입단한 신인들까지 모두 I 선수의 나쁜 버릇 때문에 삭발을 감행해야 했다. 결국 호텔 측이 범인을 찾아내지 못해 사건은 흐지부지됐지만, I 선수는 구단으로부터 엄중한 자체 징계를 받고 고개를 숙였다. 동료들의 원성과 손가락질도 당연히 따라왔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전훈에 필요한 비용은? 한해 농사 좌우 10억 원은 쏜다 프로야구단의 1년 운영비는 구단 형편에 따라 많이 다르다. 평균적으로는 200억 원 안팎이다. 한 달 반 정도 전지훈련을 떠나려면 그 운영비의 5%에 해당하는 약 10억 원이 들어간다. 스프링캠프는 한 해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시기. 구단들도 세밀한 부분까지 최대한 전폭적으로 지원하려고 애쓴다. 1월 18일 일본 고치에 차린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김성근 감독이 야수들에게 베이스러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아무래도 숙박비와 식비로 가장 많은 돈을 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지원프런트를 합하면 총 70여 명이 캠프를 떠나는데, 이 많은 인원이 40일 넘게 호텔에 머무르려면 엄청난 돈이 드는 게 당연하다. 감독과 용병을 제외하면 모두가 2인 1실을 쓰는데도 그렇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비 역시 만만치 않다. 아침과 저녁에 하루 두 끼를 모두 호텔에서 해결해야 해서다. 점심식사는 대부분 인근 한식당과 계약해 야구장으로 직접 공수한다. 이밖에도 김치 구입을 위한 부식비가 따로 책정된다. 약 500만~700만 원 정도다. 현지 호텔이 선수단에 김치를 제공하더라도 맛이 한국산과는 확실히 다르다. 출발 때부터 엄청난 양의 김치를 사서 현지로 가져간다. 그 다음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 항공료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한 차례 전지 훈련지를 옮기는 구단이 많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왕복 항공료를 포함해 1억원이 훨씬 넘는 돈이 필요하다. 현지에서 선수들이 사용하는 버스 대여비와 기름값도 예산에 포함된다. 야구장 역시 미국과 일본 구단의 전용 훈련장에 임대료를 내고 빌려 쓴다. 그 공간을 확보하는 경쟁도 치열하다. 2월 중순 이후 오키나와에서는 매일매일 다른 구장으로 옮겨 다니며 연습경기를 치러야 하는 팀까지 생길 정도다. 현지 구장 사정이 좋지 않으면 구단이 직접 돈을 들여 부분 보수를 해야 하니, 여기에도 50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안 들어가는 부분이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환율이 하락하면서 구단들이 예산을 짜기 수월해졌다. 2008년 후반기에 불어 닥친 경제 한파로 몇 년 간 환율이 급등했던 시기에는 같은 장소에서 먹고 자고 훈련하는 데도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다. 돈을 잘 쓰기로 유명한 구단들조차 훈련 일정을 예년보다 축소해야 했을 정도다. 지난해부터 환율 사정이 좋아지면서 예산이 확실히 절감되기 시작했고, 올해는 더 많이 줄었다. 이제 적어도 캠프에서 허리띠를 꽁꽁 졸라맬 필요는 없다. [은] |
초창기 전지훈련 풍경 전훈 한번 떠나려면 안기부 교육까지…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2년째인 1983년에 처음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원년 우승팀 OB가 당시 여섯 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대만으로 떠났고, 나머지 팀은 모두 일본으로 향했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전지훈련지는 괌, 사이판, 필리핀 등으로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구장을 훈련장소로 택한 구단은 1985년의 삼성.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다저타운에 캠프를 차렸다. 이후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하와이가 국내 구단들의 단골 전지훈련지가 됐다. 일본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오키나와가 각광받는다. 어렵게 떠난 만큼 만족도는 높았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체계적인 시설과 극진한 대우, 톱니바퀴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본 구단의 훈련 모습은 선수들에게 별천지이자 자극제였다. 구단들도 일본 팀들의 선수 지원 시스템을 간접적으로 보고 배우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훈련 스케줄까지 달라지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초창기 선수들은 비 활동기간인 12월과 1월에 정말 충실하게 ‘휴식’을 취했다. 2월 1일에 캠프가 시작되면 그제야 몸을 만들어 나갔다. 2월 중순 정도는 돼야 정상적인 단체 훈련이 가능했다. 완벽한 몸을 갖춘 채로 캠프를 시작하는 일본 선수들의 페이스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변화의 계기는 1991년에 찾아왔다. 25%로 한정됐던 연봉 인상 상한선이 폐지된 후 선수들도 본격적으로 전지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점점 훈련 시작 시기가 앞당겨졌다. 2000년부터 도입된 FA(프리에이전트) 제도는 그런 추세에 불을 붙였다. 이제는 고액 연봉 선수들이 비 활동기간에도 자비를 들여 해외로 개인 훈련을 떠나는 시대가 왔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