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연이어 조선·동아일보에 대한 강경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왼쪽)과 이해찬 총리. | ||
여권이 ‘조동’(<조선일보> <동아일보>)을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첫 포문은 이해찬 총리가 지난 18일 ‘조동’을 강하게 질타한 ‘베를린 발언’을 통해 열어제쳤다. 이어 정부 각료들과 여당 핵심인사들도 잇따라 두 신문사를 과녁 삼아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여권에선 ‘조동’이 4대 입법안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한다. 특히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여론동향에 민감한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 나는 데 ‘조동’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렇듯 여권은 ‘조동’이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
이 총리 발언 이후 ‘조동’과 한나라당도 여권을 향해 정조준했다. ‘조동’은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여권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으며, 한나라당도 현 정권을 “술 취한 정권”이라며 ‘조동’ 연합군으로 나섰다. 자칫 진보-보수 진영의 전면전으로도 치달을 수 있는 형국이다.
이해찬 총리는 진보정상회담과 유럽 순방 마지막 날(현지시간 18일) 독일 베를린에서 폭탄주가 돌려진 술자리에서 ‘조동’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당시 이 총리는 “<조선> <동아>는 역사에 반역하지 말라.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용서해도 지금도 계속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역사에 대한 반역죄는 용서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나나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며 ‘조동’을 향해 포문을 열었던 것.
이 총리는 또 “<조선>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조선> <동아>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나라를 자신들이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권력인 척하지 말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분노’까지 폭발했다. 그는 “그동안 <동아일보>가 나를 얼마나 공격했느냐. 아침마다 <조선일보>를 읽고 있지만 한 번도 <조선>이 역사의 흐름에 맞게 쓴 적이 없다. <조선일보>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며 “우리(참여정부)를 사회주의 정권으로 보고, 걸핏하면 용공으로 몰아 이데올로기로 문제를 몰아간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술자리가 끝나는 마당에서도 “절대로 보수 언론의 왜곡 보도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이 총리 심중에 쌓였던 ‘조동’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듯했다. 정치권에선 이에 대해 “결코 취중에 나온 실언은 아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날 이 총리 발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흔히 ‘조중동’으로 불리며 보수언론의 한 축으로 분류됐던 <중앙일보>에 대해선 “<중앙일보>는 객관적으로 돌아섰다. 정책사안에 따라 비판을 한다. 역사의 흐름에서 가닥을 잡고 중심을 잡은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이 총리의 비난이 ‘조동’ 두 신문사를 겨냥한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계에선 이 총리 발언의 진의를 놓고 “두 신문사의 영향력을 강제로 축소하겠다는 정부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고 관측한다. 실제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지난 20일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 개정안’이 주요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고, 신문사의 발행부수와 광고료 등 경영실태를 정부에 신고하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조동’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동’을 향한 비난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총리가 선봉에서 총대를 멘 것에 화답이라도 하듯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여기에 가세했다. 그는 지난 20일 오전 국회 당 의장실에서 열린 제33차 확대간부회의 자리에서 “어제 이해찬 총리의 발언도 있었지만 <조선> <동아>의 시대착오적인 여론 호도를 대단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분단냉전시대에 조성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몸부림 아니겠나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쉼 없는 개혁으로 나가야 되는데, 다시 퇴행적인 기득권 시대로 되돌리려는 그런 자세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는 또 “이제 일본 식민지 당국이나 유신 독재권력과 손잡고 기득권을 누렸던 <동아> <조선>은 해직언론인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 앞에 사죄해야 된다”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사과 안하고 마치 대한민국은 자기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인 양 오만불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제 시대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 의장은 지난 24일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시키고 독재권력과 야합했던 <동아> <조선>이 아직도 무소불위의 위력으로 냉전시대의 색깔론을 뿌리고 군사독재시대에 저지른 허물을 정당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각에도 남북화해와 민주개혁의 발목을 잡으려하고 있다”고 비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유신치하 언론탄압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개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동아> <조선일보>는 동서 화해와 남북 화해를 저해했고, 권력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고 지원 사격했다.
그동안 “신문법 등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언급을 자제했던 정 장관이었다. 그랬던 그의 조선·동아 비난 발언이 나오자 정치권 안팎에선 “언론 주무장관인 정 장관이 여당의 4대 개혁 법안 가운데 하나인 언론개혁 법안 처리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이날 국감에서 이 총리 발언에 대해 “총리 발언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고 피력했다. 여권이 기다렸다는 듯이 ‘조동’을 향해 전방위 공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여권의 ‘전략적 의도’가 깔린 공세가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여권 핵심부가 ‘조동’을 겨냥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세력을 재결집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 결속을 통해 수세에 몰린 정국의 반전을 꾀하려 한다는 것.
▲ 최근 여권 인사들의 연이은 조선(왼쪽) 동아일보 비난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적 공세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
실제로 여권 핵심 인사들의 ‘조동’ 비난 발언 이후 친노 부대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홈페이지와 친여 성향인 인터넷 웹진 ‘서프라이즈’ 등에는 이를 지지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또한 여당의 4대 입법안(국가보안법 폐지·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사립학교법 개정·언론관계법 개정) 처리를 앞둔 시점에서 반대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조동 죽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여권은 4대 법안을 처리하는 데 여러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태다.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데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과의 공조도 파기됐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국보법 폐지와 위헌 결정이 난 신행정수도 건설 등에 대한 국민의 반대여론이 높다는 게 여권으로선 가장 큰 부담이다. 이처럼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 여권이 그동안 위기 때마다 활용한 ‘전술’을 이번에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 다시 말해, 친여 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표적을 설정한 다음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이번에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그 ‘표적’이 바로 ‘조동’이라는 게 야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여권 인사들의 <조선> <동아> 비난 발언은 다분히 ‘계산된 전략’이다”며 “여권이 강행 처리하려는 국보법 폐지 등 4대 입법안에 대해 반대논조를 보이고 있는 두 신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작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당직자는 “그동안 노 대통령이 언론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왔는데, 이번에는 이 총리가 총대를 멨다는 인상이 짙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이 총리가 언론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을 맡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언론과의 전쟁터에서 노 대통령이 ‘후방’으로 물러나는 대신 이 총리가 ‘전방’으로 나섰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여권이 ‘조동’과 다른 신문사를 분리하려는 이분법적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참여정부가 언론매체를 아군과 적군으로 분류하고, 적군으로 ‘조동’을 규정한 것이 아니냐는 것. 그런데 이 총리 발언 이후 ‘조동’을 언론개혁 대상으로 보고 있는 친여 성향의 신문인 <경향> <서울> <한겨레> 등도 사설을 통해 “이 총리의 발언이 신중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친여 성향 신문들이 ‘조동’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특히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언론을 개혁의 우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언론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 대통령이 보수언론을 향해 첫 포문을 연 것은 신행정수도 건설 논란이 한창이었던 지난 6월. 노 대통령은 6월15일 국무회의에서 “행정수도 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로,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에도 “행정수도 건설 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정책적 수준이 아니라 정쟁의 수준이며,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가 감춰져 있다.”(6월18일 기자간담회)
특히 지난 7월8일 ‘인천지역 혁신발전 5개년 계획 토론회’에 참석, “저는 이것(행정수도 건설 반대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며 “지금 행정수도 반대 여론 모아지는데 그것에 앞장서서 주도해 가고 있는 기관들이 어떤 기관들인지 한 번 보자. 서울 한복판에 (정부)종합청사 앞에 거대한 빌딩 가지고 있는 신문사 아닌가”라며 밝혀, 광화문 일대에 사옥이 있는 <조선> <동아> 등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지난 9월5일 노 대통령은 MBC의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 “국가보안법은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며 “국민주권 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국가보안법 폐지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 발언 이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부영 의장, 천정배 원내 대표 등이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조선> <동아> 등 보수언론은 청와대의 국보법 폐지 방침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국보법 폐지 반대’ 논조의 기사와 사설, 칼럼 등을 게재하며 여권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보수진영의 잇따른 국보법 반대 집회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기사와 사설을 게재했다. 청와대 입장에선 두 신문사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법하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 총리의 ‘베를린 발언’이 터져 나왔고, 잇따라 여권 핵심인사들의 ‘조동’ 비난 발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이에 여권이 ‘조직적으로’ 두 신문사와의 전면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재홍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당에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조선> <동아> 비난 발언을 준비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이 총리나 이 의장 등이 그동안 개인적으로 두 신문사에서 명예훼손 등으로 피해본 것을 발언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조만간 ‘해방이후 언론 탄압 진상규명법’을 4대 개혁법안과는 별도로 발의할 계획”이라며 “유신체제의 언론탄압과 <조선> <동아>의 75년 언론인 강제해직 문제, 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인 강제해직,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혀 여권과 ‘조동’의 전쟁은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동’을 향한 여권의 포문이 더욱 불을 뿜을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