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둔 사람들 불안해서 살겠나…”
천안시 풍세면 한 도로 공사현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20대 여성들을 살해한 용의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던 지난 1월24일. 택시운전기사 박아무개씨(54)는 최근 천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혀를 찼다.
대학생 딸을 두고 있다는 장아무개씨(48)는 “TV를 켤 때마다 토막 난 사체니, 불에 탄 사체니 끔찍한 이야기들만 흘러나오고 있어 딸아이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고도 했다.
기자는 지난 3일에도 아산 모 대학 경리부장 살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천안을 찾았다. 경찰에 붙잡힌 용의자 한 명과 도피중인 공범이 지난 2005년 고급 승용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납치 살인 사건을 벌인 동일범일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주 만에 다시 찾은 천안은 주민들의 불안이 절정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 사이 벌어진 엽기적인 살인 사건만 세 건.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14일에는 천안경찰서 심아무개 수사과장이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민들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20일, 불에 탄 여성의 변사체와 연관성이 있는 또 한 명의 사체가 발견됐을 때는 천안 시민들이 아닌 온 국민이 경악했다.
인구 50만 명의 천안시에서 발생한 강력사건은 2004년 4천8백여 건, 2005년 5천4백여 건.
이 중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을 포함한 살인 사건은 모두 18건이다. 그 가운데서도 7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2004년 1월에는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사촌형을 둔기로 때려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그해 10월 방과 후 실종됐던 여고생은 시민의 제보로 유력한 용의자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생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 달 뒤인 11월에는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아무개양(당시 17세)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고,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20대 남성은 경찰이 수사를 좁혀 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전년도의 두 배나 되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3월에는 안서동 천호 저수지에서 50대 남성이 금전 관계로 인한 다툼 끝에 살해된 후 토막 난 사체로 발견됐고, 5월에는 20대 여성이 자신의 원룸에서 자다가 절도범의 흉기에 찔려 피살됐다. 같은 달 40대 사채업자가 청부 살해되기도 했다.
지난 2년 동안 살인 사건이 한 달 간격으로 발생하기도 했고, 같은 달에만 서너 건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등 천안은 그야말로 ‘무법의 도시’였던 셈이다.
“이게 영화라면 다행이겠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영화에서처럼 한 도시를 구할 운명의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한 시민의 말은 천안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었다.
|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