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료도 옷 벗으면 ‘남과 여’
이번 사건이 국방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 국방부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국방부와 관련한 다양한 사안들을 풀어가야 할 핵심 관계자들이 이처럼 난데없는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로 구설수에 오르게 되자 가뜩이나 현안이 가득한 국방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 출신의 국방부 고위 간부 안 아무개 씨(54)는 비공사 출신으로 한 분야에서만 30여 년을 근무하며 전문성을 인정받아 장성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인품과 능력이 모두 뛰어나 국방부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인 김 아무개 씨(여·47) 역시 여성임에도 국방부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년간 국방부에서 근무해 국방부의 안방마님으로 통하는 인물. 40대 후반으로 아직 미혼인 김 씨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평소 “나는 국방부와 결혼했다”고 얘기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김 씨가 다른 사람도 아닌 수십 년 동안 유사한 업무를 처리하며 가깝게 지내던 안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방부는 말 그대로 혼돈 상태에 빠져들고 만 것.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6월 19일 밤. 이날 두 사람은 모두 만취 상태였고 모텔 방에서 같이 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날 정황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우선 두 사람은 횟집에서 1차를 갖고 바에서 2차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3차로 다시 민속주점을 찾았는데 당시 김 씨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민속주점 주인은 “김 씨는 만취한 상태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4차는 노래방. 그런데 노래방에 대한 진술에서 두 사람 모두 만취 상태였음이 입증된다. 애초 경찰 진술에서 양측은 모두 3차 술자리가 끝난 뒤 곧바로 모텔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술자리를 재구성해 본 경찰은 중간에 시간이 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안 씨는 “기억이 정확치 않지만 노래방을 간 것 같기도 하다”고 진술했다.
결국 경찰은 노래방 업주를 참고인으로 조사해 두 사람이 노래방에 간 사실을 확인했다. 모텔에 갈 당시 피해자 김 씨뿐만 아니라 피의자 안 씨도 인사불성의 만취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안 씨는 모텔에 들어간 상황에 대해 “김 씨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 결국 귀가를 포기하고 근처 모텔에 들어간 것”이라며 “김 씨가 구토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옷이 더러워져 김 씨의 옷을 벗기고 나도 옷을 벗었다”고 밝혔다. 이어 곧바로 곯아 떨어졌고 성추행을 한 기억은 전혀 없다는 게 안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다음날 모텔에서 깬 김 씨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병원을 찾았고, 거기서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전치 1주의 진단을 받았다. 이에 김 씨는 6월 23일 용산경찰서에 안 씨를 고소했다.
두 사람 모두 만취 상태였던 데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김 씨에게 채취한 체액의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6월 29일 성분분석 결과가 통보됐는데 김 씨의 체액에서 안 씨의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 씨를 진단한 병원의 진단과 마찬가지로 안 씨가 성폭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징후는 발견됐다. 이에 용산경찰서는 안 씨에 대해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경석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은 “채취된 체액에서 안 씨의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현장 상황과 김 씨의 상처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안 씨가 김 씨를 성폭행했을 가능성이 높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만취상태로 함께 모텔에 들어간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는 데다 증거 역시 엇갈리고 있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대해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상당히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최근 대추리 파문 등으로 가뜩이나 실추된 군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나빠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더군다나 두 사람은 언론 접촉을 직접 담당하는 핵심 인사들이어서 더욱 곤혹스럽다.
게다가 양측의 엇갈린 주장을 두고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도 국방부 내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성분분석 결과가 알려지면서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심지어 이를 기사화하지 않은 국방부 출입 기자실도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을 정도다.
과연 그 날 밤 모텔 방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국방부는 다소 어수선해질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