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가 용의자? 동기도 과정도 캘수록 미궁으로
▲ ‘냉동고 영아 사건’이 일어난 서래마을 빌라 전경. DNA 검사 결과 냉동고 영아들의 부모로 알려진 프랑스인 부부는 검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한국행을 거부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일단 이번 사건의 핵심 키는 영아들의 부모로 지목된 C 씨 부부가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현재 프랑스에 머물며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만 강변하고 있다. 애초 C 씨 부부는 이달 28일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실제 한국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 최근 프랑스 사법당국이 이 사건을 예비조사했으나 과연 자국민의 해외 혐의에 대해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도 의문이다. 자칫 이번 사건이 희대의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건의 엽기성 때문에 세간에선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과 추측이 나돌고 있다. 가장 큰 의문은 누가 왜 영아들을 냉동고에 유기했는가 하는 점에 모아진다. 우선 영아들의 엄마로 ‘확인’된 C 씨의 부인 V 씨(39)가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지만 전혀 뜻밖의 진상이 숨겨졌을 가능성도 얘기되고 있다.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구성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봤다.
당초 경찰은 이번 사건을 영아들의 아버지로 밝혀진 C 씨(40)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여성’ 간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비롯된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산모가 정상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냉동고에 유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은 ‘혼외정사로 인한 출산설’에 가장 무게를 두어왔다. 이 와중에 거론된 여성들은 필리핀인 가정부와 C 씨의 집 앞에서 목격됐다는 백인소녀, 그리고 C 씨의 통화내역과 카드결제내역 등으로 파악한 측근 등 총 5~6명이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물들이 빠진 상황에서 보름간 난항을 거듭해오던 경찰 수사는 지난 7일 ‘영아들의 어머니는 C 씨의 부인 V 씨’라는 국과수의 유전자 감식결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V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가운데 사건의 핵심은 남편 C 씨가 영아 유기에 가담했는지 여부로 좁혀졌다. 관건은 C 씨가 부인의 임신 및 출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 이 점이 영아를 유기한 당사자는 물론 범행과정 및 동기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DNA 검사에 쓰인 시료들을 C 씨나 V 씨로부터 직접채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제3의 연루 인물이 있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과연 냉동고에 유기됐던 영아들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1우선 부인 V 씨의 ‘복수극’일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아무 이유 없이 집 안에 있는 냉동고에 유기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뒤집어 보자면 V 씨가 영아들의 사체를 남편에게 일부러 보이고자 했을 수도 있다. 사실 자신의 아기 사체를 보는 것보다 끔찍한 게 또 있을까.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V 씨는 남편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줘야 할 남모를 사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가장 먼저 가정해볼 수 있는 것이 C 씨의 사생활 문제다.
C 씨의 가정은 주변에서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부부관계 및 사생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주위 프랑스 사람들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점으로 보아 남모를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경찰은 C 씨의 통화기록 및 카드결제내역 등으로 파악한, 평소 C 씨와 친분관계에 있던 여성 3~4명을 조사했다고 밝혔으나 수사망에 올랐던 이들 여성들의 신원 및 C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해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미 열한 살, 아홉 살 난 아들 둘이 있는 V 씨가 왜 늦은 나이에 출산을 결심했는지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즉 V 씨로서는 그만큼 강력한 출산 동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혹시 남편 C 씨의 사생활에 정신적 고통을 받아온 V 씨가 남편의 마음을 잡기 위한 최후의 방편으로 출산을 감행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경우 결말이 끔찍한 영아 유기로 매듭지어진 것을 보면 부인의 임신 소식에도 C 씨가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결국 남편에 대한 심한 분노와 배신감 속에서 V 씨가 위험한 계획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즉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기를 출산한 뒤 남편의 눈에 띌 수 있는 장소에 유기했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요지다. 그렇다면 과연 부인 V씨의 한이 이같이 엽기적인 사건을 부른 것일까.
#2그러나 아무리 부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해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유기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영아 유기는 정상적인 정신상태로는 불가능한 범죄행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V 씨의 평소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었거나 극심한 산후우울증 때문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들은 “영아 유기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앓던 산모에 인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C 씨는 평소 복막염을 앓아왔으며 2003년 12월에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볼 때 평소 V 씨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V 씨가 평소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인근의 프랑스인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로 보아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V 씨가 산모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산후 우울증마저 겹치면서 ‘심신 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아기들을 유기했다는 것이 제2 시나리오의 골자다. V 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그녀가 임신 기간 내내 바깥출입을 극도로 자제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을 개연성도 있다.
▲ 프랑스 경찰에 출두해 수사를 받고 나오는 프랑스인 부부. SBS TV 촬영 | ||
#3물론 이번 사건을 단순히 ‘병약한’ 부인 V 씨의 단독범행으로 보기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영아를 낳고 유기한 시기가 2003년 12월(자궁 적출 수술) 이전이고 그후 무려 2년 7개월여 만에 유기된 영아들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부부가 공모했거나 남편 C씨가 영아 유기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부인 V 씨는 2003년 12월 모 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다음날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의사는 ‘자궁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 1주일 내 출산에 의한 감염 가능성’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이는 유기된 영아들이 V 씨가 병원에 실려오기 얼마 전에 출생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V 씨의 수술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당시 남편 C 씨가 아내의 출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들 부부는 2005년 8월 3년간 거주하던 방배동의 빌라를 떠나 서래마을로 이사했다. 당시 영아의 사체도 함께 옮겨왔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남편 C 씨가 영아 유기에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정황들로 볼 때 결국 이들 부부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한 아기들을 합의하에 유기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그러나 원치 않은 임신이었다해도 굳이 병원에서 중절수술을 하지 않고 집에서 낳아 끔찍하게 유기한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또 C 씨가 부인의 출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같이 영아를 유기했다면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영아 사체를 신고한 배경도 의문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C 씨가 아이들과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신고하고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을 수도 있다. 휴가 중 회의 참석차 며칠 들른 사이에 간고등어를 주문한 점도 뭔가 석연치 않다. 이는 간만에 냉동고를 열어봤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일종의 ‘알리바이’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4지금까지의 시나리오는 모두 ‘유기된 영아들의 부모가 C 씨와 V 씨’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뜯어보면 볼수록 더 의문스러워지는 이 엽기적인 사건을 두고 세간에는 경찰 수사를 뒤집는 구구한 억측과 루머들도 난무하고 있다. ‘제3자 연루설’과 ‘외도설’ 등이 대표적인 예.
경찰이 유기된 영아들의 부모가 C 씨와 V 씨라고 결론 지은 것은 국과수 감식 결과 영아들의 부계 및 모계 DNA와 이들 부부의 DNA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칫 ‘함정’이 될지도 모르는 ‘과학적 비약’이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경찰이 DNA분석에 사용한 시료는 C 씨나 V씨로부터 직접 채취한 것이 아니라 이들 부부의 아들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칫솔에서 추출한 구강세포 및 부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귀이개 등에서 채취한 상피세포, C 씨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이 점이 제3자 등이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게 하는 부분이다. 즉 C 씨 집에 드나든 사람들이 적지 않은 만큼 C 씨나 V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들을 실제로는 다른 이들이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C 씨는 최근 프랑스 검찰 조사에서 영아 유기와 무관함을 주장하면서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머리카락 등으로 실시한 DNA 감식 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C 씨는 만약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어떻게 남편이 모를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에 하나 C 씨의 주장처럼 DNA 분석에 쓰인 시료 자체가 다른 이의 것이라면 상황은 매우 복잡해진다. ‘제3자 연루설’ 등의 루머가 나도는 것도 이런 시각과 무관치 않다. 이 경우 C 씨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친구 P 씨와 제3의 인물들도 함께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유기된 영아들이 C 씨 부부 사이의 자식들이 아니다’라는 괴소문도 유포되고 있다. 즉 어느 한쪽 배우자의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 출산일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 또한 국과수에 보낸 시료가 잘못 채취된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출발한다.
자동차부품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는 C 씨는 월 2000만 원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국내에서 상류생활을 해왔다. 이들이 거주하는 80평 빌라의 월세만도 6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영아들이 자신들의 2세라면 C 씨 부부가 아무리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집 안 출산과 유기’까지 했어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부부 동의하에 중절이 가능했음에도 남몰래 출산을 해서 유기한 점으로 보아 ‘외도나 성범죄 등으로 인한 임신’ 등 배우자에게 알릴 수 없는 나름의 곡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들 부부는 C 씨의 장기 출장, V 씨의 고향 방문 등으로 상당 기간 헤어져 지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위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이 기간에 배우자 몰래 출산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세간의 ‘제3자 연루설’이나 ‘외도설’ 등은 근거 없는 괴담에 불과할 뿐이라며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여전히 C 씨와 V 씨 부부라고 말했다. 유전자 감식을 할 때 각 시료에서 얻은 DNA들을 놓고 크로스체크를 했기 때문에 이들 부부와 유기된 영아가 부모자식 사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C 씨가 끝까지 ‘결백’을 강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그는 자식을 유기하고도 진실을 외면한 파렴치한 아버지일까, 아니면 이번 사건에 상상하지도 못할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