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측이 정주영 사생활 폭로 요청”
2월 2일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 <대통령이 시간> 집필에 참여한 인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이번 회고록을 읽으면서 깜짝 놀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당시 박근혜 의원은 ‘신뢰’를 강조하며 원안을 고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3일 세종시에서 열린 정부세종청사 완공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세종시를 사수했던 것은 정운찬 전 총리 대권 행보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계산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청와대는 곧바로 ‘유감’을 밝혔다. 2007년부터 시작된 두 전·현직 대통령의 질긴 악연이 현재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책이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면 그런 뜻이 아님을 알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책 출간 이전에 각 언론사에 돌아다닌 PDF 전문에는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며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깜짝 놀란 이는 또 있다. 바로 이 전 대통령의 정치권 입문을 견인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이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초반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이 14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당 후보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사생활을 폭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측이 자신을 찾아와 정주영 후보의 개인적 결함과 사생활을 폭로하는 찬조연설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YS 측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이듬해 서울시장 경선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김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어서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에 발탁한 것이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그를 영입해 정주영 회장을 견제할 목적이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찬조연설을 한 것도 아니고 거절했다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서울시장 경선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 민자당 서울시장 경선 구도는 이미 굳어 있어 이 전 대통령이 낄 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경선을 요구했던 사람이 그였다.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었다”고 반박했다.
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패한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4월 ‘정치 1번지’ 서울시 종로구 보궐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하지만 이 역시 무리한 욕심이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거액의 선거 비용을 누락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에 처하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출국하고 만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