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자식을 ‘망자’로…어미 맞아?
그제야 정 씨는 몇 년 전 어머니 최 아무개 씨(55)가 자신을 실종신고 한 사실이 떠올랐다. 당시 정 씨는 자신을 찾아낸 경찰에게 자신은 독립한 것이라 설명하고, 오랜 만에 연락이 닿은 어머니 최 씨에게 실종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최 씨는 “전화만으로 당신이 내 아들인 걸 어떻게 아느냐”며 극구 실종신고 취소를 거부했다. 이미 최 씨와 모자의 연이 끊기다시피 한 상황에서 정 씨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정 씨는 실종신고 된 지 5년 만에 급기야 사망신고까지 돼버린 것이다. 어째서 어머니 최 씨는 버젓이 살아있는 아들을 ‘망인’으로 만든 것일까.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최 씨는 아들은 물론 남편 정 아무개 씨(65)와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 씨와 남편은 10살이라는 나이와 성격 차이 탓에 자주 다투다 결국 1990년대 중반 별거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아들 정 씨는 어머니 최 씨와 단둘이 살게 됐다. 무속인이었던 최 씨는 벌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최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40만 원을 받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정 씨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던 해, 어머니 최 씨는 “따로 살자”며 정 씨를 집에서 내보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사회로 나간 정 씨는 한때 노숙을 해야 할 만큼 생활이 어려웠다. 하지만 정 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립한 지 8년여 만인 지난해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고, 그제야 어머니 최 씨가 무리하게 자신을 집에서 내보내 실종 신고한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 최 씨가 정 씨 앞으로 된 억대의 사망보험금을 타기 위해서는 정 씨가 법적으로 ‘망인’이 돼야 했기 때문이다.
민법에 의하면 가출신고 5년이 지나도 찾지 못하고 생사가 분명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은 ‘실종선고’를 해야 한다. 법원은 출입국 기록과 휴대전화 개통 여부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사실이 없으면 실종선고를 내린다. 민법 제28조에 의하면 법원으로부터 실종선고를 받은 자는 사망한 것으로 본다. 이때부터 보험사에서 사망보험금을 타는 것도 가능해진다.
최 씨는 이러한 법의 맹점을 이용해 이미 한 차례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받아낸 적이 있었다. 남편과 별거 중이던 1997년 최 씨는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출신고를 했고, 남편 앞으로 들어놓은 사망보험금을 착실히 납부했다. 그리고 5년 후인 2002년 10월, 최 씨는 법원으로부터 남편의 실종선고를 받았고 보험사로부터 사망보험금 2000만 원을 타낼 수 있었다.
2007년경 최 씨는 다시 한 번 아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아들을 내보낸 최 씨는 아들 앞으로 종신보험 등 2개를 가입했다. 그리고 아들을 실종신고 한 뒤 추가로 1개의 보험을 더 가입했다. 최 씨는 더 많은 사망보험금을 받으려 3차례에 걸쳐 보험 납부액을 높였다. 월 40만 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던 최 씨가 내는 보험료는 월 60만 원 정도였다. 최 씨가 5년간 아들 사망보험 앞으로 쏟아 부은 보험료는 1200여 만 원에 달했다. 성북경찰서 지능팀의 한 관계자는 “최 씨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최 씨가 잦은 교통사고로 수시로 입원해 1999년부터 최근까지 1억 8000만 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타낸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 타낸 돈으로 생활비와 보험료를 해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은 최 씨가 아들 정 씨를 실종신고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지난해 7월 최 씨는 법원으로부터 아들의 실종선고를 받았다. 그 사이 최 씨는 경찰과 아들로부터 2번의 연락을 받았지만 최 씨는 모른 척했다. 결국 실종신고를 취소해달라는 아들의 부탁까지 외면한 최 씨는 실종선고 후 보험사를 찾아가 아들의 사망보험금 1억 7533만 원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당시 최 씨의 보험을 취급했던 모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특별조사팀(SIU)이 최 씨가 아들 앞으로 가입한 보험 3개 중 1개가 아들 실종신고 이후 가입된 것을 발견했다”라며 “실종신고된 사람 앞으로 월 50만 원 이상의 보험료를 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쉽게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타냈던 최 씨는 아들의 사망보험금지급이 늦어지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 씨는 보험사를 찾아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최 씨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보험사는 최 씨에게 아들이 아닌 다른 가족과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했다. 최 씨는 비슷한 수법으로 사망보험금을 타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앞서의 보험사 관계자는 “예상대로 최 씨가 제출한 또 다른 서류에는 과거 남편이 실종선고를 받았다 취소된 사실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최 씨의 행적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23일 성북경찰서는 최 씨를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성북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남편에 대한 보험금 수령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다.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과거 보험금을 타낸 경위에 대해서도 살펴볼 계획이지만 최 씨가 여전히 남편과 아들이 당시는 연락이 닿지 않아 법대로 처리한 것이라며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최 씨의 아들은 산 사람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실종선고 취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최 씨의 남편은 자신이 사망신고 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2007년 그 사실을 알고 소송을 통해 2011년 실종선고 취소 판결을 받았다”며 “아들도 현재 실종선고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려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돈 때문에 산 남편과 아들을 ‘죽여버린’ 모진 어미의 말로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