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성자’ 술 몇 잔에 무너졌다
지난 1월 28일 다일재단 밥퍼운동본부 봉사현장에 무료 점심식사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또한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익명으로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잦은 기부를 통해 진정한 사회적 기업의 표본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그의 이중적 행태에 국민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인 일명 ‘밥퍼’로 유명한 다일공동체 소속 목사가 음주 후 교통사고에 이어 경찰서에서 폭행 및 폭언 등으로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에게 또 다른 허탈감을 주고 있다. 물론 이 목사가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기부와 도덕성 등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은 일부 인사들의 충격적 반전 행태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다일공동체와 서울강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다일공동체 소속 방 아무개 목사는 지난 1월 24일 오후 9시 20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방 목사는 지난 24일 서울 논현동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방 목사는 이날도 술 마실 생각은 못하고 자신의 자가용을 가져갔다. 그런데 방 목사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통주 몇 잔을 마시게 됐다. 이런 와중에 해당 식당의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이동 주차하는 과정에서 앞·뒤의 다른 차 한 대와 전신주를 들이받았다.
그런데 평소 술이 약한 방 목사는 취기가 올라서인지 피해 차주와 고성을 주고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피해 차주는 방 목사를 경찰에 신고했다. 통상적이라면 보험사를 불러 간단히 처리했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에 대해 다일공동체 한 관계자는 “보통의 성인 같으면 전통주 몇 잔에 취하지는 않았을 텐데 평소 술을 못 먹는 방 목사였기 때문에 취기가 올랐던 것 같다. 피해 차주는 마침 기자였다. 고성이 오고 간 끝에 피해 차주가 경찰서로 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방 목사가 경찰서로 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방 목사가 음주측정을 하는 경찰관을 상대로 폭행 및 폭언을 하며 또 다른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다. 정작 방 목사는 음주측정결과 혈중알코올 농도 0.041%로 단속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음주 측정에 협조했다면 소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문제였다.
이에 대해 다일공동체 관계자는 “경찰관이 음주측정을 두어 차례 실시했는데 방 목사가 세게 불지 않자 경찰관이 다시 불라고 했고 이에 방 목사가 경찰관의 팔을 밀치는 행동을 한 게 폭행으로 와전됐다. 폭언도 과장된 면이 있다. 방 목사는 주로 죽음을 앞둔 노숙인들을 매일 상대하다 보니 그들에겐 일상적인 언어인 욕설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었다고 본다. 그냥 일반인들 같으면 스스럼없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욕설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목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소란에 강남경찰서에 있던 언론사 사스마와리(정해진 구역의 경찰서를 돌며 취재하는 것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 수습기자들이 가세하면서 방 목사의 여성비하 논란까지 불거졌다. 앞서의 다일공동체 관계자는 “해당 경찰서에 마침 수습기자들이 있었는데 그 기자들이 사건 취재를 하다가 소란을 피우고 있는 방 목사를 발견하고 취재를 했고 방 목사가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과정에서 옆에 들러붙어 취재를 하던 한 종편 채널의 여기자에게 ‘무슨 여자가…’식의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방 목사는 그날 조사를 마치고 훈방 조치됐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측도 해당 목사의 소란은 경미한 해프닝이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강남경찰서 교통과 관계자는 “술 먹고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경미한 사안이라 불문에 부쳤다”고 말했다.
다일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방 아무개 목사 관련 사과문 캡처.
이 시설은 다일복지재단 내에서 유일하게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다일공동체 관계자는 “방 목사는 과거에 은행에서 근무하다 뒤늦게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재단 이사장인 최일도 목사와 연이 닿아 지난 2012년 하반기에 우리 재단으로 들어오게 됐다. 무릎 아래 양 다리가 완전히 절단된 환자의 고름을 직접 정성스레 닦아주는 등 평소 인간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으로 죽음을 앞둔 노숙인들을 대했다. 노숙인들이 임종을 맞게 되면 연고자를 찾거나 사망 관련 서류 정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등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면서 장례식에서는 상주의 역할을 해 왔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다일복지재단은 방 목사의 일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난 1월 25일, 최일도 이사장이 방 목사를 즉각 보직 해임하는 등 발 빠른 진화에 나섰다. 이어 방 목사에 대한 정식 해고 절차를 밟아 곧바로 이사회 소집을 위해 이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일공동체 관계자는 “25일 새벽에 최초 언론 보도가 나고 나서 재단에서는 처음에 해당 기사를 낸 언론사에 정정 보도를 요청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재단 소속 목사들에게 확인을 해 보니 방 목사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시인했다. 그래서 곧바로 홈페이지에 사과문부터 올리고 경찰서에 찾아가 경위를 파악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방 목사에 대한 보직 해임과 중징계 결정도 당일에 모두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일복지재단은 25일 다일공동체 홈페이지에 이사장 최일도 목사와 임직원 일동 명의로 소속 시설장이 벌인 일련의 한 밤중 소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다일복지재단은 사과문을 통해 “기사의 당사자가 노숙인 시설에 있다가 임종을 맞는 분들을 위한 시설 ‘다일작은천국’의 시설장임을 확인했다”며 “해당 시설장을 즉각 보직 해임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인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징계 키로 했다. 당사자도 어떤 결정이든지 겸허히 수용하고 사죄드리며 철저히 반성하겠다고 했다. 전 임직원들도 오늘의 불미스러운 일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최일도 목사도 26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을 통해 거듭 사과했다.
방 목사는 이 일로 2년여간 몸 담았던 다일복지재단을 떠났다. 다일공동체 관계자는 “방 목사는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고향인 전주로 갔는지 더 낮은 곳으로 임해서 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자숙하고 지내며 나중에 때가 되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갔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다일재단은 어떤 곳? 최일도 목사 ‘밥퍼’ 봉사 유명세 2011년 최일도 목사(왼쪽)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와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최 목사는 수녀였던 아내와 젊은 시절부터 청량리 역 부근에서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인 ‘사랑의 밥퍼’ 활동을 해오며 ‘노숙인들의 살아있는 성자’로까지 불리는 인물이다. 늘 노숙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몸에는 이와 벼룩이 들끓었던 최 목사는 이로 인해 아내로부터 ‘노숙자와 나 둘 중에 선택하라’는 말까지 들으면서도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 전농동의 다일복지재단은 노숙인 호스피스 시설인 ‘다일작은천국’과 노숙인 무료 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일부 지원금을 받는 ‘다일작은천국’과는 달리 ‘다일천사병원’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교인들과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최 목사는 근처의 서울다일교회 담임목사도 맡고 있다. 다일공동체 아래에 다일복지재단과 다일교회가 있는 구조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