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기에 올인…‘근육은 언제 키울꼬’
지난해 KT가 상당 시간을 할애한 계열사 정리 작업은 올해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황창규 회장과 올레캠퍼스 전경. 연합뉴스·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황창규 KT 회장은 지난 1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 준비한 것들이 올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KT 광화문 신사옥 입주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자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지난해 1월 27일 취임한 황 회장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KT 내외부적으로 황 회장 취임 1주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신사옥 입주 기념으로 갈음한 셈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KT가 황 회장 취임 1주년을 조용히 보낸 까닭을 황 회장의 경영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큰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으면서 지난해 1월 27일 취임한 황 회장이 지난 1년간 한 일 중 대외적으로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한 데다 앞서 밝혔듯 지난 1년간 실적은 오히려 적자 전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자 전환이 대규모 명예퇴직에 따른 퇴직금 지출 탓이라고 해도 매출 하락은 경영 성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KT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되면서 단말기 지원금과 고객들에 주는 혜택 등이 매출로 잡히지 않은 탓”이라고 해명했다.
황 회장은 지난 1년간 이석채 전 회장이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 사실이다. 고객 1200만 명 개인정보 유출과 자회사 KT ENS의 대출 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취임하자마자 고개 숙여 사과부터 했던 황 회장은 지난해 4월에는 8200명에 이르는 직원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싸이더스FHN을 매각했고 유스트림코리아를 청산했으며 KT미디어허브를 KT에 흡수·합병시켰다. KT렌탈, KT캐피탈 등 계열사 매각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석채 전 회장 시절 28개에서 56개로 늘어난 계열사 중 부실하거나 불필요한 계열사들을 정리하는 작업과 인적 구조조정을 1년 내내 진행한 것이다.
이 같은 일을 처리하느라 기가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스마트에너지, 통합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등 황 회장이 강조한 일들에 대한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황 회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임하면서 강조했던 미래융합 및 글로벌 사업은 1년간 준비를 잘 했고 올해 구체적인 결과들이 나올 것”이라며 기다려달라는 뜻을 내보였다.
하지만 KT의 구조조정이 채 끝나지 않아 취임 2년차를 맞은 황창규 회장이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라는 게 ‘이제 끝’이라고 결론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황 회장은 올해도 내내 인적·사업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렌탈 인수 가격은 7000억~8000억 원으로 점쳐지고 있다. 비록 인수 후보였던 효성과 오릭스가 불참했지만 KT렌탈은 ‘렌터카시장 1위’라는 매력을 갖고 있다. SK네트웍스와 한국타이어 등이 인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KT렌탈 본입찰에 대해 시장에서는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KT캐피탈 매각 작업도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다. KT는 또 적자에 허덕이는 일부 부실 계열사를 정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특정 계열사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계열사에 대해 청산 혹은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매각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BC카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매각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계열사 정리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적 구조조정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이미 KT가 일부 부실 계열사를 청산하면서 해당 계열사 직원들도 함께 정리할 것이라는, 이른바 ‘살생부’가 돌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KT 관계자는 “지난해 대규모 명예퇴직으로 그룹 차원에서 인적 구조조정 계획은 더 이상 없다”면서도 “다만 계열사별로 각사 사정에 따라 희망퇴직 등을 실시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KT렌탈과 KT캐피탈 매각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KT의 계열사는 5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56개에서 고작 6개 줄어드는 것. “일부 계열사의 매각·청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KT 측의 말에 고려하면 KT의 계열사 추가 정리 작업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사 추가 정리 작업에다 해당 계열사 직원들의 고용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또한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은 자신의 경영 스타일과 성과를 본격적으로 드러내야 할 2년차에 들어섰음에도 아직 구조조정과 관련된 일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KT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어려움에 빠졌던 KT를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고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지난 1년 부실을 털어내고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으니 앞으로는 치고 나가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회장 취임 2년차를 맞은 황창규 회장이 올해 과연 자신이 뜻한 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