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노무현 대통령 장인의 전력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이원범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취지의 판결, 그리고 성접대를 받은 판사의 사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청와대와 사법부 간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들 사건들은 모두 겉보기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건이지만 그 저변에는 서로에 대한 견제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 청와대와 사법부 간 갈등설의 줄거리다.
먼저 헌재의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부터 살펴보자. 이번 위헌 결정은 사실상 청와대의 통치력에 제동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 자신이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고 했을 정도로 참여정부는 정권의 핵심과제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 위헌 결정 때문에 국정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할 판이다.
사실 헌재가 이번에 위헌의 근거로 삼은 ‘관습헌법’에 대해서는 학계·법조계 등에서 논란이 많다. 논란이 많다는 것은 한쪽 당사자가 쉽게 승복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헌재는 8 대 1 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런 차원에서 일각에서는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을 현 정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하는 이들은 그 이유를 노 대통령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찾는다. 지난 9월5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언급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헌재와 대법원 인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방송사 인터뷰보다 불과 10여 일 앞선 지난 8월26일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 및 이적표현물 소지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특히 헌재는 국보법 합헌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향후 입법부가 헌재의 결정과 국민의 의사를 수렴,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 사실상 국보법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도 헌재 결정 4일 뒤인 8월30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총련 대의원 2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례적으로 국보법 폐지를 정면 비판했다. 당시 재판부는 무력남침을 감행한 북한이 지금까지도 남한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에는 여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헌재와 대법원이 한목소리로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그 낡은 유물(국보법을 의미)은 폐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헌재와 대법원을 의식한 듯 “보안법을 가지고 법리적으로 자꾸 얘기를 할 것이 아니다”고도 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헌재와 대법원이 상당히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법에 따라 한 자신들의 결정과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발언한 탓이다. 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도 이 같은 일련의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전후사정에서다.
노 대통령은 10월26일 헌재 위헌 결정 이후에 언급을 자제하다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고 정치 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면서 강도높게 헌재 결정을 비난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라는 법적인 권한에는 승복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승복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치고받는 양상이다.
일부에서는 이원범 전 의원 관련 사건도 청와대와 사법부간 이상기류를 말해주는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10월27일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장인이 빨치산 출신”이라고 발언, 노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의원은 재작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시 2백여 명이 참석한 한나라당 대전 중구 지구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노무현 후보 장인이 빨치산 출신인데 애국지사 11명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공산당 만세를 부르다 죽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의 발언이 선거법상 비방행위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나 그 발언이 전체적으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후보 가족의 좌익활동 전력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적절하게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자료를 제공하려는 공공의 이익 또한 인정된다면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김영란 대법관은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이 직접 임명제청한 인물이다. 대법원측은 선거법 위반 사건 중 후보자 비방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종종 적용한다는 말 외에는 이 전 의원에 대한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하지만 1·2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던 사안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진 것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도 청와대와 사법부간 이상기류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현직 판사가 변호사와의 술자리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사직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지난 10월27일 일부 언론은 아무개 지방법원의 A판사가 지난해 초 관할지역 모 변호사와 룸살롱에서 회식자리를 가진 후 속칭 ‘2차’를 나가 성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당시 A판사를 접대했던 룸살롱의 종업원이 부패방지위원회에 진정을 하면서 시작됐고 결국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이번 사건은 단발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확대되는 분위기다. 검찰이 부방위로부터 춘천지역 법원·검찰·경찰 관계자 3명이 지역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거나 뇌물을 전달받았다는 첩보를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성접대 의혹 사건은 사실 꽤 오래 전부터 부방위 주변에서부터 소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해당 판사는 결국 사표를 냈지만 이번 사건으로 법조계, 특히 법원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청와대-사법부 간 갈등설을 지적하는 이들은 이번 성접대 의혹 사건이 보도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사실 정부가 추진중인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의 주요 수사 대상에는 15년 이상 판·검사 등이 포함돼 있다. 부방위나 앞으로 생길 공수처의 기능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사법부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법부의 비리가 확인되면 언제라도 언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청와대와 사법부간 갈등설은 말그대로 설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법조인의 지적에도 왠지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