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최근 윤 전 의원을 복귀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그를 만났던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이 주목된다. 윤씨는 16대 국회 임기 말인 지난 5월29일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정계를 은퇴해 자연인으로 돌아간 상태다.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 대표의 ‘윤여준 재영입 프로젝트’는 박 대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씨가 정계에 복귀할 생각이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해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런 과정은 여의도연구소 한켠에 윤씨의 방이 마련되었다는 소문이 정가에 퍼지면서 밝혀졌다.
박 대표가 윤 전 의원을 만난 것은 10월 초순. 두 사람의 만남은 박 대표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윤씨에게 모종의 중책을 제시하며 “저를 좀 도와달라”라고 간절하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지난 17대 총선 때 호흡을 맞춰 일한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상임부위원장이었던 윤씨는 4·15 총선 전반을 막후에서 지휘했다. 박 대표에게 하루 20곳이 넘는 살인적인 유세 일정을 들이밀었던 것도 그다. 선거가 끝난 뒤 윤씨는 “한나라당이 1백21석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몸을 아끼지 않은 박 대표의 노력 덕택이다”라며 모든 공을 박 대표에게 돌렸다. 그는 정계를 은퇴하면서도 “어려울 때 떠나는 것 같아 박 대표에게 가장 미안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표는 윤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일들을 화제 삼으며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만 도와달라”라고 장시간에 걸쳐 설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윤씨는 끝내 박 대표에게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의도연구소를 맡고 있는 박세일 의원이 나섰다. 박의원 또한 윤씨와 만나 다시 한번 강력하게 한나라당에 복귀하라고 권유했다. 인간적으로 친한 박 의원의 강권에 윤 전 의원은 한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정계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다. 윤 전 의원은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정계에 복귀할 생각은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박 대표는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왜 굳이 윤씨를 영입하려고 한 것일까.
17대에 들어서면서 한나라당 내에서는 “윤여준이 그립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정치를 알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는 기획과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그만한 인물이 당내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회창과 최병렬의 특급 참모’로 알려진 윤씨는 진작부터 보수 세력의 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보수 강경파들에 밀려 뜻을 펴지 못했다. 이회창 총재 시절에는 양정규 전 의원 등 이른바 ‘왕당파’들이, 최병렬 대표 시절에는 이재오·홍준표 의원 등 ‘3선 강경파’들이 그를 배척했다. 애초 윤씨를 삼고초려했던 이회창·최병렬 두 사람은 윤씨의 조언을 멀리하면서 몰락해갔고 그것은 곧 보수 세력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윤씨는 ‘주군을 잘못 만난 비운의 전략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정계를 은퇴하면서 “이제 누구의 참모 역할은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못내 뿌리친 데는 이런 과거의 아픈 기억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보여지는 한나라당의 보수화 경향과 윤씨가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맞는 합리적인 변화는 간격이 크다. 윤씨는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공감대가 깊다. 천성적으로 싸움을 싫어하는 그의 성정과 60대 중반인 나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등등이 중첩되어 그는 고심을 거듭하다가 박 대표의 청을 뿌리친 것으로 보인다.
그를 영입해 보수 강경파들을 견제하며 여권에 맞서는 큰 그림을 그리려던 박 대표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박 대표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정민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