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보다 더 뻔뻔한 ‘유사 발바리’
▲ 유사한 범죄를 저질러온 ‘유사 발바리’도 최근 검거됐다. | ||
경찰 조사 결과 강 씨는 혼자 사는 여성들을 골라 주로 가스배관을 타고 창문으로 집 안에 침입했으며 밤중에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은 집을 용케 골라내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 씨에게는 그동안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다 지난해 1월 결국 검거된 일명 ‘발바리’(연쇄 강도강간범)에 빗대 ‘유사 발바리’라는 흉측한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공교롭게 그 자신도 원조(?) 발바리를 검거했던 바로 그 둔산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연쇄 강도강간 사건. 특히 지난 6년 동안 대전 지역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은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 밤늦은 시각에 귀가할 때면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저 멀리에 남자의 그림자만 언뜻 비쳐도 불안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특히 원룸들이 모여 있는 서구 갈마동, 월평동 일대의 독신 여성들은 밤마다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몇 년 동안 일어난 대전 지역 강도강간 사건이 유독 자신들의 동네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강도강간범이 설치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고 피해를 당한 여성들도 점점 늘어갔다.
신고가 잇따르자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고 수사에 나섰지만 이 파렴치한은 좀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아 경찰의 애를 태웠다. 그렇게 지난 2001년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경찰은 동종 범죄자를 중심으로 수사망을 집중한 결과 드디어 용의자의 DNA와 일치하는 인물 강 씨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강 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범행할 때에 안경 등으로 변장하고 일부러 여러 도의 사투리를 써가며 신분을 위장하는 등 지능적으로 범죄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강 씨는 대전에서 한 차례 범행을 저지른 후 천안과 청주, 전주, 대구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대전에 나타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몇몇 동네에는 거의 상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갈마동, 월평동 일대의 원룸촌 지역에서만 피해 여성이 16명에 이를 정도다. 강 씨가 전국을 돌아다닌 점을 감안하면 지난 6년간 강 씨로부터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그간 밝혀진 것보다 세 배는 더 될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피해 여성들 가운데엔 40대 주부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20~30대로 특히 대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 지난해 1월 붙잡힌 ‘발바리’ 이 아무개 씨. 연합뉴스 | ||
피해 여성들에게 평생에 걸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파렴치한 강 씨.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알고보니 강 씨는 청소년 시절부터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20대에 이미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 14범 출신이었다. 경찰들 사이에 ‘(모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든 강간범은 상습범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범죄는 특히 재발률이 높다고 하는데 강 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 씨는 또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정상적으로 가정까지 꾸미고 사는 어엿한 가장이기도 했다. 강 씨는 나이 차가 열 살 이상 나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둔 아버지였고 그동안 대전 지역에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중형차를 2대나 굴리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 씨는 경찰 조사 당시 ‘돈’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돈을 쉽게 훔치기 위해 힘없는 여성들을 노렸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강 씨는 성폭행으로 여성들을 유린하고도 모자라 1만 원짜리 단 한 장이라도 빼앗아 나올 만큼 ‘비열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6년간 강 씨가 강도강간이라는 흉악 범죄로 손에 쥔 돈은 겨우 200여 만 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금액이다.
강 씨는 처음 붙잡혀왔을 때만 해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제 막) 잘 살아보려 했는데 나를 붙잡아왔다”고 경찰을 원망할 정도로 죄의식이 희박했다고 한다. 강 씨는 자신의 아들을 끌어안고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이 또한 피해 여성들에게 참회하는 반성의 눈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게 한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성범죄자들 중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다”면서 “성범죄 재범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출소 후에도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