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놀라울 정도로 공손” “중국으로 향한 조공 행렬”…대만 문제 반박 못하고 스스로 ‘G2 회담’이라 불러

그러나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음식도 음악도 아니었다. 핵심은 두 정상의 위상에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 앉은 모습을 보면 더 이상 한 명의 패권자가 전 세계를 이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제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보다 트럼프가 시진핑 앞에서 보인 태도였다. ‘가디언’은 칼럼을 통해 “트럼프가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보여준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온순하고 신중했다”고 평가했다. 유럽 동맹국들을 방문할 때면 충돌을 일으키고 조롱과 압박을 일삼으면서 무례를 범하던 인물이 정작 베이징 공항에 내려 붉은 카펫을 밟을 때는 초조한 듯 양복 재킷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연신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시진핑을 “친구”라고 불렀으며, 심지어 엄격한 금주가인데도 불구하고 만찬장에서는 예의상 샴페인을 한 모금 홀짝이는 모습도 포착됐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왜 중국에서 이런 태도를 보였는지, 그 심리적 내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를테면 미국은 지도자를 조롱하거나, 심지어 선거를 통해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는 ‘시끄러운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시진핑의 중국은 안면인식 기술과 통제 시스템을 통해 14억 인구를 완벽하게 통치하는 ‘질서 정연한 독재 국가’다. 트럼프는 과거 2024년에도 시진핑을 향해 “그는 14억 인구를 철권으로 통치한다. 좋든 싫든 그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며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미국 내에서 실현하고 싶었으나 민주주의 시스템에 가로막혀 좌절된 ‘독재자의 판타지’가 완벽하게 구현된 현장을 목격했으니 그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었다.

이어 80세 생일을 한 달 앞둔 노쇠하고 점점 무기력해지는 미국 대통령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려 있다고 말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스스로 발을 들인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군사적, 정치적 에너지가 바닥났고 대내적으로는 참담한 지지율과 정치적 격변으로 정치적 수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트럼프가 이 시점에 베이징으로 날아간 이유는 명확했다. 추락하는 지지율을 단숨에 만회하기 위해 시진핑에게 미국산 보잉 여객기를 대량 구매해줄 것을 읍소하고, 자국 농민들을 위해 대규모 농산물 수입 계약이라는 단기적 성과를 애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데일리비스트’는 이를 두고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중국의 전통 약재를 찾아 나선 형국”이라고 조롱했다. 물론 논평이긴 했지만, 그만큼 이번 회담이 미국 권력의 상대적 약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읽혔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외교 전략가이자 40년간 국가안보회의(NSC)와 정책기획국장으로 활약했던 데니스 로스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타임’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는 “오늘날 미국은 더 이상 ‘단극적 초강대국’이 아니다. 세계 질서는 이미 변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로스는 냉전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군사, 경제, 외교적 도구를 활용해 세계를 움직였던 시기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긴 하지만, 이제는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같은 국가들이 미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자의 영역을 넓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그가 제시한 근거는 매우 정교했다. 대외적으로 힘이 빠진 미국을 상대로 중국, 인도, 이란, 러시아가 해양, 우주,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의 지배력에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대내적으로는 미국의 내부 분열이 격화되어 격렬한 충돌과 파괴적인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환멸과 절망의 정치적 파도를 타고 한 극우 애국주의자가 강력한 수사를 구사하며 대통령직을 거머쥐고, 미국의 권위를 존중해줄 것을 전 세계에 요구하면서 군사적 보복이나 경제적 보복 조치를 경고하게 된다는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맥코이는 다음과 같은 냉혹한 문장으로 예측을 끝맺었다. “하지만 세계는 거의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시대’는 침묵 속에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해’, 즉 2025년을 거치면서 그의 예언은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현실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 실제 우렁찬 수사와 극우 애국주의를 장착한 트럼프가 다시 한번 백악관의 권좌를 탈환했고, 그의 두 번째 임기는 외신들의 평가대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쇠퇴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말았다.
이번 미중 회담은 표면적으로는 안정과 협력의 언어로 포장됐다. 트럼프는 “환상적인 무역 합의를 이뤄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이 조만간 보잉 항공기 200대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농산물에 대해서도 향후 3년간 매년 수백억 달러 규모의 구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대만 문제였다. 시진핑은 회담 도중 독점적 지위를 주장하는 대만의 앞으로의 지위에 대해 매섭고 날카롭게 압박을 가했으나, 평소 거친 태도를 자랑하던 트럼프는 어찌 된 일인지 단 한 마디의 반박이나 저항도 하지 못 한 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후 에어포스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계획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나는 어느 쪽으로도 약속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 없는 건 95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라며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으레 그랬듯 전 세계 언론을 향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을 ‘G2 회담’이라고 부른 그는 “두 위대한 나라의 만남, 나는 이를 G2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한껏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가 먼저 꺼낸 말이긴 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바로 그 이미지야말로 시진핑이 원했던 최종 목표이자 치밀한 외교적 승리였다고 분석했다. G2 프레임의 함정, 즉 시진핑이 설계한 판에 트럼프가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선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번 베이징 회담은 그 은밀한 욕망이 외교 의전과 정치적 연출을 통해 구현된 무대였다.
이와 관련, ‘비즈니스타임스’는 시진핑이 이번 회담을 통해 미·중 경쟁의 규칙을 다시 쓰려 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에게는 미국 기업의 계약, 일자리, 농민 지원, 이란 전쟁이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시진핑에게는 더 큰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워싱턴이 중국을 더 이상 ‘관리해야 할 도전자’가 아니라 ‘함께 세계 질서를 다루는 동급의 상대’로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베이징을 떠나면서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중국은 어마어마한 대연회장을 가졌다. 우리 미국 백악관도 당연히 그런 멋진 연회장을 가져야 한다!” 이에 ‘가디언’은 세계 권력의 중심추가 이동하는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 앞에서 초강대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내놓은 최종 소회가 고작 ‘백악관에 중국 스타일의 화려한 무도회장을 짓고 싶다’는 철없는 부러움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앞에 놓인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끝나지 않는 이란 전쟁의 악몽, 갈수록 하락하는 지지율, 그리고 미국 기술 관료와 빅테크의 폭주가 그렇다. 맥코이가 15년 전에 경고했던 대로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고함과 협박에 겁을 먹지 않는다. ‘가디언’은 웅장했던 ‘미국의 시대’는 이제 한 노쇠한 대통령의 초라한 구걸 외교와 베이징의 화려한 연회장 불빛 뒤편에서 고요히 저물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화려했던 이번 베이징 회담이 보여준 결론은 하나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더 이상 혼자서 세계를 이끌지 못한다. 또한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는 이를 G2라고 불렀고, 시진핑은 굳이 그 단어를 크게 외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도달했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베이징의 화려한 의전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 권력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매우 정교하게 연출된 정치극이었던 셈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