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PO 규제 피해 ‘해외 예탁증서 상장’ 카드 활용 가능성…“무대 바뀌어도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 남아”

ADR은 기업의 기존 주식(원주)을 예탁기관에 맡기고, 이를 기초로 미국 예탁은행이 발행한 증서를 미국 증시에서 거래하게 하는 방식이다. 미국 투자자는 원주를 직접 사는 대신 ADR을 사고팔지만, 해당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에 따르면 ADR은 국내 법인과 원주를 유지한 채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기업가치 재평가를 기대할 수 있는 해외 자본시장 진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추진하면서, 해외 예탁증서 상장이 국내 기업의 해외 자본시장 활용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ADR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도 글로벌 투자자 기반 확대를 주요 배경으로 제시했다.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움직임이 다른 국내 기업의 ADR 상장 검토 사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국내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ADR이 비상장 기업들의 해외 상장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 중복상장 논란은 모회사가 보유하던 핵심 사업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할 경우 기존 모회사 주주가 해당 사업의 성장가치를 간접적으로 누리던 구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다. 투자자들이 모회사 대신 자회사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되면 모회사 주가에 할인 요인이 생길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달(5월) 말 중복상장 원칙 금지 관련 세부규정과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할 예정으로, 오는 7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상장 모회사가 신설하거나 인수한 종속회사까지 중복상장 심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우회 전략으로 ADR 상장을 현실화하더라도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우려는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빌리티 사업이 미국 ADR로 별도 상장하면 해당 사업에 투자하려는 자금은 카카오가 아니라 카카오모빌리티 ADR로 향할 수 있다. 이 경우 카카오에 대한 시장의 투자 매력에 영향을 주고, 기업 가치가 할인 평가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의 ADR은 이미 국내에 상장된 회사의 주식을 미국 시장에서도 거래하게 하는 것으로, 미국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반면 비상장 자회사가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모회사 주주와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문제여서 중복상장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 ADR 상장까지 고려한 투자자 보호 장치까지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ADR 상장도 모회사 일반주주의 피해는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다”며 “신주 발행을 동반한 ADR 상장은 국내에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대상이 될 수 있어 증권신고서 심사 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공적인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기업들의 ADR을 통한 중복상장 시나리오에 대비한 투자자 보호책을 법정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DR 상장 추진과 관련해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ADR 상장을 확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기보다는 투자자들과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밝혔다. ADR 상장을 둘러싼 중복상장 논란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