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표 주먹밥’에 ‘악마의 수면제’ 넣어 선물
▲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 보상금을 가로채려고 한 사건의 피해자와 수법. 은행 CCTV에 찍힌 이 여인의 모습(위쪽부터). SBS TV 촬영 | ||
이번에 부산 남부경찰서 강력 1팀 고행섭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불구가 된 외국인 노동자에게 접근해 산재보상금을 가로챘던 ‘가짜 천사’에 대한 것이다.
고 팀장은 “당시 매서운 한겨울 날씨만큼이나 우리 형사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보상금을 가로챈 이 여인은 전형적인 어글리 코리안이라 할 수 있다. 다시는 한국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던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에드워드는 2005년 11월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입국했다. 낯선 타향행을 결심하기까지 적잖은 갈등이 있었지만 그는 장밋빛 꿈을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입국 후 에드워드는 부산 시내의 한 파이프 공장에 취업했다. 작업량이나 노동 강도에 비해 박봉이었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다. 박봉이라 해도 자신의 고향에서 일을 해서는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가 외롭고 고단한 타향살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앞날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외로운 나날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부모와 약혼녀를 생각하면 금세 힘이 솟았다.
워낙 성실한 데다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에드워드는 빠르게 국내 생활에 적응해갔다. 낯설기만 했던 한국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고 코리안드림은 점차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에드워드에게 예기치 못한 끔찍한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6월. 작업 도중 공장 프레스기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에드워드는 오른손 손가락 4개가 잘리는 중상을 입게 된다. 다음은 고 팀장의 회고.
“한순간에 ‘코리안드림’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거다. 장애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도 그랬지만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손을 못 쓰게 된 것은 젊은 에드워드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에드워드는 절망에 빠져 며칠 동안 넋을 놓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치료차 부산 범천동의 한 병원에 입원한 에드워드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손 잘린 동남아 노동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외로운 병상생활이 계속됐다. 식음도 전폐한 채 눈물만 흘리던 에드워드에게 어느 날 한 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딱하기도 하지….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허구한 날 울고 있으면 어쩔 거야. 그럴수록 빨리 기운 차려야지.”
말을 건넨 여인은 때마침 에드워드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아들을 간호하고 있던 이 아무개 씨(36)였다. 에드워드의 사정을 들은 이 씨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 씨는 에드워드에게 각종 먹거리를 챙겨주는 것은 물론 옷가지나 생활용품을 사다주고 돈을 대신 인출해주는 등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쪽 손이 불편한 에드워드에게 흔쾌히 오른팔 역할을 해줬던 것이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에드워드도 차츰 웃음을 되찾았다. 고 팀장의 이어지는 설명.
“안 그래도 서럽고 외로웠던 차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로 없었을거다. 워낙 싹싹한 성격에 애교도 있는 이 여인이 ‘입 속의 혀’같이 대해주니까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는 이 여인을 ‘누나 누나’ 하면서 따랐고 고민이나 속얘기까지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게 됐다.”
하지만 ‘친누나’처럼 후덕하고 넉넉해보이는 이 씨에게 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씨는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고로 인해 장애를 입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욕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혈혈단신으로 남의 나라에 건너온 에드워드는 마땅히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한국말도 서툰 데다가 국내 사정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이 여인은 무슨 일이 생겨도 에드워드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을 노렸던 것이다.”
온갖 달콤한 말과 친절한 행동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에드워드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씨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내심 기대하고 있던 보상금 얘기를 그에게서 직접 듣게 된 것이다.
“누나,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요.”
“에드워드,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보상금은 받는 거야?”
“네. 곧 통장으로 넣어준다고 연락왔어요.”
“그래? 얼마나 준대?”
“5000만 원이요. 치료 끝나면 보상금 들어오는 대로 고향으로 갈 거예요. 한 손을 못 쓰게 됐지만 그 돈이면 우리 식구들이 고향에서 엄청 잘 살 수 있어요.”
에드워드는 보상금으로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이 씨의 범행을 부추기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에드워드에게 고액의 보상금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게 된 이 여인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한국 사정에 어두웠던 에드워드는 ‘조만간 통장으로 5000만 원이 들어온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보상금 지급 시기나 방법, 절차 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고도 없는 데다 어리숙한 에드워드는 이 여인에게 최적의 범행타깃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보상금이 지급되는 절차 등을 알아보는 동시에 에드워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간호해 환심을 샀다.”
이 씨는 아들이 퇴원한 뒤에도 매일같이 에드워드의 병실에 찾아갔고 둘의 친분 관계는 에드워드가 퇴원한 후에도 이어졌다. 이 씨는 에드워드에게 보상금이 들어왔는지를 수시로 물어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만에 하나 보상금을 받은 에드워드가 돈을 가족들에게 입금하고 갑작스레 고향으로 가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이 씨는 차츰 초조해졌다.
에드워드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이 씨는 아예 자신이 사는 집 근처에 여관 방을 잡아줬다. 가까운 곳에서 틈틈이 돌봐주겠다는 이 씨의 제안을 에드워드는 그저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에드워드가 거주하는 여관을 드나들었고 사실상 위험한 ‘동거’가 계속됐다.
그러던 중 이 씨는 마침내 그해 12월 19일 에드워드에게 산재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출국수속을 하려면 필요하니 여권과 통장을 달라’고 꾀었지만 에드워드로부터 완곡하게 거절당한 이 씨는 보상금을 가로채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다.
평소 에드워드에게 종종 먹거리를 챙겨줬던 이 씨는 보상금이 나오는 날 정오경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까지 받아 구입한 강력 수면제를 갈아서 주먹밥에 섞은 뒤 에드워드에게 먹였다. 그리고 이 씨는 현금 40만 원과 통장, 신용카드를 훔쳐 여관에서 빠져나왔다. 또 쉽게 신고를 못하도록 외국인 등록증까지 챙겼다. 그뒤 은행에서 보상금으로 들어온 4700만 원을 출금한 이 여인은 이 돈을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몇 시간 후 잠에서 깬 에드워드는 도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도둑이 든 흔적도 없는데 현금과 통장, 신분증이 사라졌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동안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누나’를 찾았던 에드워드는 그날 저녁 다급히 이 씨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목적을 달성한 이 씨의 태도는 냉랭하기만 했다. 고 팀장의 이어지는 설명.
“사건 당일은 에드워드가 출국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에드워드가 발을 동동 구르며 찾아오자 이 여인은 시치미를 떼고 ‘집까지 찾아오면 어떡하냐.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넌 당장 잡혀가서 고향에도 못 간다’고 잔뜩 겁을 줘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길로 일체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에 에드워드는 외국인노동자 쉼터에 있는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두 사람이 같이 경찰서로 찾아왔던 것이다.”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도난사건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진술을 종합해본 결과 또 다른 범죄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은 에드워드가 주먹밥을 먹은 뒤 갑자기 잠에 빠져들었으며 그날 이후로 이 씨와 연락이 두절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에드워드가 조만간 보상금이 들어올 텐데 큰일났다며 안절부절하더라. 확인 결과 보상금은 사건 당일 들어와있었는데 이미 누군가에 의해 인출된 뒤였다.”
경찰은 즉시 에드워드의 보상금이 인출된 은행 CCTV 화면을 분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CCTV 화면에 찍힌 풍만한 체형의 여성은 그토록 에드워드를 살갑게 챙기던 이 씨가 분명했다. 이 씨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던 경찰은 어느 날 늦은 밤 남은 짐을 챙기러 집에 나타난 이 씨를 강도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이 여인은 무조건 범행을 부인했다. 증거를 들이대니 마지못해 돈을 가로챈 부분에 대해서 시인하더라. 그러나 주먹밥에 수면제를 섞은 사실에 대해서는 죽어도 아니라고 하는 거였다. 수면제를 산 약국과 병원 처방전까지 확인됐는데도 모르쇠로 나오니 기가 막혔다. 할 수 없이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꾀를 냈다. ‘에드워드를 상대로 소변검사를 했는데 당신이 처방받은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당신이 만들어온 주먹밥을 먹고 나온 성분인데 이래도 아니라고 할 거냐’고 추궁했더니 그제서야 실토를 하더라.”
조사 결과 이 씨의 범행은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전세방에서 살고 있던 이 씨는 사실상 남편과 별거상태였다. 배를 타는 남편은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씨는 나이 차이도 많은 데다가 생활력이 없는 남편과 예전부터 적잖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바깥으로만 떠도는 남편으로 인해 가정을 꾸려가는 것은 전적으로 이 씨의 몫이었다.
아이는 점차 커가는데 변변한 수입도 없던 이 씨는 생활고에 쪼들려 고민하던 중 에드워드를 알게 된 것이었다. 돈이 필요했던 이 씨에게 에드워드는 더없이 적절한 범행타깃이었다.
“전과 하나 없었던 평범한 여인이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른 사건이었다. 아들까지 있는 여성이 딱한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더 기가 막히더라. 더구나 당시 이 여인에게서는 조금의 죄책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누나’의 실체를 알게 된 에드워드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나가 그럴 리 없다’고 눈물을 흘리는 에드워드를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착잡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준 호의와 친절이 보상금을 노린 위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드워드는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에 매우 괴로워했다. 에드워드는 끝내 마음에 깊은 상처만 안은 채 고향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