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으로 고소” 협박 뻔한 수법에 또 당했다
이들 일당이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현직 공무원이거나 전직 공직자들. 이들은 전·현 공직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사회적 지위 때문에 신고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들 일당은 범행 대상을 선정하고 난 후에는 당사자에게 접근해 꾸준히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범죄 시나리오를 다듬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이들 ‘꽃뱀’ 일당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유혹했는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폭력전과 등이 있던 이정서 씨는 평소 춘천 일대에서 특정한 직업 없이 도박판을 기웃거리던 인물. 이 씨는 낮시간 빈집에서 벌어지는 동네 도박판을 드나들던 과정에서 공범 장 씨를 비롯해 6명의 도박 멤버들과 친분을 맺게 됐다.
평소 적은 돈으로 노름을 즐기던 이 씨 등은 점점 큰돈을 만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도박장을 드나들어 돈이 궁했던 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만다. 함께 큰돈을 벌어보자며 ‘한탕’을 결심했던 것. 결국 이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속칭 ‘꽃뱀’을 이용한 갈취였다.
범행에 앞서 이들 일당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범행 대상과 성관계를 가지는 ‘꽃뱀’, 성관계를 맺은 현장을 덮치는 ‘남편’, 피해자를 협박해서 합의금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협박조’ 등으로 임무를 나눴다. 또한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범행 계획을 다듬었다. 이제 이들 일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준비한 ‘꽃뱀’에 물려줄 희생양뿐이었다.
이들 일당의 첫 제물이 된 이는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얼마 전 전역한 A 씨(62). 이 씨는 A 씨가 전역을 하면서 받은 퇴직연금과 부동산 등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A 씨에게 접근했다. 수완 좋은 이 씨는 짧은 시일 안에 A 씨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들 일당이 ‘거사’를 치르기로 한 당일, 이 씨는 “술이나 한잔 하자”며 A 씨를 인근 술집으로 불러냈다. A 씨가 이 씨와 얘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던 중 한 예쁘장한 여인이 A 씨의 어깨를 핸드백으로 치고 지나쳤다. A 씨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여인은 바로 ‘꽃뱀’ 역할을 맡은 장 씨. 장 씨는 “○○술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또 다른 공범 B 씨와 함께 술집에 찾아와 애초 공모했던 대로 A 씨에게 ‘작업’을 건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이 씨는 기회를 놓칠세라 장 씨에게 “사람을 치고 사과도 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발끈하는 척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 씨에게 “미안하면 술이나 한잔 따라주라”며 장 씨와 B 씨를 그 자리에 동석시켰다. 장 씨는 B 씨와 자신을 “부산에서 춘천에 놀러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장 씨 일행이 자리에 함께 앉은 뒤부터는 이 씨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이 씨는 공범들과 함께 또 다른 술집으로 A 씨를 유인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A 씨가 어느 정도 술에 취한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슬그머니 B 씨와 함께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A 씨와 장 씨 둘만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 이제는 장 씨가 A 씨를 유혹할 차례였다. 장 씨는 술에 취한 척하며 A 씨를 가까운 여관으로 유인했다.
장 씨와 함께 여관에 들어간 A 씨는 불안한 마음에 이 씨에게 “어디 있느냐”며 전화를 걸기도 했지만 이 씨는 A 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도 B 씨와 여관에 갔으니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씨의 말에 한숨을 돌린 A 씨에게 이번에는 장 씨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개시했다.
장 씨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A 씨는 결국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장 씨는 이 과정에서 성관계를 맺은 흔적을 침대에 남겨두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A 씨와 성관계를 끝내자마자 장 씨는 공범 B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사전에 모의했던 대로 “A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흐느꼈다.
여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이 씨와 공범 B씨는 장 씨의 전화를 받자마자 방으로 들이닥쳤다. B 씨는 A 씨에게 “어떻게 딸 같은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화를 내고는 먼저 장 씨를 데리고 여관을 빠져나왔다. 이 씨 역시 당황해하는 A 씨를 “우선 집으로 가자”며 데리고 나왔다. 이때부터 A 씨는 ‘꽃뱀’의 독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틀 후 이 씨는 “장 씨가 형을 고소하려 한다”며 A 씨에게 전화를 했다. A 씨는 “내가 성폭행을 한 것이 아니므로 맞고소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씨는 “맞고소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 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 우선 장 씨를 만나 개인적으로 해결하자”며 장 씨가 입원해 있다는 부산의 병원 응급실로 A 씨를 데리고 갔다. 미리 연락을 받은 장 씨와 일당들은 이미 또 한 편의 ‘연극’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A 씨는 자신을 장 씨의 삼촌과 친구라고 밝힌 공범들과 맞닥뜨렸다. 이들은 “가을에 결혼할 아이인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며 A 씨를 병원 바깥으로 끌고나갔다. 이들은 A 씨를 폭행할 것처럼 잔뜩 겁을 줬고 이때 이 씨가 중재하는 척 나섰다. 결국 A 씨는 합의금으로 7000만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춘천으로 돌아온 이틀 후 A 씨는 합의금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다시 이 씨를 만났다. 당장 현금이 없었던 A 씨는 이 씨와 상의한 끝에 우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끄기로 결정한다. A 씨는 초조한 마음에 자신이 현역 군인 시절에 거래하던 은행에 찾아갔다. 하지만 A 씨는 이전에 대출을 받은 돈을 다 갚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A 씨는 은행 대출을 포기하고 만다.
어떡해서든 돈을 뜯어내려는 이 씨는 평소 안면이 있던 사채업자를 통해 A 씨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담보로 7000만 원을 대출받도록 해줬다.
그 뒤 이 씨는 장 씨에게 합의금을 건네주겠다며 A 씨가 대출받은 돈을 모두 가져갔다. 이 씨는 이 돈을 공범들과 나눠가진 후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한편 사채 문제로 시달리던 A 씨는 공교롭게 자신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데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지 석 달쯤 후에 “아무래도 꽃뱀에게 당한 것 같다”며 춘천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A 씨에게서 사건의 전모를 듣고 꽃뱀 조직에 의한 범행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건 접수 한 달여 만인 지난 7월 16일 폭력법위반에 관한 혐의 및 공동공갈 혐의로 이들 일당을 체포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이 범행을 저지른 대상은 A 씨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는 가짜 마약까지 동원해 꽃뱀 행각을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에게 영양제를 흥분제라고 속이고 건네준 뒤 이를 자신들의 공범인 ‘꽃뱀’에게 피해자가 직접 먹이게 유도한 후 성관계를 맺도록 했던 것. 그뒤에 공범들이 “마약을 먹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으로 돈을 갈취했던 것이다.
이들 일당의 꽃뱀 행각에 당한 피해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3명. 모두가 전·현직 공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피해를 당해도 신분상 사실을 밝히기 힘든 공직자나 공직 출신자를 노렸던 점으로 보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