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살찔 때 제작자는 말라간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이 914억 원의 매출을 거두며 러닝개런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등극한 <명량>의 배우들도 수십 억대의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7번방의 선물> 출연을 결정할 때 류승룡이 받은 출연료는 3억 원이다. 당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류승룡은 이 영화의 제작 규모와 상황을 고려해 평소 받던 수준보다 낮춰 출연료를 받았다. 대신 흥행 결과에 따라 관객 1인당 일정 액수를 받는 러닝개린터 계약을 따로 맺었다. 영화에 참여한 또 다른 출연자인 배우 정진영도 러닝개런티 계약에 따라 5억 2000만 원을 받았고, 연출자인 이환경 감독은 무려 18억 원을 받았다.
대중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액 보너스로 인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개런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기본 출연료 외에도 다양한 보너스 계약이 이뤄진다. 흥행에만 성공한다면 ‘로또 당첨’에 버금갈 만큼의 보너스를 챙길 수도 있다.
배우들의 영화 출연료는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출연 대가로 받는 개런티를 비롯해 흥행 보너스 개념인 러닝개런티, 매출이나 수익금의 일정 퍼센트를 할당받는 지분 확보다. 류승룡의 경우 관객 1인당 약속된 금액을 받는 러닝개런티 계약에 따라 10억 6000만 원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방식보다 지분 보유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지분은 영화가 거둔 매출이나 순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할당받는 시스템이다. 1인당 일정 금액을 받는 게 아니라 전체 수익에서 약속된 퍼센트를 나눠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 러닝개런티보다 배우에게 돌아가는 금액 규모는 더 커진다.
톱스타 A는 얼마 전 주연한 영화에서 출연료로 7억 원을 받았다. 업계 최고 대우였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총 매출액 가운데 7%의 지분을 받는다는 계약도 맺었다. ‘7억+7%’ 계약을 맺은 셈. A의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덕분에 지분 확보에 따라 약 20억 원의 보너스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출연료인 7억 원을 더한다면 영화 한 편으로 30억 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비단 A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흥행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파워’로 평가받는 6~7명의 톱배우들은 대개 출연료와 더불어 지분 계약을 맺고 영화에 참여한다. 즉 ‘출연료+지분’을 묶은 패키지 계약이 극소수 톱배우에게 통용되고 있다. 물론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지분은 효력을 발휘하지 않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올해 하반기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한 대작 영화의 경우 출연하는 배우 3명이 확보한 지분이 총 매출의 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수입에서 배급사 비용 등을 제한 순수익이 아닌 총매출에서 5%를 할당받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들 3명의 배우 앞으로 돌아가는 금액 역시 최고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두고 영화계 안팎에서 ‘지나친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스틸컷.
러닝개런티와 지분은 일종의 ‘옵션’이다. 영화에 출연하는 누구에게나 돌아가는 혜택이 아니다. 실제로 <7번방의 선물> 주인공들의 러닝개런티 금액이 공개된 직후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또 다른 배우인 김정태와 박신혜 등은 ‘보너스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낳았다. 물론 류승룡, 정진영을 제외한 배우들은 제작진과 러닝개런티 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밖에서 보기엔 마치 누군 받고 누군 받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차별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영화 관계자들은 러닝개런티와 지분 계약은 일정한 ‘기준’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뚜렷한 수치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해당 배우가 보유한 영화에 대한 ‘기여도’와 대중적인 ‘인지도’가 그 기준이다. 특히 한국영화는 어느 배우가 주연을 맡느냐에 따라 흥행 성패가 나뉠 때가 많다. 송강호, 하정우처럼 출연작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불패의 배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배우의 티켓파워가 흥행을 결정하는 일이 많다보니 출연료 외에 옵션 조항이 붙더라도 캐스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이젠 톱배우들이 지분을 확보하는 건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 고착되면서 정작 영화를 기획해 개봉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제작자는 적절한 수준의 수익을 챙기지 못한다. 갈수록 영화 제작의 힘이 지나치게 배우에게 집중되는 탓에 제작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배우가 차지한 지분만큼 투자자나 제작자는 손해를 볼 위험이 있다. 간혹 불합리한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도 대부분 스타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티켓파워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영화의 지분을 나눠 가진 제작사와 투자사, 배급사는 흥행 결과에 따라 위험을 분담하지만 오직 배우만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도 꼬집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