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때문에 사건 조용히 묻혔다”
76년 경찰에 투신한 박용만 수사과장(55·경정)은 31년 경력의 수사통이다. 외사 부문에도 밝은 박 과장은 방배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 등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수사업적을 남겼다. 특히 서울경찰청 근무 당시에는 수사 도중 도주한 유영철을 다시 잡아들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가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강대원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과 유영철에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
“2004년 7월 16일 새벽 3시경 강대원 대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야! 이거 큰일 났다. 유영철이 도주했다’는 거예요. 비상이 걸렸죠. 비상회의를 하고 유영철을 잡으러 출동했죠. 비도 오고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인 날이었어요. 팀원들이 차에 나눠 타고 여의도 마포 영등포 일대 등을 일제히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는데 ‘이거 못 잡으면 사단 나겠구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영등포역 인근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를 받아 차가 멈춰 있는데 저희 팀원 하나가 ‘어, 저거 유영철 아닙니까’ 이러는 거예요. 놀라 돌아보니 유영철이 모자를 눌러쓰고 시커먼 점퍼를 입은 채 눈에 계란을 굴리며 태연히 걸어가고 있더라고요. 온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다른 팀에서 놓친 유영철을 우리 팀에서 잡게 됐으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앞뒤로 지원 요청을 해둔 뒤 다가갔죠. 그리고 ‘유! 영! 철!’ 이렇게 불렀습니다. 원래 범인을 잡을 때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힘을 줘서 불러야 됩니다. 순간 움찔하더니 저항 한 번 못하더군요. 그가 한다는 말이 ‘너희들 여기 어떻게 알았어?’였어요. 당시 우리들은 유영철의 ‘혀놀림’에 아주 질려 있던 상태였어요. 유영철은 처음에 잡혀와서도 형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서른 명을 죽였어. 이제 너도 특진, 너도 특진이야~’ 이랬었죠. 저는 강대원 대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잡았습니다’라고 하니 ‘캬아!~ 정말이야? 정말 잡았어? 이야~ 나 진짜 모가지 날아가는 줄 알았다. 네가 날 살렸구나. 고맙다’ 이러더군요. 그날은 제 평생 잊을 수가 없죠.”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