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가족’ 남의 눈물 태워 하루살이
이번에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1팀 손흥락 형사가 전하는 사연은 4년 전 대구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모자 연쇄방화사건’에 대한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손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당시 경찰은 얼굴 없는 방화범과의 싸움에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수사 결과 드러난 범인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60대 노모와 그녀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4개월여 동안 대구 시내와 경산에서만 무려 20건이 넘는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수사팀을 경악케 했다. 이들은 빈집만을 골라 들어간 후 금품을 훔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엽기적인 수법을 사용했는데 이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검문 경찰관이 살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 더없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희대의 모자 연쇄방화범으로 인해 추운 겨울 한순간에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던 피해자들과 근무 중 범인의 칼에 찔려 사망한 젊은 경찰관의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손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불이 난 곳은 대부분 대구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로 넉넉하지 않은 노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단순 화재일 거라 생각했지만 현장에 가서 살펴본 결과 뭔가 이상한 점이 속속 발견되더라. 우선 화재는 모두 낮 시간대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여름은 겨울과 달리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가. 감식 결과 역시 단순화재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방화로 판명됐다.”
수일 간격으로 벌어지는 방화사건에 경찰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여름께부터 며칠이 멀다하고 들려오던 화재 소식은 가을이 돼서도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그해 9월 28일 대구 서구 비산동에 사는 A 씨(66)의 집에 불이 난 것을 비롯해 원인도 알 수 없는 불은 급기야 인근 경산지역에서까지 발생했다. 모두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일까. 수사팀은 피해자들의 주변 인물을 상대로 혐의점을 조사하는 한편 화재가 일어났던 당시 현장 인근에 수상한 사람이 없었는지 탐문수사를 벌여나갔다. 하지만 피해자들 주변에선 의심할 만한 이들이 발견되지 않았고 매번 한적한 변두리 주택가에서만 불이 난 탓인지 현장에서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은 손 형사의 얘기.
“수사팀은 범인이 매번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찾아와 불을 지른 것으로 보아 원래 목적이 방화가 아닌 금품을 노린 범행일 것으로 추정했다. 금품을 훔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질렀을 가능성을 주시한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집 안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귀금속 등이 사라졌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수사는 강·절도 용의자를 쫓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 현장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음은 손 형사의 얘기.
“보다 면밀히 조사해보니 범인이 나타났던 현장에는 하나같이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범인은 현장에 간장이나 식용유, 식초 등을 잔뜩 뿌려놓고 달아났더라. 이불이나 옷가지 등을 잔뜩 쌓아두고 그 위에 이런 식재료들을 뿌리고 간 경우도 여러 건 있었다. 얼핏 보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나 정신이상자가 익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지르고 다니는 ‘묻지마 방화’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범행이 매번 눈 깜짝할 사이에 치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진 데다 돈 되는 물품들을 싹쓸이해 갔다는 점에서 이는 다분히 돈을 노린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였다. 범인이 식용유 등을 뿌려놓은 것도 자신의 족적이나 지문 등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저지른 행동으로 판단됐다.”
수사팀과 엽기 연쇄방화범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사팀은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포착하기에 이른다. 전세를 놓는 집에 찾아가 전세를 들 것처럼 해놓고 돈을 빌려 달아나는 수상한 모자에 대한 피해 신고를 접하게 됐던 것이다. 다음은 손 형사의 얘기.
“60대 여인과 그녀의 아들이 피해 노인들이 있을 때 찾아와서 마치 전세를 들 것처럼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 문제 등을 놓고 집주인과 한참을 얘기하다가 계약을 하겠다며 돈을 가져온다고 했다는 거다. 그런데 그때 마침 여인의 아들에게서 ‘교통사고가 나서 급전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오더라는 거였다. 여인은 교통사고 무마 명목으로 주인에게 돈을 빌려 사라졌고 그후로 아예 자취를 감췄다는 거였다. 또 이들 모자는 세를 들기로 한 집에 이삿짐을 옮기는 도중 차량사고가 났다며 집주인에게 급전을 빌린 후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 모자를 연쇄방화범으로 볼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낮시간대 전세를 놓는 집에만 들러 치밀한 작전하에 돈을 가로채 달아났다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분명 의심스러운 인물들이었다. 게다가 이즈음 방화가 발생한 지역에서 어슬렁거리던 나이든 여인과 젊은 청년을 봤다는 제보도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수사팀은 피해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과학수사팀의 베테랑 형사에게 이들 모자의 몽타주 작성을 의뢰, 추적에 들어갔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11월 6일 오전 대구시 이천동에서 수상한 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순자 씨(가명·당시 68세)와 박정수 씨(가명·당시 24세)가 바로 그들이었다. 때마침 남부경찰서 봉천지구대 소속 고 김상래 경장(당시 36세)은 범행 대상을 물색 중이던 이들 모자를 발견했다. 몽타주를 들고 김 경장이 모자에게 다가가 검문을 실시하려던 찰나 아들 박 씨는 흉기를 꺼내 김 경장을 찌르고 그대로 달아났다. 깊은 상처를 입은 김 경장은 많은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도 신속하게 주위의 동료들에게 이들의 도주로를 알렸고 200여m를 달아나던 이들 모자는 결국 주변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 결과 밝혀진 이들 모자의 범행은 수사팀을 경악케 하고도 남았다. 이들의 족적은 수사팀이 주택 방화 현장에서 수집한 족적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모자가 거주하던 원룸에서는 피해자들의 것으로 확인된 금품과 생필품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어지는 손 형사의 얘기.
“이들 모자의 범행은 전문 방화범 못지않게 치밀했던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을 놀라게 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전세를 놓는 집주인에게 ‘교통사고’ 핑계를 대거나 능수능란한 거짓말로 속여 13차례에 걸쳐 수백만 원에 달하는 돈을 가로채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모자는 ‘전세놓음’이라는 광고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 집주인이 집을 비워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 빈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고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불을 지르는 상습 절도·방화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모자가 그해 7월부터 11월까지 벌인 방화 행각만도 무려 24회에 달했다.”
그렇다면 이들 모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당시 이들은 경산 시내의 원룸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 김 씨는 슬하에 세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박 씨는 그중 맏아들이었다. 다음은 손 형사의 얘기.
“조사 결과 김 씨네 집안은 정상적인 집안과는 달랐다. 김 씨는 당시 장성한 세 명의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아들 모두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알고 보니 아들들이 모두 혼외자식으로 김 여인 역시 혼인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던 탓이었다. 호적에 기재되지 않은 까닭에 김 씨의 세 아들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받는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처지였다. 맏아들이었던 박정수 역시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정규교육은 물론 징집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상태였다. 범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박정수의 동생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 또래 젊은이들이 받는 교육이나 문화적 혜택 등을 받지 못한 채 뚜렷한 직업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 중 제대로 된 수입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어지는 손 형사의 얘기.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서 맏아들 박정수는 사실상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일흔을 앞둔 노모와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박정수는 주민등록에 등재되지 않은 탓에 정규 직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정수는 간간이 주차관리요원이나 막노동을 해왔으나 신분증을 제시할 수 없었던 그에게는 그런 일마저 오래 허락되지 않았던가보다.”
이들의 집은 결국 원룸 관리비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된다. 하루하루 살길이 막막해지자 모자는 급기야 위험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몇 건 크게 해서 포장마차라도 차려볼 요량이었다.
범행을 공모하던 모자는 주택가 곳곳에 붙여진 전·월세 전단지를 발견하고 전단지에 적혀 있는 주소지를 찾아간 뒤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집주인이 집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일단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 확인되면 범행대상으로 적격이었다. 집 안에 침입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훔친 모자는 그뒤 불을 질러 범행을 은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집 안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경계가 심하지 않은 노인이 혼자 있을 경우 전세를 얻을 것처럼 위장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그중 일부 가정에는 며칠 후 다시 찾아가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 모자의 과감한 범행수법에 견주어볼 때 소득(?)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가구들이었던 탓에 이들이 수십 차례에 걸쳐 훔친 금품은 1500만 원 상당에 불과했다는 것. 하지만 피해자들이 주택을 수리하는 데 든 돈은 무려 6억이 넘은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에서 이들 모자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고 한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가 모자가 밝힌 범행의 동기였다. 하지만 어머니 김 씨와 달리 아들 박 씨는 조사받는 내내 이렇다 할 죄책감이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손 형사의 얘기.
“박 씨를 조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는 조사 과정 내내 입을 잘 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그가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만큼은 끔찍하게 여겼다는 점이었다. 이들 모자는 평소에도 서로를 극진히 아끼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조사 과정에서 박 씨는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다 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또 조사를 받다가도 ‘우리 엄마는 지금 어디 있냐. 잘 계시는 거냐. 엄마한테 물이라도 한 잔 갖다 드렸나’라고 수시로 묻는 등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씨는 자신이 흉기로 찌른 검문 경찰관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갑작스레 검문을 당하니 당황한 나머지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였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 박 씨의 변명이었다. 상습절도·방화 및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아들 박 씨는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