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존재 감추려 ‘열두 살 바보’ 만들었다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A 씨(여·49)는 지난 1996년 3월 인천의 한 조산원에서 B 양(12)을 낳은 뒤 최근까지 B 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채 유기·방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혼외정사로 임신한 딸을 남편 몰래 낳은 뒤 12년 동안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방치해왔고 이렇게 홀로 자라는 과정에서 B 양은 이웃 어른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 조사 뒤 B 양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호적(가족관계등록부)을 등록해달라고 A 씨에게 요구했으나 A 씨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A 씨가 현재 자신의 가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12년 동안 친딸을 방임한 채 생활했던 한 여인과 친어머니를 이모로 여겨왔던 한 소녀의 기막힌 스토리를 추적해 보았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슬하에 여러 자녀를 둔 A 씨.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으로는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점점 힘에 부쳤다. 이에 A 씨는 지난 90년대 중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식당 일을 하면서 A 씨는 단골손님으로 오던 한 남자와 눈이 맞아 한두 번 잠자리를 같이하게 된다.
한순간의 불장난 같은 외도였지만 ‘대가’는 심각했다. 덜컥 아기를 배고 만 것. 그러나 A 씨는 6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에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이미 임신 6개월이라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A 씨는 뱃속의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출산으로 인해 외도 사실이 드러나 가정이 깨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A 씨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한 뒤 가정불화를 핑계 삼아 몇 달 동안 가출을 했고 그 사이에 한 조산원에서 딸 B 양을 출산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출산한 사실을 철저하게 감추기 위해 그는 당시 갓난아기였던 B 양을 교회 관계자 등 제3자에게 맡겨 키웠다. B 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후 A 씨는 남편과 자녀들이 있는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A 씨는 B 양이 자신의 조카라고 제3자에게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이곳 저곳을 떠돌며 남의 손에 키워진 B 양은 2000년 3월께 무료신문에 ‘애 돌봐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낸 C 씨(여·44)에게 맡겨졌다. 당시 A 씨는 C 씨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면서 “친부모는 교통사고로 모두 죽었고 이 아이는 내 조카다”라고 속인 뒤 ‘잠적’했다. 양육비만 C 씨에게 보내줬을 뿐 B 양 앞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A 씨가 원치 않던 아이였던 B 양은 태어날 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행정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A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됐음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이에 C 씨는 수소문 끝에 A 씨를 찾아가 B 양의 입학을 위해 출생신고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A 씨는 가족들에게 B 양의 존재가 밝혀지는 것을 꺼려한 나머지 이를 거절했다.
생모가 출생신고를 거부하니 별다른 방법이 없어 B 양은 계속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해 B 양이 아플 때면 약국에서 감기약 등을 사서 임시방편으로 치료를 받곤 했다. 비싼 치과 치료는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해 경찰에 발견될 당시 B 양의 치아 상태는 매우 안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육을 맡았던 C 씨와 그의 남편이 생계를 위해 바쁜 생활을 하고 C 씨의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면서 B 양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는 천덕꾸러기 삶을 살았다. 학교에 다닐 나이임에도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던 B 양은 밤늦도록 집과 근처 놀이터를 배회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B 양을 눈여겨보던 이웃집의 40대 남성이 아이에게 접근했다. 이 남성은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B 양을 꾀어 집에 데려간 뒤 성폭행을 하고 말았다.
C 씨의 집에서는 B 양이 새벽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자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경찰은 가출신고를 접수하면서 B 양의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뒤늦게 B 양이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오자 우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B 양이 이웃집 40대 남성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아이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기막힌 사연도 드러났다.
경찰은 성폭행범을 쫓는 동시에 아이의 친엄마를 찾기로 했다. C 씨의 통장으로 양육비가 지속적으로 전달됐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경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개인사업을 하고 있던 친엄마 A 씨를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잠복수사 끝에 성폭행 피의자도 검거해 구속시켰다.
경찰에 출석한 A 씨는 B 양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내가 친엄마라는 사실을 가족은 물론 아이 본인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고 전했다.
조사 당시 경찰 관계자들이 “아이가 정상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호적은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냐”며 설득했지만 A 씨는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호적을 만들어주면 결국 가족들이 B 양의 존재를 알게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궁여지책으로 B 양의 친아버지인 옛 식당의 단골손님을 찾아보려 했지만 워낙 잠깐의 만남이라 A 씨는 그의 신원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인천 연수경찰서는 지난 14일 자신의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등)로 A 씨를 일단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A 씨에게 기한을 정해주고 B 양의 호적을 기한 이내에 만들어주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법적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아동연구소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B 양의 정신건강 상태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상담 결과에 따르면 B 양이 교육 자체를 받은 적이 없어서 초등학교 이전의 지적 능력을 보인다”고 전했다. B 양은 현재 C 씨의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아동센터 입소 등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