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모녀 둥지에 늑대 냄새가…
약 14년 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월곡동 H 여관 모녀 살인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범죄 연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강북경찰서 청문감사실 안영호 반장은 사건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전한다.
“멀쩡히 여관을 운영해오던 전 여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전 여인은 좀처럼 여관을 비우는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평소 성격으로 볼 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언질도 없이 사라질 사람도 아니었다. 신고를 한 전 여인의 친구 역시 ‘연락도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전 여인의 딸 이주영 양(가명·15)도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주영 양은 전 여인이 사라지기 일주일 전에 가출했다고 하더라. 확인결과 전 여인은 관할파출소에 딸의 가출신고까지 해둔 상태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사라진 여관집 모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수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 여인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남편과 헤어진 후 전 여인은 여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딸과 단둘이 살아왔다고 한다. 여자 혼자 몸으로 어린 딸을 키우며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생활력이 강했던 전 여인은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모은 돈으로 결국 여관을 사들여 직접 운영하기에 이른다. 그런 전 여인이 아무일도 없이 자신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여관을 버려둔 채 스스로 사라질 리는 만무했다. 특히 실종 당시 전 여인은 딸을 찾기 위해 가출신고까지 해두지 않았던가.
전 여인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던 수사팀은 그녀와 동거 중인 내연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성영중 씨(가명·43)가 바로 그였다. 다음은 안 반장의 얘기.
“모녀가 사라진 후에도 여관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 여인의 내연남인 성 씨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이 찾아갔을 때도 성 씨는 참으로 태연했다. 전 씨 모녀의 행방에 대해 묻자 성 씨는 ‘주영이는 가출했고 전 여인은 수원에 있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나가서 소식이 끊겼다’고 하더라.”
하지만 수사팀이 보기에 성 씨는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가족·친지들과 일절 연락을 끊고 살아오던 전 여인 모녀와 가장 가깝게 지내온 성 씨가 모녀의 행방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안 반장의 얘기.
“성영중은 전직 승려였다. 그는 70년 중반 입적해 승려생활을 하다가 84년경 승적을 박탈당한 인물이었다. 이후 특정한 직업이 없이 떠돌아 다니던 성 씨는 승려생활을 할 당시 배운 가락으로 미아리에서 점집을 운영했다. 전 여인과는 그때 알게 된 사이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던 전 여인이 인생상담을 하러 성 씨의 철학관을 찾았고 이후에도 성 씨는 ‘살풀이를 해야 한다’며 전 여인의 집을 찾아왔고 그러면서 점차 내연관계로 발전한 것이었다.”
수사를 진행하던 수사팀은 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전 여인의 집에서 의문의 서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지는 안 반장의 얘기.
“주영 양이 가출 직전 쓴 것으로 보였는데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내용이었다. 자필이 아닌 타자기로 작성되어 있는 게 특이했다. ‘엄마, 나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러니 나 찾지 마세요. 그 아저씨(성영중) 참 좋은 분이에요. 엄마도 나 잊고 그 아저씨랑 행복하게 사세요’ 뭐 이런 내용이었다. 누가 보나 주영 양이 남자친구를 따라 가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전 여인이 딸의 가출신고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팀은 평소 착실한 주영 양이 갑자기 가출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 모녀는 아무 갈등이 없었고 일가 친척과 교류도 없이 단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사이였다. 그런 딸이 어머니에게 사전에 어떤 낌새조차 남기지 않고 달랑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사팀은 전 여인과 동거하던 성 씨를 임의동행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 씨는 모녀의 행방에 대해 애초의 진술만 되풀이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또 모녀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받거나 말문이 막힐 때면 성 씨는 염불만 외우는 등 수사팀을 애 먹였다. 하지만 수사팀은 성 씨에게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내기에 이른다. 다음은 안 반장의 설명.
“주영 양의 가출부터가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나는 주영 양이 남기고 갔다는 서신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 결과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맞춤법이 잘못된 글자가 있었는데 ‘옆’을 ‘엽’으로 쓴 것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주영 양이 그런 기본적인 맞춤법을 모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실수에 의한 오타가 아니라 독학으로 잘못 배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틀리는 맞춤법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틀린 줄도 모르고 쓰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성영중을 떠올렸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던 성 씨는 틀린 맞춤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수사팀은 성 씨가 진술서를 작성할 때 ‘옆’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문장을 쓰도록 유도했다. 성 씨는 수사팀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진술서를 쓱쓱 써내려갔다. 결과는 안 반장의 예상대로였다. 성 씨는 자필 진술서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옆’을 ‘엽’이라고 썼던 것이다. 이는 전 여인의 딸 주영 양이 가출하기 직전 남겼다는 편지가 결국은 성 씨가 쓴 자작 편지였음을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성 씨는 필체를 숨기기 위해 타자기로 편지를 쓰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수법을 동원했지만 수사팀의 예리한 눈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가짜 편지’. 이는 주영 양의 행방불명에 성 씨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성 씨는 왜 가짜 편지를 남기면서까지 주영 양을 가출한 것처럼 꾸미려 했을까. 가출한 딸을 애타게 찾던 전 여인은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조사가 진행될수록 결정적인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다음은 안 반장의 얘기.
“성영중은 시종일관 거짓말과 변명으로 둘러대며 수사팀의 애를 먹였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눈을 감고 염불을 외우는데 기가 막히더라. 전 여인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집을 나갔다는 날 성영중은 ‘경동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성 씨의 짐 보따리에서 발견된 영수증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성 씨가 진술한 시각 그는 경동시장이 아닌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의 추궁에 거짓말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성 씨는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모든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에 이른다.
애초 수사팀이 조사한 대로 승적을 박탈당한 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성 씨는 미아리에서 점집을 운영하던 중 전 여인을 알게 됐다. 변변한 돈벌이가 없던 성 씨는 전 여인이 자기 건물을 갖고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남편과 헤어진 후로는 친지들과도 교류하지 않고 외롭게 살고있는 전 여인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성 씨는 ‘사주를 봐 주겠다’ ‘살풀이를 해야 한다’는 등의 핑계로 전 여인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전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93년 중순께부터 내연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 씨를 전 여인의 딸은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생활능력도 없이 자신에게 빌붙으려 하는 성 씨를 전 여인 역시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모녀와 미묘한 갈등을 빚어오던 성 씨는 결국 무서운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성 씨는 범행 몇 달 전 종로의 의료기 상회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8월 13일 새벽 5시경 여관에서 500여m 떨어진 전 씨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혼자 잠들어 있는 주영 양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사체를 욕실로 옮긴 뒤 수십 차례에 걸쳐 토막을 냈다. 성 씨는 사체 토막을 검정 비닐봉지로 싼 뒤 종이상자에 나눠 담고 이복동생을 불러 “고사를 지내고 돼지머리를 버리려 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복동생의 승합차를 이용해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 휴게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주영 양을 살해한 성 씨는 미리 구입해둔 타자기를 이용해 마치 주영 양이 쓴 것처럼 어머니 전 여인에게 편지를 작성했다. 이에 주영 양의 죽음은 교묘히 가출로 위장됐다. 그러나 성 씨의 범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약 일주일 후인 21일 오전 8시경 여관에서 잠자고 있던 전 여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같은 방법으로 사체를 토막냈다. 그리고 사체를 검은 봉지로 싸서 라면상자 3개에 나눠담은 성 씨는 포클레인을 동원해 강원도 원주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수사팀이 경악한 것은 내연녀와 그 딸을 살해했다는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 씨의 범행이 차마 사람이 한 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잔혹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안 반장의 얘기.
“암매장되어 있던 모녀의 사체를 발굴하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력반 생활을 하면서 온갖 험한 장면을 봐왔지만 그처럼 끔찍한 것은 처음이었다. 모녀의 사체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하게 훼손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모녀의 사체는 무려 36~38토막으로 절단되어 있었다. 성 씨는 살점들을 정화조에 버리기도 했는데 당시 얼마나 물을 많이 내렸던지 그 다음날 그 집 물 공급이 중단됐을 정도였다. 사체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잘라져 있었던 것은 물론 손끝 지문까지 모조리 제거돼 있었다. 신체 곳곳을 도려낸 것도 모자라 얼굴 피부까지 몽땅 벗겨놓았다고 하면 상상이 되겠나.”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성 씨는 법정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