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문로1가 대한변호사회관 앞에 서 있는 ‘법의 여신상’.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10월21일)로 조성된 여권과 사법부간 긴장관계가 ‘법조삼륜’(法曺三輪:판사·검사·변호사)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조의 양축인 법원-검찰이 여권 핵심인사에 잇달아 중형을 선고-구형하는 등 ‘반여’ 성향을 노골화하고 있는 데다 재야 법조계에서도 현 여권에 비판적인 변호사 그룹을 결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권과 법조계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상 첫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란 점이 무색할 만큼 정권 출범 초부터 갈등을 빚어 왔다. 우선 검찰과는 노 대통령이 취임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2003년 3월9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현 검찰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고 밝히는 바람에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이 즉각 사표를 내는 파동이 일어난 바 있다.
대선자금 수사를 놓고서도 알력을 노정했던 여권과 검찰은 지난 6월 중순엔 송광수 검찰총장이 대검 중수부 폐지를 놓고 “(폐지하려면) 내 목을 먼저 쳐라”고 ‘항명’성 발언을 내뱉자 노 대통령이 이를 “국가기강이 문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만한 행위”고 비판해 파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법원과의 관계도 정권 출범 초부터 불편하긴 마찬가지. 2003년 8월 중순 당시 퇴임 예정인 서성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제청 문제를 놓고 최종영 대법원장이 기존 관행대로 연공서열식으로 후보를 인선하자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강력반발하며 대법관 제청자문위원직을 사퇴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강 장관의 사퇴는 당장 ‘대법관 후보 재고’를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져 4차 사법 파동으로 이어질 뻔하기도 했다. 최 원장 등 사법 수뇌부로선 당시 현 정권의 대표적인 ‘코드형 장관’인 강 장관의 행동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특히 판사들의 집단반발을 주동한 핵심부가 강 장관이 판사 시절 만든 ‘우리법연구회’ 멤버였던 점까지 맞물려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재야 법조계 역시 현 정권 출범 이후 노 대통령이 속해 있던 개혁성향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요직에 대거 기용되는 등 독주 양상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색이 짙은 그룹에서 불만이 누적되어 왔던 터다.
강 전 법무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등 전현직 당·정·청 요직 곳곳에 포진한 민변 출신 인사들의 약진은 이전까지 주류를 형성했던 보수 성향이 강한 변호사 집단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는 분석이다.
여권내에선 최근 법조계와의 첨예한 대립이 누적된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권 출범 이후 여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법조계가 헌재의 위헌 결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바닥권을 기는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도 등을 계기삼아 본격적인 ‘반여 공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법조삼륜이 보여준 행태는 여권이 이 같은 우려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여권내에선 무엇보다 여권 핵심인사들에 대한 법원-검찰이 예상 밖의 중형을 선고-구형하는 등 야당과 비교해 ‘역 차별’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열린우리당은 이부영 의장과 신계륜 의원, 김정길 전 상임중앙위원 등 핵심인사 3인에 중형이 내려진 11월5일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의 얼굴인 이 의장과 노 대통령의 대선 후보 및 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 의원, 90년 3당 합당 이래 노 대통령과 정치적 진로를 함께 해 온 김 전 위원이었기에 데미지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우선 4·15 총선에서 상대방 후보(한나라당 김충환 의원)를 비방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장은 서울동부지검으로부터 벌금 5백만원을 구형받았다. 현행 선거법상 법원에서 1백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게 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만큼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해 재기를 노리던 이 의장으로선 자칫 기회마저 봉쇄될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여권내에선 이 의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이 상대방인 김 의원의 경우 선관위로부터 몇 건의 허위사실 유포로 경고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한 터에 이 의장에게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 (왼쪽부터)이부영 당의장, 신계륜 의원, 김정길 전 중앙위원 | ||
김 전 위원도 서울중앙지법으로 부터 2002년 12월 부산지역 기업인들로 부터 불법 정치자금 2억원을 받아 최도술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에 건넨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 요직 하마평이 나돌던 김 전 위원은 이번 판결로 상당기간 운신이 제약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 외에도 법원-검찰의 칼날에 우려하는 인사들은 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열린우리당내 개혁당그룹 리더이자 노 대통령의 ‘복심’인 유시민 의원. 유 의원은 총선 당시 홍보물에 84년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사건’과 관련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명예회복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는 혐의로 10월8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부터 불구속 기소됐다. 여권에선 이상락 의원(경기 성남 중원)이 허위 학력 기재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인 만큼 비슷한 상황이 유 의원에게도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유 의원 외에도 친노 386그룹의 핵인 서갑원 백원우 의원과 과거사규명법을 주도한 문병호 의원 등이 1심 재판이 진행중인 데다 386 학생운동권 출신인 복기왕 이철우 한병도 의원, ‘민변’ 출신의 이원영 의원 등은 이미 1심에서 당선무효(벌금 1백만원 이상)을 선고받아 ‘사법 수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여권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13일 ‘현대 비자금’1백50억원을 수수 혐의로 징역 12년, 추징금 1백48억5천만원을 선고받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원심을 깨고 사실상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한 것도 경우는 다르지만 여권을 곤혹스럽게 만든 사례다.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여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했건만 이번 판결로 당시 결정에 대한 비판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특검 수용이 민주당 분당사태의 실질적인 시발점이었다는 점에 여권의 당혹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열린우리당 한 중진은 “박 전 실장이 뒤늦게나마 혐의를 벗어 명예회복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특검 수용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대법원 판결로 가뜩이나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이 더욱 악화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법원-검찰이 법 적용이란 본연의 카드로 여권을 코너에 몰고 있다면 재야 법조계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성격을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 주도하에 11월10일 발족한 ‘헌법포럼’이다. 포럼은 멤버를 변호사들로 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 변호사외에 배금자 하창우 변호사와 준(準) 법조인이라 할 수 있는 법학 교수, 각계 저명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데다 연말까지 1백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할 예정이어서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노무현 대통령 | ||
여권의 고민은 이처럼 법조계 전체가 반대세력화하고 있음에도 별반 제어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법원-검찰 수뇌부의 임기 만료시 인사권을 통해 반여 정서를 희석화하거나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정도 일 뿐이고 “헌재의 위헌결정은 사법 쿠데타”(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는 등의 ‘일회성 한풀이’가 고작이다.
헌재를 겨냥해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 일색인 재판관 구성에 비법조인을 의무적으로 배정하거나 국회 추천 몫 3명만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도록 한 규정을 재판관 9명 전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효과에 대해선 여권 내에서도 의문부호가 그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여당 인사들에 대한 쥐 잡기식 수사와 재판이 마치 검찰과 사법부 독립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앞으로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여부를 결정할 시점이 오면 여권을 향한 법조계가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한편에선 ‘자성론’도 대두되고 있다. 법조 출신 열린우리당 한 재선 의원은 “최근의 상황은 여권이 그동안 민변 등 일부를 제외하곤 법조계를 ‘기득권 세력’ ‘수구 꼴통’ 등으로 몰아붙인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개혁 조급증’ 때문에 제대로 된 전략없이 법원-검찰 개혁을 추진하다 결과적으로 ‘법심’이 등 돌리게 결과만 낳았다.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대한 대응 역시 논리와 이성적 접근을 앞세우기 보다 적대적 감정 표출로 일관해 법조계의 반감만 키운 셈이 됐다”고 밝혔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