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았다” vs “적법한 절차” 집안싸움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유가증권 상장기념식. 왼쪽부터 홍성국 KDB대우증권 대표이사,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윤주화 제일모직 대표이사, 김봉영 제일모직 대표이사,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진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 연합뉴스
지난 2월 10일 에스원 직원 252명은 제일모직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삼성에버랜드가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꾸고 상장했는데, 그 직전 이들이 속한 건물관리 부문이 에스원에 양도돼 기업공개에 따른 우리사주 배정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이다.
13일에는 삼성웰스토리 직원 668명이 제일모직을 상대로 97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이들 역시 2013년 말 삼성에버랜드에서 웰스토리가 물적분할 돼 이직하는 과정에서 회사 측이 상장계획에 대해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해 우리사주를 배정받을 기회를 잃게 됐고, 이직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도 회유와 강압이 있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들과 반대로 패션부문 직원들은 회사를 옮긴 지 채 1년도 안 돼 우리사주를 배정받아 억대의 평가차익을 거두고 있다. 부장급 직원이 2000주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소속을 옮겨 우리사주를 받지 못한 직원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현행법에서는 어쩔 수 없다”면서 “모든 과정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일단 이번 소송의 핵심은 회사를 떠난 직원들에게도 우리사주를 배정해야 하느냐다. 근로복지기본법 제32조 우리사주제도의 목적을 ‘근로자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과 노사협력 증진을 도모함’이라고 정하고 있다. 또 이 법 제34조 우리사주조합원의 자격을 정하는데 ‘근로기간 및 근로관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종합하면 우리사주제도는 근로자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근로기간과 근로관계의 특수성 등이 자격 여부의 주요한 기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상당기간 현재의 회사 가치를 만드는 데 기여한 전직 직원들도 우리사주를 배정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과연 에스원으로 넘어간 사업부문이 제일모직 현재 기업가치에 얼마나 기여 했느냐다. 제일모직의 공모가를 정할 때 건물관리부문에 대한 가치 평가는 없었다. 과거에 기여한 정도도 크지 않다. 건물관리 부문은 2013년 3366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당시 회사 전체 매출의 9.5%다. 반면 패션부분은 기업공개 당시 기준이 된 2014년 3분기 말 재무제표상 매출비중 36%, 영업이익 비중은 29%를 차지했다. 공모 과정에서도 패션 부문은 중요한 평가대상이 됐다.
상장업무를 담당하는 증권사의 한 직원은 “제일모직 공모가에서 중요했던 부분은 없어진 건물관리 부문이 아니라 새로 편입된 패션 부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모가 결정에 참여했던 한 기관투자자 측은 “기업공개 전에도 제일모직은 장외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이는 특정 사업부문 때문이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라는 이유가 컸다”며 “건물관리 부문이 지배구조로 인한 프리미엄에 기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건물관리 부문 직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여지가 크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웰스토리 직원들은 입장이 좀 다르다. 웰스토리는 제일모직이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다. 형식은 별도법인이지만, 내용상은 한 회사나 다름없다. 지난해 공모가를 정할 때도 웰스토리가 영위하는 급식·식자재 사업은 상당한 비중으로 평가됐다. 공모가의 기준이 된 2014년 3분기 말 재무제표를 봐도 급식·식자재 매출비중은 31.94%에 달한다. 2012년과 2013년에도 회사 매출 내 비중이 40%를 넘었다. 회사 영업이익에서 비중도 2012년 66%, 2013년 50%, 2014년(3분기 말까지) 64%나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에서 기업가치에서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삼성그룹 서초동 빌딩. 일요신문DB
회사 측은 “물적분할의 경우 근로자들로부터의 전적 동의가 법률상 반드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전적 동의서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회유와 압박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웰스토리 직원들의 소장 내용을 반박했다. 아울러 “웰스토리 직원의 경우 제일모직 우리사주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기존 우리사주 조합원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 동의를 받지 못해 배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로복지기본법 제33조를 보면 우리사주조합원 자격에는 50%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나, 연매출이 50% 이상을 거래하는 회사를 포함한다. 따라서 웰스토리도 우리사주 조합원이 될 자격요건은 있다. 다만 삼성 측의 설명대로 조합원이 되려면 제일모직 우리사주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제일모직 우리사주조합원 입장에서는 웰스토리 직원들에 우리사주를 배정하는 데 찬성할 리가 없다는 데 있다. 배정받을 직원 수가 많아질수록 받을 수 있는 주식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데 이를 찬성할 리 없다. 회사 측도 “(대상) 직원이 많으면 개인 몫이 줄어드는 것일 뿐 회사 이익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사주 분배를 이유로 직원들을 내보낼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억지로 우리사주를 직원들에게 떠안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계열사와 파이를 나눌 필요가 없다”면서 “이번 소송으로 계열사와 거래회사에 우리사주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조건이 현실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번 소송에서 쟁점이 될 또 다른 분야는 제일모직의 상장이 결정된 시점이다. 에스원으로 옮겨간 직원들과 웰스토리 직원들은 2013년 11월 사업재편 당시 이미 상장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 측은 당시에는 상장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사업재편 당시 상장계획이 있었다면 상장차익 기회에서 의도적으로 직원들을 배제한 회사에 책임이 있을 수 있다. 관건은 회사 측이 2013년 11월 당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상당하고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느냐의 여부다.
2013년 8월 회사채를 발행할 당시 제일모직 투자설명서에는 “안정된 사업기반을 바탕으로 영업현금흐름 및 재무안정성 등이 우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내부조달자금에 의한 차입금 상환능력 역시 우수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기업공개 이유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인데, 이 때만해도 돈을 밖에서 끌어올 필요가 크지 않았던 셈이다.
한편 이번 소송으로 삼성 직원들 간 내부갈등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다른 계열사 간 성과와 보상에 대한 격차가 커지면서 이미 삼성 내부에 전자와 후자가 있다는 말은 보편화됐다”면서 “최근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4개사가 한화로 전격 빅딜되면서 직원들 사이에 ‘우리도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는데, 이번 소송까지 겹치면서 내부의 결속력이 더욱 약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