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뒤집힌 백년손님 인륜 천륜도 피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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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선지 남자는 몹시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연신 해당 주택의 2층을 증오에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불 꺼진 창을 바라보는 남자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남자는 때때로 골목길 담벼락을 주먹으로 마구 쳐대기도 했다.
한동안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대던 남자는 결심이나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집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지난 92년 세간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공릉동 처가 살인사건’이다.
''쿵쿵쿵.''
모두가 잠든 시각에 거칠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깜깜하던 집안에 불이 켜지고 한참 잠에 빠져있던 집주인 노부부가 거실로 나왔다.
“이 시간에 대체 누구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문을 연 노부부는 밖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당장 썩 나가게. 자네가 여길 무슨 낯짝으로 왔는가.”
“장모님, 집사람을 데려가야겠습니다.”
남자는 바로 이 집안의 맏사위 윤태수 씨(가명·49)였다. 하지만 윤 씨를 바라보는 장인과 장모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윤 씨는 집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자 윤 씨의 장모가 윤 씨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는가. 못 데려가네. 자네가 그러고도 사람인가.”
윤 씨는 장모의 서슬퍼런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소리를 지르며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인까지 합세해서 윤 씨를 막아섰지만 노부부의 힘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나오지 못해? 오늘 너 죽고 나죽자.”
윤 씨는 부인 임순옥 씨(가명·50)를 찾으러 처가에 쳐들어간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부인을 찾으러 온 윤태수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노부부가 보기에 이러다 뭔 일 나겠다 싶었다. 노부부는 ‘너 같은 놈에게 다시 딸을 보낼 수 없다’며 무조건 윤 씨를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윤 씨는 막무가내였다. 윤 씨는 죽을 힘을 다해 딸에게의 접근을 막는 노부부를 밀쳐 마룻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 놈의 집안 식구들, 오늘 싹 다 죽여버리겠어!’”
윤 씨는 집안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집안은 졸지에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윤 씨가 난동을 부리는 소리를 듣다 못한 윤 씨의 부인 임 씨가 방에서 나왔다. 임 씨를 본 윤 씨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오라~ 여기 숨어 계셨군.”
“여보, 이렇게는 못 살아요. 이제 제발 그만 좀 해요.”
임 씨는 윤 씨를 붙들고 사정했다. 하지만 윤 씨는 임 씨를 거칠게 끌고 나갔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듯한 살벌한 분위기였다.
보다 못한 윤 씨의 장인 장모가 나섰다.
“자네, 이제 그만 좀 하게.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인두겁을 쓰고 그렇게는 못 할 걸세.”
“인연이 아닌 사람은 놔줘야 하는 법이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나. 그만 정리하게.”
하지만 윤 씨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집을 나간 부인을 데리고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윤 씨로서는 부인과의 이혼을 종용하는 장인 장모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노인네들이 보자보자하니까. 당신들 딸 때문에 내 인생 망친 건 안 보여? 이 망할 여편네 집구석이랑 아주 오늘 끝장을 볼 테니 비키라구!”
윤 씨는 급기야 점퍼 안주머니에 숨겨 온 흉기를 꺼냈다. 보기에도 섬뜩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날이 서 있는 흉기를 보고 경악한 건 다름 아닌 윤 씨의 장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씨는 약 4년 전인 1988년에도 부부싸움을 말리던 장모에게 똑같은 흉기로 중상을 입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윤 씨는 살인미수죄를 적용받아 4년간 복역한 바 있었다. 사건 당일은 윤 씨가 출소한 지 불과 6개월 남짓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흉기를 꺼내니 장모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 아니었겠나. 장모는 ‘자네 그것 땜에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아직 정신 못 차렸는가. 그래, 어디 한 번 더 해보게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윤 씨를 더 자극하고 말았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윤 씨는 자신이 장모 살인미수로 복역한 사실에 대해 뼈에 사무칠 만큼 분해하고 있었다.”
윤 씨의 눈이 뒤집힌 것은 한순간이었다. 윤 씨는 딸을 두둔하는 장인과 장모를 상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노부부가 연달아 피투성이가 돼 쓰러졌다. 하지만 윤 씨의 범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윤 씨가 향한 곳은 부인이 피신해 있는 건넌방이었다.
“그래! 오늘 여기서 다 끝내버리자!”
윤 씨는 공포에 떨고 있는 부인과 딸(17)을 상대로 또다시 흉기를 휘둘렀다. 불과 30여 분 만에 집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때 우연히 잠에서 깨어난 윤 씨의 아들(15)이 어머니와 누나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느낀 윤 씨의 아들은 빈틈을 타서 쏜살같이 현장을 빠져나와 무작정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외삼촌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관할인 노원경찰서 형사들이 긴급출동했다. 집안은 집기들이 나뒹구는 등 엉망이었고 바닥과 벽에 낭자한 혈흔들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했다. 일가족 4명은 두 개의 방에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었는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끔찍했다. 수사팀이 도착했을 때 장모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 나머지 3명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간신히 숨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병원으로 후송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수사팀은 충격에 휩싸였다. 가장 시급한 것은 피의자 윤 씨의 행방이었다. 그러나 윤 씨는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고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보이지 않았다.
수사팀은 이성을 잃어버린 윤 씨가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거실 바닥에서 윤 씨가 남기고 간 살벌한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범행 후 다급하게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는 부인과 처가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는 나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나는 이 여자로 인해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나는 처를 잘못 만났다. 아이들도 아내에게 세뇌를 당해 나를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귀신이 돼서라도 처가를 몰살시키겠다. 딸의 시체는 누나에게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유서까지 남긴 것을 보면 윤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이 사건을 보고받은 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윤 씨가 고향으로 갔을거라고 추측했다. 특히 윤 씨가 장남이라는 점에 주목, 그가 자살 직전 선친의 묘소를 찾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행히 내 조언은 받아들여졌고 윤 씨의 고향인 충남 OO군으로 수사팀이 급파됐다. 그리고 사건 발생 8시간 만인 오전 10시 30분경 부모의 묘소 앞에서 윤 씨를 검거했다. 발견 당시 윤 씨는 다량의 농약을 마시고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윤 씨는 중태였다. 수사팀은 인근 병원으로 윤 씨를 긴급후송했고 다행히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자 윤 씨는 서울 경찰병원으로 후송돼 계속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사건발생 한 달 만인 11월 10일 1시간 30분에 걸친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윤 씨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담담히 범행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죽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윤 씨는 가족들을 상대로 왜 이처럼 엄청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조사결과 윤 씨와 부인 임 씨는 재혼으로 만난 사이였다. 이들은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살면서도 좀처럼 불화가 그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윤 씨의 경제적인 무능과 폭력 때문이었다. 생활력이 없었던 윤 씨는 결혼 후 줄곧 처가에 얹혀 살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한 직업도 없이 부인이 공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걸핏하면 부인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또 전과가 수십 차례에 달했던 윤 씨는 수시로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이런 일이 반복되니 부인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소리가 자주 나왔던 것 같다. 딸이 고생하는 것을 뻔히 지켜보고 있는 처가에서도 윤 씨를 달가워할리 없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죄없는 어머니를 못살게 굴고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공포와 미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급기야 윤 씨는 88년에 부부싸움 도중 부인을 두둔하는 장모를 상대로 흉기를 휘둘렀다가 구속되고 만다. 이 일로 부인 임 씨는 윤 씨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별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부부의 정이 뭔지 4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윤 씨는 출소 후 부인 임 씨와 극적으로 재결합해 은평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그러나 윤 씨는 예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결국 참다 못한 부인 임 씨는 이혼을 강력히 요구했고 윤 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별거에 들어갔다. 처가에서 쫓겨나다시피한 윤 씨는 은평구에 자취방을 얻어 살면서 처가를 찾아가 부인에게 수차례 재결합을 요구했다. 하지만 윤 씨에게 질릴 대로 질려버린 부인과 처가식구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윤 씨는 앙심을 품고 장인 장모와 부인, 심지어 자녀를 상대로 무서운 범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윤 씨는 경찰조사를 마친 후 “무서운 범죄를 저질러 사회에 폐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으나 처가 식구와 부인에 대한 원망은 끝내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존속살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윤 씨는 94년 가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