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와 도피여행 부인도 깜빡 속았다
사건은 3년 전 2006년 3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통영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오던 서 씨는 영업부진 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이에 고심을 거듭하던 서 씨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자신이 92년부터 10년 동안 6개의 보험사에 가입해 월 49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보험사기극을 꾸민 것.
서 씨는 결혼 전 2개월 정도 보험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항공기나 선박 등과 같은 특별실종의 경우 실종된 지 1년이 지나고 6개월 이상의 법원 공시를 거친 후 법원의 실종선고를 받으면 실종은 사망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이에 서 씨는 그날 오전 자신의 집에서 아내 손 씨에게 “오늘 내가 바다에 낚시를 나가서 실종된 것처럼 할 테니까 나중에 신고를 해라”며 “내가 알아보니깐 1년 6개월만 숨어 지내면 보험금 8억~9억 원을 받을 수 있겠더라.
그 돈으로 애들도 남들보다 잘 키우면서 살아보자”는 말로 설득한 뒤 집을 나섰다.집에서 나온 서 씨는 곧장 경남 통영시 산양읍에 위치한 레저사업장으로 가서 0.5톤 모터보트를 빌려 바다로 낚시를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도주로를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낚시가게를 운영하는 지인 오 아무개 씨에게 근처 갯바위에 배를 준비해 두라고 지시했다. 서 씨는 오 씨에게 자신을 도와주는 대가로 채무 500만 원을 변제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날 오후 3시경 서 씨는 통영시 한산면 소재 비진도 해상에 대여한 모터보트를 내버려둔 채 대기하고 있던 오 씨의 낚시배를 타고 다른 선착장에 도착해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도주했다. 결국 오 씨도 방조죄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한편 손 씨는 남편의 지시대로 그날 저녁 친언니에게 “낚시하러 간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함께 바닷가로 나가 통영해양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에 해경에서는 경비정 등 18척을 동원해 3일 동안 수색했지만 버려진 모터보트만 발견하고 서 씨를 찾아내지 못했다. 해경에서는 실종으로 결론을 내렸고 이에 손 씨는 2007년 4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 실종선고심판청구서를 제출해 같은 해 12월에 실종선고를 받았다. 법원의 판결문까지 받자 손 씨는 6개의 보험사에 사망 보험금을 신청해 총 11억 1000만 원을 교부받았다.
특히 손 씨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친척 등 지인들에게 남편의 실종 소식을 태연히 알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제사도 두 차례 지내는 등 범행을 철저하게 은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 씨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지인들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조의금까지 줬다”며 허탈해 했다.경찰 조사에 따르면 죽음까지 위장한 3년 동안의 보험사기 결과는 초라했다고 한다.
우선 손 씨는 서 씨의 도피자금 명목으로 1억 원 정도를 서울 등에서 만나 전해 줬다. 서 씨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중전화로만 연락을 하며 현금으로 처음에는 3000만 원, 그 다음에는 2000만 원 등 몇 차례에 나눠서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 돈은 대부분 경마, 노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10억 원 중 4억 원은 채무 변제 및 주식, 펀드 투자 등에 사용했다. 서 씨는 손 씨에게 자신의 친형에게만은 사실을 털어놓고 건설업을 해보라고 종용했다.
이에 따라 형은 6억 원 정도를 자본금으로 해 건설회사를 차려 운영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최근 들어 자금난에 빠져 진행 중이던 공사마저 중단된 상태다. 결국 이들 부부는 다시 무일푼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광역수사대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죽음을 가장한 보험사기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부터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막상 조사에 착수하자 의심스런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그날의 날씨가 사람이 실종될 정도로 악천후가 아니었던 것. 바람만 좀 불었지 폭풍우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파도에 휩쓸렸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그리고 당시 발견된 보트는 닻이 내려져 있었고 코펠이나 낚시 도구 등은 멀쩡하게 그대로 놓여있는 상태에서 사람만 사라진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의심은 깊어졌다. 경찰은 손 씨를 찾아갔고 이것저것을 캐물으면서 보험사기에 대한 확신이 굳어졌다고 한다.
장례식과 제사까지 지낸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물어보는 경찰에게 손 씨는 강하게 반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풍긴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은 서 씨에게 내연녀 A 씨가 있음을 밝혀낸다. A 씨의 존재는 부인 손 씨도 최근에야 알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서 씨는 부인에게 숨기고 카페 여종업원이었던 A 씨와 함께 도피행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 씨는 서 씨가 보험사기를 저질러 이미 죽은 사람으로 돼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과 ‘사랑의 도피’를 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서 씨는 부인과 내연녀마저 철저하게 속이며 이중플레이를 했던 것이다. 서 씨의 도주 생활도 치밀했다. 부산으로 도주한 그는 내연녀와 함께 대구 대전 서울 등 전국 각지를 전전하며 무위도식했다고 한다.
그동안 부인과 가끔 연락을 해 돈을 전달받은 것 말고는 다른 가족들과도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한참 아빠의 사랑이 필요한 초등학생 두 딸에게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밝히지 않아 충격을 줬다.서 씨를 체포하는 데에는 A 씨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 서 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은 우선 A 씨의 행적부터 추적했고, 그 결과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복에 들어간 경찰은 마침내 내연녀와 함께 집에서 나오던 서 씨를 확인하고 검거할 수 있었다.
사건을 해결한 경찰은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가족들마저 버릴 수 있으며, 산 사람을 제사까지 지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서 씨를 검거하고 난 후 허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완전 범죄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험사기는 근절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창원=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