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에도…“처지 비관·심리 불안”
200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간첩 원정화 씨가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수원지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원정화 씨는 2013년 7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5년 복역 후 만기 출소했다. 이후 그는 친딸인 중학생 A 양과 함께 지내왔다. 그런 원 씨가 지난 1월 27일, 자신의 딸을 학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사건을 담당한 경기도 군포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원 씨는 사건 당일 오후 11시경, 자신의 딸 A 양에게 물건을 던지고 “같이 죽자”며 주거지에서 난동을 부렸다. 위협을 느낀 A 양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원 씨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원 씨는 사건 발생 3일 전,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서 타인과 다툼이 발생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었다. 그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만과 본인의 처지를 비관해 가장 가까이 있었던 딸에게 화풀이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원 씨가 딸에 대해 위협과 협박만 했을 뿐, 실제 물리적 가격을 한 것은 아니다”며 “딸을 보호조치한 것은 혹시 모를 재범 및 보복 가능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결국 원정화 씨를 아동학대혐의로 입건했으며 피해자 A 양에 대해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보호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A 양은 사건 발생 다음날 지역 임시보호시설에 입소했고, 충격에 대한 심리치료를 받아왔다. 현재 A 양은 본인의 뜻에 따라 다시 원 씨 주거지로 귀가 조치됐으며, 아동학대방지 전문기관인 굿네이버스에 의해 사후 관리를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은 2월 25일, 검찰에 송치됐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일요신문>이 A 양의 임시보호시설 입소 기록을 조회한 결과, 이미 지난해 7월 비슷한 이유로 A 양이 한 차례 시설에 입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원 씨는 조사만 받은 뒤 훈방조치가 됐다고 한다. A 양도 입소 당일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전례가 있었음에도 다시금 A 양을 원 씨의 곁으로 돌려보낸 이유에 대해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 사건 특성상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의사”라며 “물리적 가해는 없었고, 또 가해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A 양의 뜻에 따랐다”고 덧붙였다.
원정화 씨의 출소 이후 삶은 평탄치 못했던 듯하다. 원 씨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다른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 원 씨의 그간 생활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줬다.
“원정화 씨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5년 동안 A 양과 떨어져 살다가 출소 후 다시 동거하게 된 것도 원인이다. 서로에 대한 적응은 물론 사회적응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원했던 원 씨에겐 본인을 타인과 다르게 바라보는 이 사회 자체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A 양 역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러한 사회 부적응, 심리불안 상황 속에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가해자인 원 씨에게도 사회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설명처럼 원 씨는 출소 후 사회 적응을 하는 동안 심각한 부침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체포 당시, 이미 자신의 간첩 혐의에 대해 인정하고 전향서를 제출했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여기에 홀로 딸을 키우는 가장으로서 생활고도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안한 원 씨의 삶 자체가 자신의 딸에 그대로 투영된 셈이다. 한 탈북 청소년 전문 상담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원정화 씨 이외에도 많은 탈북자 가정에서 부모 자녀 간 갈등과 범죄가 발생한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험난한 탈북 과정에서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남한 사회에 들어와서도 당시 입은 트라우마 탓에 심리적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가까운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특히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한편, 본인의 자녀들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며 압박하기도 한다. 간첩 전과자인 원 씨의 경우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범죄도 마찬가지겠지만, 탈북자 가정의 경우 부모 자녀 간 복합적인 상담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