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 등치고 상주 두 번 울린다
갑작스런 팽창의 부작용일까. 최근에 생겨난 상조회사들 가운데에는 상당수가 다단계 영업방식으로 변칙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업체들은 영업사원이 영업사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속도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불법적인 요소가 적지 않아 자칫하면 영업사원들은 물론 상주들까지 두 번 울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A 사는 2005년 11월 대전지역에서 설립된 상조회사다.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전국 각지로 사세를 확장해 지사만 약 100개, 직원은 1000여 명에 이른다. 회사 측에서 지난해 모 유력일간지의 유망브랜드로 선정됐다는 광고를 하면서 회원수도 수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 회사가 무엇보다 공을 들이는 것은 영업사원 모집. 영업사원을 1년 내내 상시 채용하고 있다. 물론 꾸준히 회원을 유치해야 하는 상조회사에서 영업사원을 모집하는 것을 문제삼을 순 없다. 그러나 이 회사가 영업사원을 모집하는 방식을 보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우선 영업사원을 모집할 때 “1년 만에 당신도 수십억 원을 벌 수 있다” “정년퇴직한 노인도, 20대도 최단 기간 지점장까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문안 자체도 허위·과장 광고 성격이 짙지만 무엇보다 영업사원이 되기 위해선 회사에 일정금액의 돈을 납부해야 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돈을 입금했다고 곧바로 사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식사원이 될 자격만 주어진다.
이 회사 사업설명서엔 특약점의 영업사원으로 등록하려면 회사에 200만 원을 납입하도록 돼있다. 영업소는 500만 원, 지사는 1000만 원이다.
그렇다면 이들 영업사원 등록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물론 이들의 주임무는 겉으로는 ‘회원모집’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또 다른 영업사원 등록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등록자 한 명을 끌어오면 납부금 절반은 자기 몫이 되기 때문. 가령 지사 등록자 10명을 끌어오면 5000만 원을 일시불로 지급받고 나머지 5000만 원은 회사로 들어가는 식이다. 사원 등록도 마찬가지다. 10명을 등록시키면 1000만 원을 입금받는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사원, 특약점, 지사 등에 상관없이 50명의 등록자를 끌어오면 그제서야 정식사원이 된다. 100구좌를 달성하면 특약점 영업을 할 수 있는 정식사원이 되고, 150구좌를 달성하면 영업소, 그 이상을 가입시키면 본부장 승급대상자에 들어간다.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의 회사인 것이다.
이곳에 영업사원으로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다단계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발을 빼려고 해도 계약서에 발목을 잡힌다.
이 업체에 영업소 등록을 한 H 씨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회사 측의 말에 속아 500만 원을 주고 계약을 맺었다가 낭패를 봤다. 사무실 계약, 집기 구입 등 사업준비 일체를 자신이 부담해야 했던 것.
이에 H 씨는 중간에서 포기하려 했지만 “영업소 계약을 해지할 경우 가맹비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렇게 운영하는 상조회사가 어떻게 회원을 모집하고 정상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한 뒤 자신도 “결국 사원 등록자들을 모집해 돈을 회수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업사원뿐만 아니다. 가입 회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상조회사의 영업사원들이 옮겨오는 경우도 많은데,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이전회사 회원들을 멋대로 함께 옮겨버린다는 것. 회사 측에서는 기본적으로 타 회사에 근무하던 영업사원들이 회원들과 함께 이적할 땐 고객동의서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영업사원들은 고객동의서를 자신이 직접 작성해 회사에 제출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업사원 모집에만 혈안이 된 회사 측에서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상조회사에 가입한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단계 상조회사에 가입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간혹 회원들이 자신이 가입한 상조회사가 왜 바뀌었는지 따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에 대한 답변도 그들에게는 준비돼 있다고 한다. “그 전 회사가 경영 사정이 어려워 나중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옮겼다”거나 “이쪽 회사의 서비스가 훨씬 좋아서 옮겼다”고 오히려 고객들을 위해 조치한 것이라고 둘러대면 대부분의 고객들이 수긍하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
그러나 이런 회사에서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일부이긴 하지만 장례행사를 직접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A 사도 “기본적으로 장례행사는 대행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영업과 행사는 별개다”라고 말해 자신들이 ‘영업 전문’임을 시인했다. 이곳의 영업사원들 역시 “말 그대로 우리들 영업소는 ‘떳다방’과 같은 것이다. 치고 빠지기 위해 변칙영업을 하는 것인데 제대로 된 장례행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식으로 다단계식 영업을 하고 있는 상조회사들이 전국적으로 약 60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다단계 상조회사의 부작용이 우려되면서 최근 사정기관에서도 이들 업체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만간 경찰과 공조 하에 공정위에서 통보해오는 업체들을 조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국의 수사결과, 해당 업체들이 다단계로 판명되면 영업정지가 불가피한데 현행법상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상조업체들의 경우 회원들 납입금을 회사 측에서 전용해도 별다른 제재방안이 없기 때문.
이 때문에 공정위에서는 ‘자본금 3억 원 이상’의 업체에만 등록 자격을 주고 회원들이 내는 납입금의 50% 이상을 금융기관에 예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해 납입금 전용 방지 제도를 법안으로 상정했었다. 하지만 여야의 대치로 법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상조업 가입자들이 대부분 서민들인 만큼 관련법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