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0조 위조채권 미끼 변호사도 당했다
영화에서 벌어질 것 같은 이런 일들이 실제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속을 것 같지 않은 이런 황당 제안에 넘어가 무려 17억 원을 뜯긴 피해자들이 발생한 사기극이 일어났다.
경찰청 외사수사과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에서 3400조 원 상당의 위조 유로채권, 위조 달러채권 등을 국내로 반입한 후 채권처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17억 원을 가로챈 김 아무개 씨(여·62) 등 사기조직 일당 9명을 지난 11일 검거해 이중 2명을 구속하고 이들이 지니고 있던 위조 채권 등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기업가 등 부유층에 접근해 고액의 위조 외국 채권 및 모조 유로화ㆍ달러화, 가짜 보물지도책 등을 보여주며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김 씨 등은 2007년 8월 자영업자인 조 씨를 만나 “중국 국민당의 비밀 조직인 매화당이 관리해 온 달러·유로화 지폐와 채권을 전문 처분 기관에 맡겨 현금화할 계획인데, 처분 경비를 투자하면 15배의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미끼를 던졌다. 이들은 조 씨를 속이기 위해 가짜 100만 유로 및 100만 달러 지폐, 3600억 유로 채권 등을 보여주며 조 씨를 안심시켰다. 조 씨가 거액의 지폐와 채권에 대해서 의구심을 나타내자 이들은 “거액 채권은 국가 대 국가 간 채무변제나 차관 도입 시에 사용되는 것으로 한국에 가져와 국익을 위해 이를 기증하고 한국정부로부터 수고비를 받으려 했던 것”이라고 둘러댔다.
이들은 또한 조 씨 등 ‘투자자’들에게 “매화당이 중국 모처에 금괴 등 보물도 숨겨놓았다”며 지하동굴의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기밀건’(機密件)이라는 제목의 가짜 보물지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은 그래도 투자자들이 믿지 않으면 “내키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 어제도 10명이 투자한다고 연락이 와 자리가 빠듯하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조 씨는 꼬임에 넘어가 이들에게 2억 원을 ‘투자’하고 말았다.
김 씨 일당은 이런 방법으로 조 씨를 포함한 3명에게서 17억 원을 뜯어냈다. 놀랍게도 이런 황당 사기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현직 변호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과 국정원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위조 외국채권들이 국내로 반입되어 사기에 이용되는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중국 인터폴과 공조해 그 유입경로를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