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사기 파헤치다 ‘대형 로비’ 삐죽
▲ 성수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애초 이번 사건은 모 건축시공사 대표의 대출 횡령 혐의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월 말 검찰은 S 건설업체의 내부 직원과 모의해 서류를 위조, 유력 금융권으로부터 수십억 원대 대출을 받아 이를 가로챈 혐의로 L 씨를 검거했다.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은 단순한 위조 서류 대출 사기 사건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L 씨가 자신에게 대출을 알선해 준 브로커 이 씨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브로커 이 씨가 재향군인회 고위급 관계자들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해주고 대출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또 L 씨 역시 수사과정에서 여러 관공서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재향군인회 불법대출 사건을 추적해봤다.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 이 씨는 2007년 5월경 A 건축시공사의 대표 L 씨로부터 재향군인회로부터 대출을 받아 줄 것을 청탁받고 14억 7000만여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의 존재는 앞서 검찰에 검거된 L 씨의 폭로로 드러났다. L 씨는 2007년 5월경 S 건설업체 서류를 위조해 재향군인회로부터 340억 원의 대출을 받아 이를 가로챈 혐의로 지난 7월 30일 구속됐다. 당시 L 씨의 범행을 도운 S건설업체 직원 P 씨(여)도 함께 구속됐다.
L 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브릿지론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이 씨에게 수십억 원에 이르는 돈을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제1금융권 유명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십억 원에 이르는 대출을 이미 L 씨한테 알선해 준 적이 있었다.
L 씨가 대출을 청탁하자 이 씨는 “재향군인회에 평소 잘 아는 지인들이 많다”며 “위조된 서류로 수백억 원대 대출을 받기는 어려우니 로비가 필요하다”고 L 씨에게 20억여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L 씨는 14억 7000여만 원을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단순 위조서류 대출사기사건으로 시작됐던 이번 수사는 이 씨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금융기관으로도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조작된 서류를 근거로 340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대출됐다는 점과 L 씨의 증언으로 볼 때, 이 씨와 재향군인회 쪽 인사들이 밀착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실제로 검찰은 몇몇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금품이 제공됐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브로커 이 씨와 연루된 일부 재향군인회 고위급 인사들을 이미 파악했으며, 이들의 계좌추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측에서는 현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 상황. 재향군인회 측 홍보실의 한 인사는 “대출과 관련해서는 담당부서가 있는데 아직까지 그쪽에서 관련된 얘기가 보고된 것은 없다”며 “여러 부처에 문의를 했지만 확인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한편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시행사 대표 L 씨에 대해서도 각종 로비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7년 L 씨가 추진했던 아파트 공사 허가권과 관련, L 씨가 울산시청 공무원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
또 L 씨는 지난해 말 시행을 맡았던 B 고등학교 이전 공사에서도 울산교육청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향군인회를 금융기관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을 내 주목받고 있다. 현행법상 재향군인회는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브로커에 대한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의 변호인도 “재향군인회는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 씨를 구속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이 씨의 경우 타 금융기관으로부터도 대출을 알선했기 때문에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