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권파’ 김한길 의원(왼쪽), ‘개혁당 그룹’ 윤리특위 김원웅 위원장. | ||
1월 전대에서 ‘정동영 체제’ 출범에 의기투합했던 양 진영이 4·15 총선 이후 당헌-당규 개정 등 내부 사안에서부터 4대 입법 등 정국 운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현안에서 대척점에 서면서 누적된 결과다. 갈등의 양상도 당내에서 일상화된 이념-노선 투쟁의 범위를 벗어나 감정대결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평가다.
개혁당 그룹은 당권파를 향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세력”이라 공박하는 반면 당권파는 “입만 열면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실제론 세 불리기와 당권 장악에만 혈안인 집단”이라며 개혁당 그룹을 맹비난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당대회라는 권력투쟁의 공간을 앞두고 서로 ‘방어’(당권파)-‘쟁취’(개혁당 그룹)로 맞선 양측의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어제의 동맹’이 ‘오늘은 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라면 분명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우선 당권파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을 축으로 그동안 의장-원내대표직을 동시에 또는 번갈아 차지하며 문자 그대로 당 운영을 좌지우지한 세력이다. 그러나 작금의 처지는 차기 전대에선 독자 후보를 내지 못할 만큼 수세 국면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내각에 몸담고 있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4대 입법의 정기국회 처리 향방에 따라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으며 신기남 전 의장은 아직 부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 파문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
당권파가 퇴조 기운을 보이고 있는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유시민 의원과 ‘리틀 노무현’이란 닉네임을 가진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망라된 개혁당 그룹은 ‘성장주’다. 개혁당 그룹은 치열한 당내 투쟁 끝에 기간 당원 확보면에서 약진해 차기 당권까지 넘볼 만큼 세력을 확대했다는 평가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양 그룹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국회 윤리특위의 김한길 의원에 대한 ‘윤리강령 위반’ 의결(12월1일)을 꼽는다. 김 의원은 3선에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과 당 행정수도후속대책특별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핵심 중진.
그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직전 조동만 한솔그룹 전 부회장으로 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9월 한나라당으로부터 윤리특위에 심사요구안이 제출됐다.
김 의원의 대한 윤리특위 의결 결과가 당내 파장을 낳고 있는 것은 전체 위원 15명 중 열린우리당이 위원장을 포함 8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열린우리당 위원들만 ‘마음 먹고’ 반대표를 던졌다면 김 의원에겐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찬성 8명, 반대 7명으로 김 의원에 대해 윤리강령 위반 결정이 내려졌다. 김 의원과 함께 표결에 부쳐진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의 경우는 찬성 9명, 반대 6명으로 역시 위반 판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김태환 의원의 경우 한나라당 소속 위원 6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져 예상했던 결과가 그대로 나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한나라당 위원 전원과 1명인 민주노동당 위원(강기갑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데 더해 열린우리당 의원 1명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전체회의에 대비해 해외에 나가 있는 배기선 위원 대신 김영춘 원내 수석부대표를 표결에 참여시키면서까지 김 의원 ‘보호’에 전력했던 것에 비춰보면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내 분석과 국회 윤리특위 각당 위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내막은 이렇다. 우선 반란의 주인공은 윤리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원웅 의원이란 것이 정설이다. 1차적인 분석은 윤리특위가 91년 국회 내에 설치된 이래 이전까지 98년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에 대해서만 윤리강령 위반 결정을 내려 ‘유명무실’이란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김 위원장이 ‘과감하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실제 11월12일 국회에서 가진 대전지역 여대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맹목적인 ‘동료 의원 감싸기’를 벗어나 시시비비를 정확히 따져 유명무실한 윤리특위라는 오명을 벗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꺼풀 더 벗겨 보면 당권파와 개혁당 그룹간 갈등이 김 위원장이 김 의원을 ‘저격’한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김 위원장은 열린우리당 출범 전 개혁당의 대표를 맡았으며 차기 전대에서 개혁당 그룹의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반면 김 의원은 ‘천-신-정’과 함께 당권파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역시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당권파 대표로 당 의장직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을 받아왔다.
두 사람의 충돌이 당권파와 개혁당 그룹간 갈등의 산물이란 해석엔 한나라당 소속 윤리특위 위원들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위원은 “표결에 임하기 직전까지 한나라당의 목표는 특위의 정당별 인원 분포상 김태환 의원에 대한 윤리강령 위반 결정을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열린우리당 소속인 김한길-이은영 의원 두 명 중 적어도 한 명에 같은 결정이 내려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우리 당 소속 윤리특위 위원들의 이 같은 요구에 ‘걱정 말고 민노당 강 의원이나 확실하게 책임지라’고 얘기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표결 결과를 보니 김 위원장의 얘기는 결국 우리에게 자신이 ‘반란표’를 던질 것임을 예고한 일종의 ‘사인’이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김 위원장에 대한 당권파의 불만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한 일. 당사자인 김 의원은 윤리특위 결정에 대해 일절 언급을 자제하고 있지만 개혁당 그룹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해선 “당을 같이 못할 사람들”(A 의원)이란 성토가 비등하다.
한 초선 의원은 “김 위원장의 이번 행동은 말로는 개혁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해당 행위’를 불사하는 개혁당 그룹 핵심인사들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아무리 계파간에 트러블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시쳇말로 ‘동지가 아니라 적’이란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 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재선 의원은 이른바 ‘당게’(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를 발판으로 막강한 당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개혁당 그룹 기간 당원들의 ‘이중성’을 격렬히 성토했다. 그는 “6월 말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당시에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던 ‘열혈 당원’들이 어째서 이번 윤리특위 표결 결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김 의원이 설혹 불법 정치자금으로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적인 용도로 쓴 것도, 축재를 한 것도 아닌데 왜 ‘버린 자식’ 취급하는가? 이상수-안희정은 노 대통령을 위해 돈을 받았기에 측은해 하고, 김 의원은 민주당을 위해 받은 돈을 썼다고 차별하는가? 만약 김 의원이 당권파가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개혁당 그룹이고, ‘반란’이 밝혀진 김원웅 의원이 자신들과 같은 계파가 아니라면 저러진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당내 다른 계파들 사이에서도 이번 윤리특위 표결 파동에 대해선 개혁당 그룹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짙다. 친노 그룹의 한 초선 의원은 “윤리특위 결정이 국회의원들의 윤리의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정상에서 문제가 될 대목이 적지 않았다”며 “김원웅 의원이 정치개혁에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는 분인 것은 알지만 김한길 의원의 경우엔 여러모로 억울한 면이 있었는데 간과한 채 무리하게 진행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당권파와 개혁당 그룹간 갈등이 ‘치킨 게임’ 처럼 벼랑끝의 양상으로 치닫는데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지도부의 한 인사는 “개혁당 그룹이 천정배 원내대표의 국회 운영에 대해 ‘발목잡기’라 여겨질 만큼 반대로만 일관하는 것은 적전 분열을 노정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4대 입법을 놓고 한나라당과 한판 싸움이 임박한 마당에 양측 다 차기 당권 경쟁에만 매몰된 채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 같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밝혔다.
당내 대표적 실용그룹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소속 한 의원도 “지금의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모든 계파의 공통적인 사항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노선-정책에 대한 토론으로 이뤄져야지 개혁당 그룹처럼 걸핏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윽박지르거나 동료 의원들을 ‘해코지’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명색이 여당인데 일부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과거 ‘양김’시대의 야당 때보다 더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