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선 김무성 믿음준 유승민
지난해 2월 새누리당 제2차 상임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귀엣말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앞서의 의원은 “김영란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처리하자, 말자 이견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김영란법에 발목이 묶일 땐 공무원연금 개혁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컸다. 일단 처리하고 후에 보완, 수습하자는 데 지도부가 뜻을 모았다”고 귀띔했다. 결국 욕먹을 각오를 하고 김영란법을 처리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이 깡그리 욕 듣는 가운데 정가에선 김영란법 처리에 따른 당·정·청 핵심 인사들의 손익계산서를 쓰는데 분주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영광도, 상처도 없다. 그는 시종일관 김영란법 처리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양비론이다. 여론을 생각하면 처리해야 할 법안이지만 등 떠밀려 할 수는 없어 고민이라는 심정을 자주 토로했다. 여권에선 잠룡 1순위로 꼽히지만 판단력, 결단력, 추진력에서 점수를 잃은 모양새다.
전략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막판에 처리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김 대표의 발언은 ‘나를 따르라’는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며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일종의 강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새누리당이 주도해 처리한 국회선진화법은 결국 여러 현안에서 야권과의 협상에 실패하면서 새누리당 스스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물은 바 있다. 김영란법도 비슷한 절차를 거칠 수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임팩트가 없어 당 안팎의 여론을 주도하지 못했다. 누구도 ‘김무성’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다.
“당장 욕은 먹겠지만 오래 갈 사안은 아니다. 3월 청문회, 4월 현안을 얼마나 처리하느냐에 따라 상처는 영광으로 전환된다.”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단에 속한 의원은 “지켜보라”고 자신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가 유승민 원내대표가 임명한 원내부대표라는 점은 감안해야지만, 일견 논리는 있는 멘트여서 소개하자면, 그는 “역대 어느 원내대표도 김영란법을 처리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황우여, 이한구, 최경환, 이완구 모두 지붕 쳐다보는 척했지만 유 원내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해내는 걸 보여줬으니 우리 의원들은 더욱 결집할 것”이라고 했다. 일단락지은 것을 평가해야 한다는 소리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많은 별점을 받는 것은 처리 과정에서 의원들의 마음을 샀다. 신임 원내지도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묵은 숙제를 처리해야 했다. 유 원내대표는 2월 27일 오전 정책의총을, 또 일요일이었던 3월 1일 밤 정책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첫 의총엔 50여 명이 왔지만 일요일 의총엔 114명이 나왔다. 그 중 36명이 찬반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역대 의총은 사실 형식적이었다. 지도부가 오더(Order)를 설명하고 당론으로 채택한 뒤 본회의에서 표결하는 절차였다”며 “그런데 이번에 유 원내대표는 의원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고, 앞으로 당론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투표도 자율에 맡겼다”고 전했다. 민주적인 설득 과정에 표결에 빠지겠다는 의원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누리당은 20대 현안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놓은 상태다. 1번은 연말정산 수습, 2번은 건강보험료 개편, 3번은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3월 국회에서 준비하고, 4월 국회에서 처리하려는 3대 과제. 유 원내대표가 목표를 하나하나 처리한다면 당 내부를 완전히 결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근 디플레이션 위기를 말한 최 부총리를 두고 친박계 의원실의 한 선임 보좌관은 “김영란법 처리할 때 한마디 말도 않더니”라며 혀를 찼다. 이유를 물으니 “김영란법은 경제 관련 법안이다. 식사와 쇼핑을 일거에 막을 수 있는 이 법을 두고 기획재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고, 정치권이든 정부든 어디도 경제관련 단체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았다”며 “그러면서 죽은 경제 살리겠다고 돈을 퍼붓고 있으니 이 어찌 촌극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 부총리에게 그런 혜안(?)이 없었다는 다소 벼락같은 지적이 나온다.
현재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2016년 10월 이후의 풍경이 소설화되고 있다. 국회 주변에 2만 9900원짜리 ‘영란특선’이 등장하고, 연간 300만 원짜리 VIP카드가 제공되는 주점, 3만 원만 내면 주류를 무한 리필해주는 포장마차 등에서부터 명절 100만 원짜리 특급 선물세트, 언론인, 교원, 공무원, 의사 등에 맞춤형 선물 제공 방법 등등, 실제 김영란법은 경제 관련, 민생 관련 법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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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
혁신위에서 활동 중인 의원실의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특권 내려놓기 1차 혁신안과 관련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언론이나 여론이 주목할 수준이 못됐다. 김문수라는 이름을 넣을 만큼 뚜렷한 족적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위원장이 거론되는 것은 당내 여론 수렴 과정 탓이다. 유 원내대표와 비교되면서 독불장군식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론에 등 떠밀려 김영란법을 처리했지만 당내 이견을 해소하려 했던 유 원내대표와, 여론을 등에 업으려 당내 의원들과 각을 세우다시피한 김 위원장의 방식이 대조를 이룬 것이다.
정가에선 ‘문무합작(김무성+김문수)’보다는 ‘K·Y라인(김무성+유승민)’의 성과가 더 크지 않겠느냐는 말들을 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