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 그건 속임수야!”
‘창조경제 설계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 정권과 크게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 연구원장이 2013년 3월 26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가미래연구원(국미연)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그 위상이 남달랐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후보 공식 캠프였던 행복추진위원회(행추위)와 함께 양대 축이라는 평가도 쏟아냈다. 인수위에서 활동한 인사만도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최성재 서울대 교수,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홍기택 산업은행장,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등이 포진했다. “국미연 소속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굳이 수첩을 확인할 필요도 없는 검증된 인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인수위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국미연 인맥의 정점에 있는 이는 단연 김광두 원장이었다. 박 대통령과 서강대학교 동문으로 지난 대선 행추위 힘찬경제추진단장을 맡은 김광두 원장은 현 정부의 핵심 아젠다 ‘창조경제’를 만든 장본인이다. 정권 초반 경제부총리 유력 후보로도 거론됐던 김 원장은 입각 대신 외곽에서 조언자 역할을 맡으면서 정권 초반부터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문제는 강도였다. 정권 초반에는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여겼지만, 여권 일각에서 지난 연말부터 그 강도가 세졌을 뿐만 아니라 거의 뒤통수를 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고 본 것이었다. 그의 최근 발언을 보면 단순한 기우만은 아닌 듯하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금을 더 안 내고 복지 혜택만 더 받을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있다면 경제학은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며 정부의 핵심 기조였던 ‘증세 없는 복지’에도 의문을 표했다. 이에 발맞춰 국미연은 올 들어 ‘복지와 재정의 새 틀을 짜자’는 연속 기획을 마련하면서 지난 2년간 정부의 공약 이행 실적을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관해 새누리당 한 전략통은 “제대로 뒤통수치는 인터뷰”라며 “경제라인을 최경환-안종범 두 사람이 꽉 잡은 상황이 맞다 치더라도 이런 대응은 좀 아니지 않나. 본인이 미는 창조경제 관련 아이디어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까, 우회적으로 비선실세 이야기까지 꺼낸 것이 아니냐. 드러내지 않은 다른 불만이 있는 것 같다”라고 쏘아붙였다.
반면 비박 성향의 다른 여권 관계자는 “대선 공신인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이제 자기 갈 길을 가는데 김 원장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되물으며 “지금 최경환 경제팀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나. 박 대통령은 지금 쓴소리 해 주는 사람을 곁에 둬야한다. 앞으로 국미연 같은 개혁적 보수가 새누리당의 대안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 중 차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도 거론됐던 신세돈 교수는 ‘법인세 인상’ 문제도 건드렸다. 최경환 경제팀이 법인세 인상에 관해 부정적인 것과는 다른 목소리다. 신세돈 교수는 최근 국미연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증세는 필연이다. 그럼에도 증세 없다고 하는 것은 기망에 가깝다”며 “소득세와 법인세의 과세대상 범위를 넓히고, 그래도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면 그때 가서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세 교수의 부인이자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이혜훈 전 의원 역시 최근 비판을 보탰다. 이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통과된 부동산 3법에 관해 “퉁퉁 불은 국수”라는 비유를 사용해 옹호한 것과 달리 “부동산 3법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참모들이 대통령께 정확하게 보고를 드렸으면 좋겠다”며 올 초 연말정산 논란 당시 최경환 부총리의 대응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정부여당이 총선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보다 유연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의 새누리당 전략통은 “차기 총선의 결정권이 친박계가 아닌 비박계로 상당 부분 넘어간 상황에서 ‘박근혜의 청와대’가 아닌 ‘김무성-유승민의 여당’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며 “이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는 최경환-안종범 두 경제 실세의 목소리를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조짐은 아니다”고 전했다.
국미연의 한 연구위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냥 홈페이지에 있는 그대로 보시면 된다”며 “(현 정권과) 다른 기조라기보다 바람직한 방향에 관한 이야기다. 대통령 싱크탱크가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날을 세우고 있다는 기사를 쓰실 거라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쏘아붙였다. 김광두 원장은 최근 튀는 발언에 관해 “잘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의 표시일 뿐,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