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커플 닭살우정에 콩닥콩닥 이건 뭐지
남남커플 ‘브로맨스’가 한국 대중문화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응답하라 1994> 쓰레기-빙그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다. 조용한 식당, ‘빙그레’와 ‘쓰레기’, 두 남자가 앉아 있다.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한참 동안 흐르는 정적, 마침내 빙그레의 입에서 한 마디가 툭 뱉어져 나온다. “선배님이 있어서 참 좋아요. 아니, 형!”
빙그레는 쓰레기를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쓰레기가 누누이 형이라고 부르라고 일러도 언제나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빙그레는 쓰레기의 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마치 여자친구의 방을 구경하듯 좋아했고 때로는 쓰레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수줍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지막 회, 시간이 흘러 나이 든 빙그레의 ‘아내’가 등장한다. 아내는 여자고, 빙그레는 이성애자다. <응답하라 1994>에서 빙그레는 동성애자로 묘사 되지 않았다. 쓰레기와 빙그레의 관계에서 자극적으로 비춰질 만한 에피소드도 없었다. 그의 감정은 선배에 대한 동경일 수도, 존경이나 호감, 혹은 사랑일수도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쓰레기와 빙그레, 둘 사이를 표현할 단어는 있다. 바로 ‘브로맨스’다.
브로맨스는 현재 한국 대중문화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다. 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로, 남성 간의 애틋한 감정 또는 관계를 뜻한다. 이는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드러내기보다는 남성 간의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 또는 우정 등이 중심이 되어, 2010년대 이후 국내 드라마·영화 등에서 인물 간의 관계설정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브로맨스에 대해 “섹슈얼리티가 없다는 점에서 동성애와 구분할 수 있지만 우정보다는 훨씬 더 애틋하고 진하다”고 말했다. 즉 브로맨스는 흔한 이성애자 남성들 관계에서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그 어디쯤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다.
<미생> 한석율-장그래
끈끈한 형재애가 그려진 <신세계>와는 달리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는 김수현과 이현우 관계가 묘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북한 최고 요원 김수현과 그를 동경하던 이현우가 남한에서 재회한 뒤 일상생활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장면,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미소를 나눈다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뛰어내리는 모습 등에서 두 사람의 ‘은밀한’ 감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스크린에서 시작된 상상력을 자극하는 남자들의 로맨스는 점차 안방극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드라마의 경우, 앞서의 <응답하라 1994>에 이어 <미생>에서도 브로맨스를 찾을 수 있다. 장그래-한석율 커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그래만 보면 끌어안고 반기는 한석율과 그를 밀어내면서도 싫은 내색 없는 장그래의 모습, 위기 상황에서 묵묵히 서로를 돕는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장그래-오차장이 나눈 끈끈한 ‘전우애’와는 사뭇 다르다. <미생>의 정윤정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부터 ‘브로맨스’를 염두에 뒀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한도전> 정형돈-권지용
예능에서의 브로맨스는 재미 포인트로 활용된다.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편에서는 정형돈의 파트너였던 G-드래곤이 밀고 당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G-드래곤은 정형돈을 무심한 척 대하면서도 그가 토라지기라도 하면 “이런 모습이 좋아, 귀여워”라며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그 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에선 주요 설정으로, 예능에선 웃음 포인트로 브로맨스가 반응을 얻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남-녀 커플 공식의 식상함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남-녀 멜로는 한국 영화, 드라마의 전통적인 기본틀이었다”며 “그 틀을 깬 것이 바로 남-남 커플 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 남-남 커플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삼 영화평론가도 “그동안 대중문화에 노출된 남-녀 커플이 구애의 대상으로 묘사됐다면, 남-남 커플은 ‘소울파트너’로서 등장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조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브로맨스에 대해 “고착화된 성 역할 인식을 벗어나는 것을 대중이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대중문화의 공급자들이 대중의 일상생활과 관심도와는 별개로 특별한 소재를 재미 포인트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문상현 인턴기자
브로맨스 만큼 뜨거운 ‘워맨스’ 여여커플도 묘하게 달달~ 워맨스는 ‘Woman+ 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성적 관계가 없는 여자들의 돈독한 관계를 의미한다. 동성 간이지만 사랑에 가까운 깊은 우정이 특징이다. 지금까지는 여자와 여자의 관계 설정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이나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끼리 질투와 시기를 하는 전통적 대립구도였다. 하지만 워맨스는 이러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구도를 깨고 있다. <마마> 송윤아-문정희 한국 작품에선 지난해 8월 선보였던 MBC 드라마 <마마>를 꼽을 수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옛 연인을 찾아가 가족을 만들어 주려는 송윤아와 그 옛 연인을 지금의 남편으로 둔 문정희가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 우정을 나누고 갈등을 겪으면서 둘 사이엔 특별한 감정이 생겨난다. 송윤아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안 뒤 죽지 말라며 오열하는 문정희, 그런 문정희를 애써 밀어내려는 송윤아 등 두 여성의 에피소드는 야릇하진 않지만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감정을 연상케 한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