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반짝 떴다가 사라진 별도 있더라
지난 7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kt의 시범경기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올해도 어김없이 2015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시작됐다. 제10구단 kt 위즈가 합류해 처음으로 다섯 개 구장에서 일제히 막을 올렸다. 경기 개시 시간은 오후 1시. 지난 시즌까지는 시범경기 입장이 모두 무료였지만, 올 시즌부터는 주말경기에 한해 돈을 내야 한다. 입장료는 각 구단 방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요즘은 시범경기는 물론 스프링캠프 연습경기까지 TV로 중계되고, 경기 승부처와 선수의 성적이 상세하게 뉴스로 전해지는 시대. 이제 시범경기 유료화까지 시행됐을 만큼 야구의 인기는 점점 하늘을 찌른다.
지방 한 구단의 A 코치는 “시범경기는 승패나 순위에 전혀 연연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기간이다. 팬들도 스코어보다 다른 관점에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시범경기부터 승부욕을 보이는 선수는 대부분 비주전이나 신인급 선수다. 주전들에게는 사실상 예행연습이라 그들의 진면목은 시즌이 시작된 뒤에 지켜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페이스가 늦게 올라오거나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을 당해 몸 만들 시간이 부족했던 베테랑 선수들은 아예 시범경기 후반에 2~3경기만 뛴 채 정규시즌을 맞이하는 게 관례다. A 코치는 “어차피 시범경기에서는 명승부가 의미도 없고, 기대할 필요도 없다. 야구 콘텐츠 경쟁이 심해지고 있지만, 중계에서의 평가나 유료관중의 함성에 흔들리지 않고 선수들은 뚝심을 지켜서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수도권 한 구단의 B 코치도 “3월의 야구는 사실 그 집안의 살림밑천을 자랑하는 시기다. 2주간 시범경기를 한다면 첫 주는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 다음 주부터 주인공들이 리허설을 하면 되는 것”이라며 “팀 내부 경쟁이 너무 심화되면 뒤처지기 싫은 본성 때문에 지나치게 일찍 시동을 거는 선수들이 생긴다. 주인공이 너무 빨리 나올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시범경기 때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여름에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시범경기 꼴찌가 정규시즌 1위?
실제로 시범경기 결과와 정규시즌 성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 시범경기는 프로야구 두 번째 시즌인 1983년부터 시행됐는데, 시범경기 1위에 오른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한 사례는 1987·1993년 해태, 1992년 롯데, 1998년 현대, 2002년 삼성, 2007년 SK까지 총 여섯 번에 불과했다. 오히려 시범경기 성적과 반비례하는 결과가 더 많이 나왔을 정도다. 최근 시범경기 순위만 봐도 그렇다. 삼성은 8개 구단 체제였던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시범경기 6위와 7위에 그쳤고, 2013년에는 9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였다. 지난해에는 한국시리즈 상대였던 넥센과 함께 공동 6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진짜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전무후무한 통합 4년 연속 우승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2013년 시범경기 우승팀인 KIA는 정규시즌 8위, 지난해 20년 만에 시범경기를 1위로 마쳐 화제가 됐던 두산은 정규시즌 6위로 쓸쓸히 물러났다. 결국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다.
#3월의 성적은 믿지 마라
이경복
반면 시범경기에서 잠시 빛을 발했다가 쓸쓸히 사라진 선수들도 있다. 1991년 태평양에 입단한 김홍기는 주로 2군에 머물다가 1992년 시범경기에서 홈런 5개를 터트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정규시즌에도 중용됐다. 그러나 시즌 내내 그가 친 홈런 수는 단 3개. 김홍기는 이듬해 1군에서 15경기만 더 뛰고 유니폼을 벗었다. 그의 프로 통산 홈런 수는 공교롭게도 5개였다. 해태 이경복 역시 1998년 ‘슈퍼 토너먼트’라는 이름을 달고 별개의 대회처럼 치러진 시범경기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그러나 그해 말 팀에서 방출당해 야구를 그만뒀다.
#시범경기여서 아쉬웠던 장면들
앞서 언급했듯이 시범경기는 비공식 게임이다. 아무리 대단한 기록이 나와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니 하필이면 시범경기 때 귀한 기록을 세운 팀이나 선수들은 못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롯데 김민재가 그랬다. 그는 2001년 시범경기에서 8연타석 안타를 때려내 당시 정규시즌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김민재는 3년 후인 2004년 정규시즌에 9연타석 안타를 쳐 한을 풀었고, 이 기록은 2013년 LG 이병규(9번)가 깰 때까지 KBO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또 한화는 2003년 3월 23일 수원 현대전에서 시범경기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명의 투수가 9이닝을 무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이어 던지면서 팀 노히트노런을 완성했다. 이상목, 김정수, 안영명, 레닌 피코타가 영광의 주역들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시범경기에서 보기 드문 장면들도 간간이 나왔다.
LG 안병원은 2003년 시범경기 삼성전에서 김한수∼임재철∼현재윤 등 3타자에게 내리 사구를 던져 시범경기 사상 1호 퇴장의 불명예를 안았다. 또 2010년 3월 10일에는 전국적으로 기습 폭설이 내려 목동, 인천, 대전,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던 4경기가 모두 취소됐다. 3월에 찾아온 한파로 인해 각 구장 더그아웃에 난로가 완비됐지만, 그라운드에 쌓이는 눈까지는 해결할 수 없었다. 2007년 4월 1일에는 극심한 황사로 시범경기가 모두 취소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는데, 당시 선수들은 경기 취소 여부가 발표되기 전까지 모두 항균 마스크를 쓴 채 훈련을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2015 시범경기 관전포인트 5연패 노리는 삼성 5선발 주인은 누구? 마침내 막내구단 kt 위즈까지 합류했다. 형님구단 9개팀은 kt의 전력을 가장 궁금해 한다. kt는 지난해 2군에서만 경기를 했다. 이번 시범경기가 1군 신고식이다. 아직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 선발 라인업 구상을 마친 kt 조범현 감독은 시범경기에서 외국인 선수 앤디 마르테와 FA로 영입한 박경수, 박기혁, 그리고 20인 보호선수 외 지명으로 얻은 김상현 등 주전 야수들의 손발을 맞추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홈구장 수원에서 치르게 될 첫 경기는 3월 14일 두산전이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스 통합 5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노리는 삼성은 차우찬, 정인욱, 백정현이 펼친 5선발 싸움의 승자를 최종 발표하게 된다. 스프링캠프의 신데렐라 구자욱의 시범경기 결과도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준우승팀 넥센은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큰 비중을 차지했던 5번타자 유격수 강정호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 5번 타순은 브래드 스나이더나 김민성, 유격수는 윤석민, 김하성, 김지수 등이 후보다. 신생팀 용병 추가보유 혜택이 사라진 NC와 지난해 힘겹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LG는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 시즌 5~9위 팀은 모두 사령탑이 바뀌었다. 강력한 우승후보 가운데 한 팀으로 꼽히는 SK는 김용희 감독이 구축한 시스템 야구를 시범경기에서 더 다듬어 나갈 생각이다. 선수 시절부터 선 굵은 리더로 유명했던 두산 김태형 감독은 마무리투수와 핵심 불펜진을 비롯한 마운드의 보직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깜짝 인사였던 이종운 감독이 안팎으로 어수선했던 선수단을 어느 정도 재정비했는지도 판가름될 전망. 외야진의 경쟁도 여전히 치열하다. 김기태 KIA 감독은 유격수 김선빈과 2루수 안치홍이 빠져나간 내야진 재구성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11월 한화 마무리훈련에서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는 겨우내 가장 뜨거운 팀이었다. ‘야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베테랑 김성근 감독이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한화에 어떤 투지를 불어 넣었을지, 그리고 과연 김 감독 특유의 ‘지옥 훈련’이 어떤 변화를 불러왔을지 시범경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은] |
시범경기 최고의 빅매치 류현진 vs 김광현 다시보기 ‘괴물 대 괴물’ 나란히 148km 팽팽 2011년 3월 15일 대전구장. 평일 오후 1시에 열리는 시범경기에 관중 1500여명이 몰렸다. 경기 전 더그아웃은 포스트시즌을 방불케 하는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공식 경기가 아닌데도 야구장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화 류현진과 SK 김광현.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두 좌완 투수가 처음으로 나란히 선발 마운드에 오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21세기판 선동열과 최동원의 대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류현진과 김광현의 맞대결은 2011년 3월 15일 한화-SK 시범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게다가 직전해인 2010년에 둘은 모두 최고의 성적을 냈다. 류현진은 192.2이닝을 던지면서 16승 4패, 방어율 1.82, 187삼진을 기록했고, 김광현은 193.2이닝을 소화하면서 17승 7패, 방어율 2.37, 삼진 183개를 올렸다. 류현진은 1점대 방어율과 23연속경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고도 김광현에게 다승왕을 내줘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지 못했다. 한창 괴물 같았던 류현진에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유일한 투수가 바로 김광현이었던 셈. 그러니 새 시즌을 앞둔 두 특급 좌완의 동시 출격에 관심이 쏠린 게 당연했다. 물론 한화 한대화 감독과 SK 김성근 감독, 그리고 류현진과 김광현은 모두 “정규 시즌이 아닌 시범경기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류현진은 투구수 45개, 김광현은 4이닝을 각각 소화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적어도 두 선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둘 다 평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초반에는 류현진의 판정패처럼 보였다. 김광현이 2회까지 삼진 3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행진을 펼친 반면 류현진은 2회 2사 후 정상호에게 좌월 솔로포를 얻어맞았다. 그러나 평정심을 되찾은 류현진이 3회까지 침착하게 잘 막아내자 이번엔 김광현이 흔들렸다. 3회 첫 타자 나성용에게 던진 초구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높게 몰리면서 좌중월 홈런으로 연결됐다. 다음 타자 오재필에게도 초구에 우중간 2루타를 내주면서 연이어 2실점. 이미 류현진이 예정된 투구수를 모두 소화한 터라 승부는 거기에서 끝났다. 최고 구속은 둘 다 약속이나 한 듯 148㎞. 성적 자체는 싱거웠지만, 이 대결이 얼마나 팽팽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류현진은 경기 후 “그냥 볼넷으로 내보냈어야 했는데 수싸움에서 져서 홈런을 맞았다. 적어도 ‘류현진 판정패’는 아니니 솔직히 다행”이라며 웃었다. 김광현은 “나는 류현진 형이 아닌 한화 타자들을 잘 분석해서 정규 시즌 때 실점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결국 둘의 맞대결은 그날의 시범경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이후 한동안 김광현이 부상과 슬럼프로 고전했고, 류현진은 2012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더 이상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올해는 또 어떤 빅매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