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고3처럼 열공
이종범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2월 27일 한화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세 고친다 구장에서 지난 시즌 자신의 제자였던 이용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나 깨나 야구공부
A 해설위원은 “해설위원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마치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처럼 공부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다”고 토로했다. 해설은 말 그대로 경기 도중 일반 야구팬들이 알기 어려운 부분을 설명하고 짚어주는 일이다. 각 구단의 스타플레이어들에 대해서만 파악해서는 잘 해내기 어렵다.
“일단 선수들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주요 선수들은 물론 백업 선수, 혹은 2군 선수들에 대한 제반 사항까지 다 알아야 하는 게 첫 번째”라고 했다. B 해설위원도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에는 내가 생각하는 10개 구단의 장점과 단점을 다 추려서 나누는 작업부터 했다.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인데도, 확실히 장점이 많은 팀들의 순위가 높은 편이고, 단점이 많은 팀들은 하위권으로 처져 있는 게 보였다”며 “이런 부분이 해설을 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꼽은 준비 방법은 ‘독서’다. C 해설위원은 “예년과 달리 스프링캠프를 안 가고 집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여가 시간이 많아서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며 “원래 틈틈이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그동안 선수들에게 종종 독서를 권하기도 했다. 참고할 만한 문장이나 글귀가 있으면 메모도 많이 해놓았다”고 했다.
B 위원도 “야구에 관련된 책이라기보다는 대화법, 화술법을 다룬 책들이나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며 “습관이 되지 않아 한번 읽으면 금세 잊어버린 부분이 많지만, 알게 모르게 다 쌓여 중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물론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각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소식을 빠짐없이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다. A 위원은 “인터넷 야구뉴스를 팀 별로 다 확인하고, 메이저리그 중계도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고, D 해설위원 역시 “선수 시절에는 내 기사도 거의 안 읽을 정도로 뉴스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야구 기사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다”라고 털어 놓았다. KBO 야구규약과 야구규칙은 초보 해설위원들 모두가 겨우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필수 품목’이다.
최원호·이종열 SBS 스포츠 해설위원
#결국은 ‘말’이 가장 어렵다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라도,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야구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 더 문제다.
B 위원은 “그동안 야구장에서 플레이만 했지, 일어난 일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방송이라서 평소 늘 현장에서 쓰던 단어들 가운데서도 쓰면 안 되는 것들이 많다”며 “나중에는 이 말, 저 말 다 빼다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D 위원 역시 “평소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할 때는 재미있는 편인데 한번 머릿속에서 거르고 얘기하려다 보니 어눌해지게 된다. 한 달 정도는 방송을 해봐야 적응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준비기간 동안 방송사들은 초보 해설위원들에게 주의해야 할 부분을 짚어준다. A 위원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 상황을 가장 담백하고 쉽게 전달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또 정보를 전할 때는 10초에서 30초 사이에 끝내는 편이 좋다고 한다. 30초가 넘어가면 정보 전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B 위원은 “선배 해설자분들 얘기를 들어 보니, 멋있게 얘기하려다 보면 너무 길어지고, 그냥 내가 아는 대로 짧게 얘기하다가는 야구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혼란이 있을 거라고 하더라”며 “그 시간과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부분을 훈련하기 위해 모의방송 훈련도 거친다. 지난 시즌에 방송됐던 중계 화면을 틀어 놓고 캐스터와 해설자가 자유롭게 말을 풀어 놓는 형식이다. 주로 베테랑 해설위원이 맡았던 경기를 초보 위원의 관점에서 다시 해설하는 테스트가 많다.
C 위원은 “말할 타이밍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이닝 사이사이에 나오는 광고나 자막으로 나오는 기록을 놓치지 않으면서 모니터와 그라운드를 보는 법, 또 캐스터와의 조화를 연습한다”며 “캐스터의 질문에 100% 대답하려면 상식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B 위원 역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중계화면 모니터를 보면서 말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그라운드에서는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야구장 상황을 설명하다가는 화면하고 다른 얘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내 말이 너무 길어지면 화면이 이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는데 계속 지나간 장면을 설명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A 위원은 “모의방송과 달리 실제 중계 때는 해설자의 얘기에 따라 화면이 따라오기도 한다. 어떤 선수에 관련된 얘기를 하면,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그 선수의 얼굴을 비춰주는 식”이라며 “승부가 타이트한데 관중석 얘기를 한다든지 하는 실수만 안 하려고 한다. 결국 방송을 해나가면서 하나씩 적응해야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해설위원 위상 달라졌다
아직은 모두가 초긴장 상태. 스프링캠프 취재부터 시범경기 중계까지, 매일이 철저한 준비의 연속이다. 감독이나 선수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미리 주변의 동료나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연습을 해볼 정도다. 생중계 도중에 잘못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요즘처럼 네티즌들이 말실수 하나까지 ‘매의 눈’으로 잡아낼 때는 더 그렇다.
A 위원은 “경기 전에는 라인업부터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 또 캐스터와 말을 맞추고 이날 경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뭔지 다시 한번 확인도 한다”며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객관적인 모니터도 부탁해 놓았다”고 했다.
C 위원도 “아나운서가 아니기 때문에 방송사 측에서도 발음이나 화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크게 지적하지 않는다. 그라운드 내부자 출신으로서 여러 가지 경험,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의 심리적인 부분을 얘기해주길 바란다”며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보다 정말 팬들이 듣고 싶어 하는 부분이 뭔지 잘 꿰고, 그런 부분을 잘 정리해서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야구계에서 해설위원의 위상은 예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다. C 위원은 “과거에는 정말 현장에 돌아갈 길이 없을 때 해설을 택했지만, 요즘은 현장의 러브콜이 와도 해설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야구를 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좋은 공부가 되고, 오히려 웬만한 해외 지도자 연수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A 위원 역시 “해외 연수는 사실 자신이 주력하는 분야 위주로 볼 수밖에 없고, 다시 현장에 돌아와도 감독이 아닌 이상 자기 분야에만 치중하는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며 “해설을 하면 전체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소속팀이 아닌 모든 팀을 볼 수 있어서 폭넓게 선수들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만큼 의욕도 넘친다. 해설위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커져서다. B 위원은 “언제까지 해설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함께 배워가면서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똑같은 내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조금씩 쌓아가다 보면 양질의 해설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며 “방송 자체에 욕심을 내기보다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야구의 재미와 본질을 잘 전달하기 위해 밑바탕부터 탄탄하게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초보 해설위원들이 펼칠 선의의 경쟁이 더 흥미진진해졌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역대급 해설위원 군단 출범 이종범·정민철·송진우…골라듣는 재미가 있다 2015년은 한국 프로야구 중계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을 만한 시즌이다. 프로야구 각 부문에 전설적인 족적을 남긴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해설자로 변신했다. KBS N스포츠 송진우 해설위원, 윤태진 아나운서, 조성환 해설위원(왼쪽부터). 오른쪽은 MBC스포츠플러스 정민철·김선우·박재홍 해설위원, 배지현 아나운서, 이종범 해설위원(왼쪽부터). 사진출처=윤태진·배지현 트위터 정규시즌·한국시리즈·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를 모두 거쳤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이종범과 프로야구 역대 최다인 통산 210승 투수 송진우, 역대 우완 최다승(161승) 투수이자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었던 정민철이 모두 해설위원으로 데뷔한다. 이종범과 정민철은 MBC스포츠플러스, 송진우는 KBS 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새로 합류했다. 세 명의 레전드는 모두 지난 시즌 한화에서 코치로 몸담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이종범과 정민철은 현역 시절부터 지도자 시절까지 늘 입담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야구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초로 메이저리그 출신 해설자도 탄생했다. 빅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한국에서 두산과 LG를 거쳐 은퇴한 투수 김선우가 그 주인공이다. 김선우는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메이저리그 중계까지 소화할 예정. 스타성과 경험을 모두 겸비해 야구계 안팎의 기대가 크다. 또 롯데팬들에게 ‘영원한 캡틴’으로 불리는 조성환도 KBS N스포츠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언변과 순발력이 다른 어떤 해설위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다른 새 얼굴들도 주목할 만하다.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던 안치용은 은퇴와 함께 KBS N스포츠에 둥지를 틀었다. 포수 출신 현재윤과 미국에서 타격코치 연수를 마친 스위치히터 이종열은 SBS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출발한다. 이들은 모두 시범경기에서 설레는 데뷔전을 치렀다. 선수 시절 경력부터 해설 스타일까지 각자 다르니, 팬들 입장에서는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대대적인 해설위원 교체가 필요했던 이유도 물론 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많은 해설위원들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수많은 ‘어록’을 양산했던 LG 차명석 수석코치는 같은 방송사 해설위원이었던 LG 양상문 감독을 보좌하기로 했다. 김성근 감독의 아들로도 유명한 김정준 전력분석코치와 애제자인 김재현 타격코치는 김 감독과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메이저리그 해설에 일가견이 있던 넥센 손혁 투수코치도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게 됐다. [은] |
해설위원의 하루 일과 광고 나갈 때 빛의 속도로 ‘볼일’ 프로야구 해설위원들은 주간 단위로 ‘근무표’를 받는다. 수도권 경기인지,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인지, 아니면 스튜디오에 대기했다가 심야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투입되는지 미리 알 필요가 있어서다. 경기 한 시간 전에는 캐스터와 함께 오프닝 영상을 촬영한다. 식사는 보통 그 전후로 간단하게 마친다. 중계 부스로 올라온 뒤에는 그날의 라인업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중계 카메라와 각종 장비는 최첨단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중계 부스의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좁은 공간에 캐스터와 해설위원 1~2명, 오디오 감독, 방송사 기록담당직원이 옹기종기 자리 잡는다. E 위원은 “선수의 과거 기록 같은 것을 모두 외우고 있을 수는 없으니, 캐스터나 해설자가 경기 도중 미처 찾아보기 힘든 세부 기록들을 대신 뽑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4시간을 넘어서는 중계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화장실이다. 경기 시작 전 한 차례 다녀오는 것은 필수. 그 외에는 주로 클리닝타임을 이용한다. 경기가 한없이 길어져서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는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가 광고가 나갈 때 빛의 속도로 다녀와야 한다. F 해설위원은 “계속 말을 해야 하니 늘 목이 마를 수밖에 없지만, 한번 오랫동안 참느라 고생한 후에는 저녁식사 때 물도 안 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고 귀띔했다. 화장실 트러블 없이 무사히 중계가 끝나더라도, 집에 갈 때쯤이면 허리와 엉덩이에 통증이 밀려오기 일쑤. 알고 보면 참 고충이 많은 직업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