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부영 의장(왼쪽), 김충환 의원 | ||
현재 이 의장은 내년 4월 재보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3월 예정인 전당대회 출마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직 복귀를 통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지만 만약 1심형이 상급심에서도 그대로 확정될 경우 이 의장은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등 치명적 상황을 맞게 된다.
이 의장과 김 의원은 한때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한 후견인과 후배 지간이었지만 총선 과정에서 김 의원측이 이 의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등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이가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무상한 인연’의 시작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의장이 먼저 인연을 맺은 것은 김 의원의 친형인 김충립씨였다. 이 의장과 김충립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0년 9월로 그때 김씨는 국군보안사령부 출신의 예비역 소령으로 예편한 상태였다. 김씨는 5공 언론통폐합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섰던 바 있는데 이때 이철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김충립씨는 90년 9월 윤석양씨(당시 보안사 소속 이병)가 보안사의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에 대한 정치사찰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 각계의 사회운동이 벌어졌던 과정에서 이 전 의원을 통해 이부영 의장을 소개받는다. 보안사 출신이면서 청문회에 나선 김충립씨의 용기를 높이 산 이 의장은 이듬해 꼬마 민주당 입당 이후 김씨가 경북 봉화·울진 지구당위원장에 선정되게끔 도와준다.
김충환 의원은 지난 91년 초순께 친형인 김충립씨를 통해 이 의장을 소개받았다. 당시 김 의원은 서울시 통계담당관이었으며 이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권 입문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서울대 정치학과 12년 후배인 점과 행정고시 합격 경력에 서울시장 비서관 재직 경험을 높이 산 이 의장은 김 의원이 91년 5월 서울시의원 선거에 강남구 의원 공천을 받게끔 도와줬지만 김 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고 만다.
낙선 이후 오갈 곳 없어진 김 의원을 안타깝게 여긴 이 의장은 통합민주당 출범 이후 당 최고위원직에 오르면서 김 의원에게 당내 요직인 원내기획실장직을 맡긴다. 92년 총선 때 서울 강동 갑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 의장은 3년 후인 95년 지방선거에서 김 의원이 강동구청장 후보 공천을 받을 수 있게끔 도와준다. 당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 의장에게 구청장 후보 선임에 대한 절대적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구청장에 당선된 김 의원은 이 의장이 지역구 의원 3선을 하는 동안 구청장 3선을 하게 된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정에서 두 사람은 민주당에 잔류하고 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만들어진 한나라당에도 함께 합류하게 된다.
정치적 스승과 제자로서, 서울 강동 지역의 지역구 의원과 지역 구청장으로 호흡을 맞춰온 이 의장과 김 의원의 인연이 흔들리게 된 것은 지난해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에서부터다. 이 의장이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던 동료 의원들과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지만 당시 강동구청장이었던 김 의원은 한나라당에 잔류한 것이다.
이후 김 의원은 “당을 버리지 않고 의리를 지켰다”는 칭찬과 “정치적 후견인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 속에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 준비를 하게 된다. 지난해 총선 후보들에 대한 각 지역 조직책 선정 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 전 의원은 ‘지방행정 공백’에 대한 비난 우려 때문에 “중도사퇴 단체장은 공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강동구청장이었던 김 의원이 조직책을 신청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자 박주천 당시 사무총장이 김 의원을 만나 말렸지만 김 의원이 완강하게 의지를 밝혀 결국 비공개로 조직책 신청을 하게 됐다. 이후 한나라당은 이 의장 상대로 김 의원을 ‘표적공천’하게 된다.
총선 과정 당시 김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2004년 2월6일자)에서 “이부영 의원이 열린우리당에 가지 않았으면 나는 이 의장 지역구(강동 갑)가 아닌 강동 을 지역에서 공천신청을 했을 것”이라며 “나는 선배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성격이 못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이 의장을 가리켜 “몇몇 재선 의원들은 지역구가 마치 자신의 영지인 것처럼 생각해 남들이 도전하는 것을 해서는 안될 짓이라 생각하는데 공직은 사유재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 내내 이 의장에 대해 분명히 각을 세웠다. ‘철새는 가라. 일류 행정이 온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민주당 한나라당을 거쳐 열린우리당으로 둥지를 옮긴 이 의장의 전력을 문제 삼았으며 이 의장이 한나라당의 고위 당직을 오랫동안 맡은 점을 겨냥해 “차떼기 돈을 누가 먹었겠는가” 같은 발언을 자주 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지역구 운동에 전념하지 못한 이 의장은 유권자들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파고든 김 의원에게 5천 표 이상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김 의원은 이후 벌어진 이 의장과의 자존심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이부영-김충환’ 대리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강동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이해식 후보가 35.4%를 얻어 64.6%를 얻은 한나라당 신동우 후보에 패한 것이다.
이 의장은 총선 전인 2004년 2월 말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강동구 주민들에게 배포한 ‘2004년도 의정보고서’에서 ‘김충환 후보의 친형이 1991년 국군 보안사령부 소령 당시 보안사 내부 일을 폭로해 수배받았다’는 내용 등을 언급해 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12월17일 1심에서 이 의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백5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명예훼손 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 의장측 인사는 “김 의원 친형이 보안사 내부 일을 폭로한 것을 높이 샀던 이 의장이 명예훼손을 의도했을 리가 있겠는가”라며 “무고죄로 (김 의원을) 고소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 의장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