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보 줄게, 금배지 포기해다오”
여권 일각에선 사정정국이 가시적 성과를 거둘 경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완구 총리가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고 본다. 지난달 17일 본인의 취임식에서 장관들과 함께한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완구 총리가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총리로서 또 한 번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을 것이다. 세팅은 청와대에서 미리 해 놓은 듯하다. 이 총리가 얼굴 마담 격으로 진두지휘하는 모양이 될 것이다.”
이 총리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만난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 총리에 관해 정치권에서는 ‘식물총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총리 취임 직후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여권 내 우호적인 흐름이 생성 중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한 인사는 “(이 총리가) 우병우 민정수석과 합이 잘 맞는 것 같다”며 “우 수석이 사정의 총대를 메고 물밑에서 검찰을 움직이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완구 총리는 정치권의 반발을 조율하는 해결사 역할로 나설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심중에 차기 주자로 김무성도 김문수도 아닌 이완구가 있다는 말이 공염불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건은 차기 총선 불출마 여부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다. 이완구 총리의 지역구인 부여·청양군은 이번 선거구 개편 과정에서 공주시와 합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합구될 경우 양자택일에 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아예 조기에 불출마 선언을 해 현역 의원 출신 장관들의 총선 출마에 관한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이완구 총리의 한 측근은 “이 총리가 9년 만에, 그것도 보궐선거로 국회에 복귀한 만큼 한 번 더 지역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만만찮다.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물리적으로도 국무총리 퇴임 후 총선 출마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내년에 또 한 번 인사청문회를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지 않나. 여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친박 진영에서는 야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안희정 대권론을 견제하기 위해 하루 빨리 ‘인큐베이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친박계는 지난해까지 충청 출신의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차기 대권주자감으로 낙점한 뒤 조용히 움직이는 분위기였지만 올해 들어 이 같은 분위기가 쑥 들어갔다. 대신 ‘안희정 대 이완구’ 구도를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의 이 총리 측근은 “정치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지 않나. 김치찌개 먹으면서 한 이야기가 비수가 될 줄 꿈엔들 알았겠느냐”고 반문하며 “지금의 김무성 대표나 문재인 대표 지지율도 내년 총선 이후 어떻게 요동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안 지사도 흠결 없는 정치인이 아니다. 안 지사가 뜨면 여권에서는 충분히 이완구 총리를 갖다 붙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