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62곳 재조정 ‘어떻게 쪼개고 붙일까’
# 누가 칼을 들었나
무엇보다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역시 정개특위를 구성할 ‘선수’들이었다. 이번 정개특위 위원장으로는 이전부터 유력했던 4선의 중진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경북 포항 북구)이 임명됐으며 여야 각각 9명과 10명의 위원이 위촉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간사로 임명된 정문헌 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 재선)을 비롯해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재선), 여상규(경남 사천·남해·하동, 재선), 김회선(서울 서초, 이하 초선), 김명연(경기 안산 단원갑), 경대수(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박대동(울산 북), 김상훈(대구 서), 민현주(비례대표) 등이 위원으로 승선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간사로 임명된 김태년 의원(경기 성남 수정, 재선)을 필두로 박영선(서울 구로을, 3선), 유인태(서울 도봉을, 3선), 백재현(경기 광명갑, 재선), 김상희(경기 부천 소사, 재선),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이하 초선), 김윤덕(전북 전주 완산갑), 박범계(대전 서을), 김기식(비례대표) 의원이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경기 고양 덕양갑, 재선)가 야당 위원의 몫으로 참여한다.
이번 정개특위의 인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끈 이유는 역시 지난해 10월 헌재의 현행 선거구 헌법불일치 판결에 따라 대규모로 선거구를 재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정이 필요한 선거구를 두고 있는 현직 의원들은 배제됐다. 입법부 당사자로서 칼자루를 쥐게 되는 막강한 지위 탓에 인선을 앞두고 경쟁도 목격됐다. 새누리당 황영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 등은 막판까지 합류를 노렸지만, 끝내 명단에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독이 든 성배’처럼 막강한 지위만큼이나 동료 의원 지역구를 칼질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실제 승선이 타진됐던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인선을 꺼렸다는 후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 의원실 역시 정개특위 인사 후보군에 있었지만, 우리 측에서 거절했다”며 “어찌됐건 그 자리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칼을 들어야 한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나서기 쉽지 않은 자리”라고 털어놨다.
야권의 한 관계자 역시 “새정치연합은 오는 5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아무래도 당직을 노리는 인사들의 경우, 만약 정개특위에 이름을 올릴 경우 추후 당직 인선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나서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부담백배’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강심장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정무에 능한 여당의 이병석 의원이 위원장으로 포진한 상황에서, 야당에선 3선의 중진인 박영선, 유인태 의원이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에 박영선 의원과 줄곧 ‘새로운 박남매’라는 별칭으로 콤비를 이뤄왔던 박범계 의원이 합류하면서 야당은 정개특위에서 결코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각오가 눈에 보인다.
# 선거구 개편 어느 선까지
정개특위는 오는 4월 1일 소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선거구 개편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다루는 공직선거관계법심사소위와 정치자금법과 정당법 관련 안을 다루는 정당·정치자금법심사소위 두 갈래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공직선거관계법심사소위가 구성되더라도, 해당 소위 소속 위원들이 선거구 개편에 어느 정도 관여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공직선거법 24조에 따라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이해당사자인 현직 의원이 직접 선거구 획정에 관여할 수는 없다. 몇몇 정개특위 위원들은 벌써부터 막판 야합 가능성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의식한 듯 “정개특위에서 직접 선거구 획정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정개특위 위원들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 내부의 반응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독립기구로서 외부인사로 구성되지만, 결국 그 인사 구성도 여야 당사자들이 합의에 따라 의장이 임명하는 방식”이라며 “여기에 의원들이 직접 위원회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정당 차원에서 발언권이 주어진다는 예외조항도 존재한다. 실질적인 수정권이 발동될 수 있다. 사실상 여야 지도부와 정개특위 위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선거구 개편 핫 플레이스는
지난해 10월, 헌재는 현행 선거구에 대한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릴 당시, 표의 등가성을 주된 이유로 인구편차 기준을 최대 2 대 1을 넘지 말 것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하면 대략 선거구당 최소 13만 8984명, 최대 27만 7968명이 기준이 된다.
인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선거구는 전체 246개 중 총 62개다. 인구 상한 기준에서 초과된 선거구가 37개며, 인구 하한 기준으로 미달한 선거구는 25개다. 역시 좀 더 예민한 쪽은 미달 선거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현직 의원들이다. 까딱하면, 선거구 조정에 따라 지역구가 사라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여야 텃밭이라 할 수 있는 영·호남에 집중돼 있다.
특히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곳이 경북이다. 경북 전체 선거구 15개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7개가 개편 대상이며 그 중 경산·청도를 제외하고 영천, 상주, 문경·예천, 군위·의성·청송, 영주, 김천 등 6개 지역이 미달 선거구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예민한 분들이 경북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여당 의원들 아니겠나. 저마다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지역구를 지키고자 노력하겠지만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더군다나 경북 한 가운데 덩그러니 대구가 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으로 개편 자체가 꽤나 까다롭다. 잘못하면 대구를 가운데 두고 이도 저도 아닌, 묘하게 생긴 지역구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에 있어서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높다. 표의 등가성은 물론 지리적 편의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여러모로 어려운 지역이다.”
다른 의미에서 불이 붙을 소지가 높은 선거구도 존재한다. 충남의 부여·청양과 공주다. 두 선거구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기에 통합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유권자 성향은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계룡대에 인접한 부여·청양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하다. 현역 의원도 이완구 국무총리다. 반면 세종시에 인접한 공주는 야성이 좀 더 강하다. 현역은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만약 개편이 현실화되면 전혀 다른 성향의 지역구가 통합되면서, 여야 간 각축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현재 정치권 내부에선 거물급에 해당하는 이 총리의 불출마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어, 여권에선 그 대타로 누가 나올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 석패율제, 권역별 비례대표는
선거구 개편과 함께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안한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도 다음 총선의 판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해당 제도 도입 여부 역시 이번 정개특위 공직선거관계법심사소위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두 제도 모두 여야 내부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이유로 오랜 기간 논의되고 제안된 바 있지만 실제 도입 가능성은 미지수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는 “여야 내부에서 해당 제도의 도입 이후 의석수를 예상해 보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며 “다만 여권 내부에선 신중론이 좀 더 우세한 것으로 안다. 호남에 비해 지역구가 많은 영남을 텃밭으로 두고 있는 여권이 다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도입 여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 국회의원 정원 조정 가능성은
선관위는 지난 2월, 현행 국회의원 정원인 300석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역구 의원을 200석으로 줄이고, 권역별 비례대표를 포함한 비례 의석수를 100석으로 늘리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정치 관계자들은 ‘절대 불가’라는 반응이다. 이는 여야를 불문하고 이견이 전혀 없었다. 정개특위에 참여하는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역 의석수는 그대로 두고, 비례 의석수를 60석 확대하는 대신 세비는 동결하자”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의석수 확대 자체를 비판하는 여론이 만만찮아 반응은 싸늘하다.
야권의 다른 관계자는 “선관위의 안은 현실적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심 대표가 제시한 비례 60석 확대는 국민정서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가뜩이나 정치자금법 확대로 살림이 어려운 의원실 입장에서 세비 동결은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역 의석수 유지에 비례 의석을 20여 석 늘리는 선에서 합의하는 절충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마감 시한 제대로 지킬까
이번 정개특위의 운영 마감 시한은 오는 8월 31일.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다. 하지만 이 시일이 실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공직선거법과 관련해 다뤄야 하는 발의안이 223건, 정당·정치자금법과 관련해 다뤄야 하는 발의안은 58건 정도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다. 특히 가장 민감하면서도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선거구 개편과 관련해 여야 간 줄다리기는 물론 당내 조율도 쉽지 않을 전망이기에 파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는 “몇 차례의 파행을 겪는다면 당내 경선 일정과 예비후보 등록 기간을 넘어설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막판 졸속 합의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정치인 돈줄 풀리나 ‘지구당 부활 가능성’ 원외 정치인 초미관심 선거구 개편 및 새로운 선거제도 도입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정치자금법 및 정당법 관련 사안이다. 지난 2월, 선관위 측이 제안한 ‘지구당 부활’, ‘정치자금 한도액 현실화 및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탁 허용’ 안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정치자금법은 검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마음대로 칼을 휘두를 수 있다”며 “후원금 모집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한도액을 상향 조정하는 대신, 차라리 실시간 회계 공개 시스템을 구축해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앞서 선관위의 정치자금법 개혁안은 큰 틀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