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줌마’안부럽다! “우리 그이가 달라졌어요”
최근 쿠킹 클래스를 찾는 남성 수강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제공=푸드디렉션 ‘군침’
정 씨는 “첫 이유식은 꼭 내가 해주고 싶다. 나 같은 아빠들이 많은지 조리원에서 아빠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이유식 만들기 교육도 해주더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인터넷 강의도 찾아보고 책도 여러 권 샀다. 공부하면 할수록 더 어렵지만 내가 만든 이유식을 먹을 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딸만 생각하는 내 모습에 아내가 살짝 삐진 것 같아 이제는 아내를 위한 요리도 해보려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김 아무개 씨(29)의 취미도 요리다. 인터넷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한 요리는 어느새 전문가 뺨치는 솜씨로 발전했다. 아직은 취미로 요리를 하고 있지만 김 씨의 계획은 원대하다. 김 씨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지만 은퇴 후 요리로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주 2회씩 일대일로 요리를 배우는 중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뺐기지만 요리 수업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나만의 식당을 여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요리에 빠진 대한민국 남자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나이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뛰어든다. 쿠킹 스튜디오 ‘공감’ 관계자는 “연령대에 따라 요리를 하려는 이유가 다르다. 젊은 남성들은 주로 연인에게 어필하기 위해 요리를 배운다. 자취하는 사람도 많은데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질려 요리를 배우겠다는 이들도 많다”며 “기혼 남성들은 아내나 특히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주려고 배운다. 과거엔 아빠와 함께 하는 쿠킹 클래스를 열어도 엄마들이 대신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아빠들이 직접 연락한다. 때론 출장이 잦거나 기러기 아빠들은 생존을 위해 배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등 떠밀려 요리를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남편의 요리를 맛보고 싶은 아내들이 몰래 쿠킹 클래스를 신청하는가하면 여자친구의 등살에 못 이겨 케이크를 만드는 남자친구들도 있다. 3년째 연애 중인 박 아무개 씨(28)는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여자친구가 은근슬쩍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얘기하더라. 누구는 남자친구가 만든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갔고 어떤 친구는 수제 초콜릿을 받았다며 압박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케이크를 만들게 됐는데 막상 해보니 재밌어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워볼 생각이다. 찾아보니 주변에 요리하는 남자들이 많아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와 함께 하는 요리교실 모습(왼쪽)과 화이트데이 케이크 만들기 실습 모습. 사진제공=쿠킹스튜디오 ‘공감’
요리하는 남자들이 늘어나면서 예비신부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던 쿠킹 클래스에도 남자 수강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소 요리에 관심 있는 남성들도 여성들만 가득한 쿠킹 클래스에 나타나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로 떠오르자 이들만을 위한 쿠킹 클래스가 생기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성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김보선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사내 동호회 형식으로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는데 의외로 남성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동안 요리에 관심이 많아도 딱히 배울 만한 곳이 없어 아쉬웠다는 하소연도 많이 들었다. 보통의 쿠킹 클래스는 아줌마들이 많으니 그들과 부대끼며 요리할 자신이 없었다면서 회사 사람들이랑 요리하니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곤 올해부터 남성 쿠킹 클래스를 개설했는데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날이 갈수록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들만 가득한 쿠킹 클래스 풍경은 어떨까. 처음에는 말 한 마디 오가지 않는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막상 요리를 시작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김보선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어찌나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인지 남자 쿠킹 클래스가 더 재밌다. 여성 수강생들은 가까이 와서 보라고 해도 부끄러움에 멀찍이 바라보는 게 전부인데 남자들은 말 그대로 딱 달라붙어 요리를 지켜본다. 눈치 보지 않고 질문도 많이 하니 배우는 속도도 빠르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남자들은 주변 정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 수업이 끝나면 난장판이 된다는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푸드디렉터 ‘군침’의 최우성 실장도 “중학생부터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요리를 배우기 위해 찾는다. 아무래도 방송의 영향이 크다보니 재밌는 일도 많다. 셰프들의 멋진 모습을 따라하고 싶어 초보임에도 연신 팬을 휘두르고 칼질도 일부러 ‘탁탁’ 소리를 내면서 하는 등 약간의 허세가 섞여 있어 서로 웃을 때도 있다”며 “그래서인지 요리를 끝낸 이들의 얼굴은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먹는 재미뿐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성취감을 얻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요리하는 남자가 각광받는 현상에 대해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양성화 되면서 여성들은 같이 요리하고 육아도 하는 부드러운 남성, 즉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남자에게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차승원이 딱 그런 사람이다. 터프한 이미지와 함께 요리를 잘 하는 양성적인 매력을 뽐냈다”며 “또한 방송에서 전문적인 요리가 아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해 남성들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해 지금과 같은 ‘요리하는 남자’ 열풍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요리에 빠진 ‘행복한’ 남자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하루하루 더 맛있어지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