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받는 수출길? 아직 걸음마 수준
대형 제약사를 중심으로 신약개발·수출 소식이 잇따르면서 업계 전체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한미약품(왼쪽)과 유한양행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런데 지난해부터 뜨겁게 몰아치던 사물인터넷에 대한 열기가 올해 들어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믿음은 여전하지만 열기는 지난해만 못하다. 그 열기가 제약·바이오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 대형 제약사를 중심으로 신약개발·수출 소식이 잇따르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미약품의 제약업계 수출 신기록 소식이 주마가편이 됐다.
지난 3월 19일 국내 제약업계에 빅뉴스가 전해졌다.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일라이릴리사와 자가면역질환치료제 ‘HM71224’의 개발·상업화에 대한 라이선스·협력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계약규모는 6억 9000만 달러(약 7700억 원)로, 이는 국내 제약업계 사상 수출 최대 액수로 기록됐다.
제약업계에서 한미약품은 오래전부터 LG생명과학과 함께 신약개발과 대규모 수출이 기대되던 곳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에 치중돼 있는 국내 제약업 상황에서 (한미약품은) 신약 성과가 기대되던 곳 중 하나”라며 “R&D(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남다른 곳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업체 중 R&D 분야 투자 액수와 비중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미약품의 수출 소식은 국내 제약업계 전체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LG생명과학, 녹십자, 종근당, 동아에스티 등 신약·백신·치료제 등 개발이 조금이라도 기대되는 업체라면 관심 대상으로 부각됐다. 주식시장에서도 이들을 비롯해 제약·바이오업체들의 주가가 연일 상승했다. 이들 주가가 최근 지수 상승을 견인하는 데 한몫을 한 셈이다.
코스닥지수는 지난 3월 25일 6년 9개월 만에 650선을 돌파한 바 있다. 코스닥의 시가총액 상위 업체들인 다음카카오, 동서, CJ E&M 등의 주가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코스닥지수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데는 셀트리온을 비롯한 바이오업체들의 힘이 컸던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랩지노믹스, 바이로메드, 네오팜, 제넥신 등 중소 제약·바이오업체들의 주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들은 주로 코스피에 몰려 있지만 코스닥에도 괜찮은 바이오업체가 많다”며 “바이오업체들은 늘 주목받아 왔지만 최근 대형 제약사들의 호재가 코스닥 상장 중소 바이오업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제약업계에 대한 기대가 올해처럼 컸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제네릭에 치중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약가 인하, 리베이트 수사 등은 제약·바이오업체들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 됐다.
제약·바이오 분야는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다. 글로벌 제약기업의 탄생은 국부 창출과 국민건강권 확보로 연결된다는 이유에서 정부도 지원·육성책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창조경제의 대표주자로 사물인터넷이 각광을 받았다면 이제는 제약·바이오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에서도 제약업계에 대한 R&D 지원책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제약업체들의 분위기도 좋다. C형 간염치료제 원료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는 유한양행이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는가 하면, 한미약품·녹십자·종근당·일동제약 등 대형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의 당뇨치료제·혼합백신 수출, 녹십자의 미국시장 진출, 종근당의 고도비만치료제의 임상시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 제약·바이오업체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인체의약품 전문 씨티씨바이오는 최근 스위스·미국 등 제약업체와 치료제 기술이전·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제약용 효소 전문기업 아미코젠은 중국 제약사 지분 매입을 통해 중국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약 기술과 수출은 글로벌 수준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신약개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유럽·일본 등의 제약업체들의 매출 규모가 수십조 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앞서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업체가 중남미 등에 진출하긴 했지만 제약 선진국에 직접 진입하기는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며 “최근 수출도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 긍정적이며 앞으로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제약, 일동제약-녹십자의 경우처럼 경영권 분쟁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하고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불법 리베이트와 관련해 의혹이 끊이지 않는 데다 검찰 수사와 제재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약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씻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이가 많다.
또 국내 제약업계는 본격적으로 오너 2, 3세 경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성원 광동제약 부회장, 김상훈 부광약품 사장,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 등은 이미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업계를 끌어가고 있다. 신약 연구개발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탓에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지금 같은 분위기와 긍정적인 효과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계 차원에서 윤리경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면서 “그동안엔 말만 앞서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스스로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